선택적 함구증이라는 생소한 질환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지 고민했다.
부모님과 어린이집 선생님에겐 말을 할지를 결정하긴 어렵지 않았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나는 다람이를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정리했다.
1그룹 - 가장 가까운 가족 (엄마, 아빠,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
2그룹 - 가까운 가족 (처남 부부, 조카, 친척들)
3그룹 - 어린이집 친구들
4그룹 - 2번 이상 만난 사람
5그룹 - 1번 만난 사람
장모님을 통해 2그룹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알렸다. 처남 부부는 진심으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했다. 3교대 일을 하는 처남은 피곤한 중에도 다람이에게 더 많이 말을 걸어주고 가까워지려 노력했다. 처남 부부는 만날 때마다 친근하게 동화책도 읽어주고 장난도 치며 기꺼이 다람이의 가장 친한 어른이 되어주었다.
아내의 이모님들은 자신의 일처럼 아파했다. 코로나고 뭐고 사회성을 길러주려면 가족들 먼저 자주 만나야 한다면서 집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다람이와 함께 찾아간 이모님의 집에는 다람이가 가장 좋아하는 텐트와 예쁜 조명, 귀여운 동물 인형, 젤리와 초콜릿 등이 준비돼 있었다.
다람이는 이모할머니의 집에서 말을 하기까지 3시간이 걸렸다.
3그룹 어린이집 친구들에게는 알리지 않기로 했다. 어린아이들은 가끔 악의 없이 상처를 주기도 하니까.
그다음은 4그룹 2번 이상 만난 사람이 문제였다.
2번 이상 만난 사람은 우리 부부가 친한 친구들이다. 그중에는 6살 딸을 키우고 있는 내 오랜 친구가 있었다. 조금 망설이다가 어쨌든 나를 잘 아는 친구고 그의 와이프도 초등학교 선생님이라 상황을 얘기했다. 그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도 많다면서 대번에 이해했다. 센터는 증상을 과장해서 놀이치료를 권하는 경우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위로를 건네며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친구 부부는 다람이가 좋아하는 간식들도 많이 준비해두고, 떡볶이 다음으로 좋아하는 메뉴인 피자를 시켜주었다. 다람이가 엄마 품에 안겨서 입을 닫고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행동했다.
다람이는 이번에도 친구의 집에서 말을 하기까지 3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의 집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낯을 가리는 아이를 지켜보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지만 사실 우리 부부는 그 모습이 창피하기도, 답답하기도, 안쓰럽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본인이었을 테지만.
나는 사람들이 몹시도, 더없이, 아주, 엄청, 잔뜩, 많이, 굉장히 고맙다. 사람들 없이 부부 둘이서만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의 사회성을 길러주는 일이라는 건.
정말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