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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구함 Oct 29. 2022

우리 손녀가 그럴 리가 없잖아

부정의 단계를 넘어서면,  



부모님에게 다람이의 상태를 얘기하자 보이신 반응이었다. 


"저렇게 활발하고 밝은 아이가 왜?" 

 

센터에 다녀왔고, 전문적인 검사를 받은 결과라고 말씀드려도 쉽게 믿지 않으셨다. 

받아들이기 어려우신 것 같았다. 


현실 부정 단계였다. 


퀴블러 로스라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는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서서히 맞이하는 데에 부정에서부터 분노, 타협, 우울감, 납득의 단계들을 거치면서 이를 받아들이게 되는 심리상태를 가리켜 '분노의 5단계'라고 정의했다. 


1 부정 (Denial)

2 분노 (Anger)

3 타협 (Bargaining)

4 우울 (Depression)

5 수용 (Acceptance)




나 역시 그랬다. 선택적 함구증을 가리키는 증상들이 많았지만 애써 외면했다. 그럴 리가 없어. 

하지만 나의 현실 부정이 오래될수록 아이의 상태는 악화됐다. 분노-타협-우울의 과정이 섞여서 나타난 것 같다. 어쨌든 나는 결국 수용의 단계에 이르렀다.


나 역시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기에 부모님과 처부모님에게도 시간을 드렸다. 부정을 거쳐 결국 수용하시는 단계까지 이르시기를 바랐다. 되도록 희망적인 말씀을 드렸다. 함구증은 뒤늦게 알수록 치료가 어렵다고, 빠르고 적극적인 대응만이 다람이를 위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다람이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울어도 안절부절하지 않고, 작은 성취와 실패를 혼자서 해낼 수 있게 믿어주고, 대신 대답해주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우리 모두가 바라는 건 다람이의 성장이니까.


다행히 이제는 가족 모두가 수용의 단계에 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함께 용기를 냈다. 현실을 인정한 다음부터는 쉬워졌다. 

다람이 앞에선 '그 증상'에 대해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다람이를 도왔다. 혼자 할 수 있도록 북돋아주고 기다려줬다. 울거나 짜증을 내도 스스로 진정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 가끔 기다리지 못했고 대신 대답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다 같이 노력했다. 


사랑하는 딸과 손녀에게서 적당한 거리를 두는 일은 가족이 함께 성장하는 경험이었다. 



현실을 인정하고 난 다음에는 부모가 변했고 거기서부터 변화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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