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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구함 Sep 21. 2022

함구증을 쉽게 표현하면 "할많하못"

할 말은 많지만 하지 못..



선택적 함구증

발화 능력에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사회적 상황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로, 불안 장애의 일종이다.
선택적 함구증의 핵심적인 증상은 언어 기술 능력에 문제가 없음에도 말을 하는 것이 기대되는 특정한 사회적 상황(발표 상황 또는 가족을 제외한 친척 및 교류 관계 등)에서 말을 하지 못하거나 반응이 없는 상태이다. 즉 말을 할 줄 알지만, 자신이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을 '선택적'으로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말할 것인지를 선택하여 말하는 행동을 특징으로 한다.  - 출처: 두산백과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아내가 씻는 동안 다람이와 놀았다.

소파 위에서 레슬링인지 뭔지 모를 몸놀림으로 놀았다. 몸으로 노는 것도 즐겨하고, 좋아하는 노래에 맞춰 춤도 추는 흥 많은 아이. 집에서의 모습만 보면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증상을 의심하기 어렵다. 아니 불가능이다. 집에서는 누구보다 활발한 5살 아이니까. 


한참을 깔깔거리고 놀다가 다람이가 내 눈을 손으로 쳤다. 나는 순간 아파서 악 소리를 냈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는 다람이.


나는 이때다 싶어 더 아파했다. 누가 봐도 아파 보이면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하지만 다람이는 역시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다람이에게 잔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빠 지금 다람이 손에 맞아서 눈이 아파. 다람이가 일부러 한 게 아니란 걸 아빠는 알지만 만약에 친구들이랑 놀다가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떡할 거야? 지금처럼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미안하다고 말해줘야 돼. 다람이 알고 있지?" 


역시 아무 말이 없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다람이는 입을 닫고 신났던 기분까지 닫아버렸다. 하지만 나는 다람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친구들과 이런 일로 싸우지는 않을까 노파심에 잔소리는 계속 나왔다. 한번 시작한 잔소리는 다다다다다 이어지며 멈추질 못했다. 내 머릿속 어딘가에선 이젠 그만 멈춰! 를 외쳤지만 나에게 닿지 않았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아이가 내 눈앞에 있었다.

다람이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어릴 적 나와 어쩌면 저렇게 똑같을까.




내가 몇 살 때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8살 언저리 아니었을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어느 주말 나는 거실 소파에서 아빠랑 레슬링을 하며 놀고 있었다. 그러다 머리로 아빠의 앞니를 받아버린 거다. 악 소리를 외치며 화장실로 달려간 아빠의 입술에선 피가 났고 앞니는 흔들거렸다.

나는 아빠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보고 있었다. 나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화장실 거울에는 화를 참는 아빠와, 그 뒤로 당황한 내 모습이 비쳤다.


30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미안함, 당혹감, 놀람의 감정들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는 아빠에게,


"아빠 미안해요.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아빠가 오랜만에 회사 안 가고 나랑 놀아줘서 너무 신났어요.

많이 다쳤어요? 화내실 줄 알았는데 화 안내서 고마워요. 반창고라도 붙여드릴까요?

아빠 좀 괜찮아지면 다시 또 레슬링하고 놀았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입 밖으로 저 말들이 나오지 않았다.

할 말은 많았지만 하지 못했다.


다람이도 아마 어린 나처럼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거다.


"아빠! 나도 알아! 근데 미안하다는 말이 아직 나한테는 너무 어려워. 그러니까 좀만 기다려줘. 나도 하고 싶단 말야."


이런 말들이 조그만 입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빙빙 돌고 있었겠지.

나는 잔소리를 깊은 곳으로 욱여넣고 천천히 말해줬다.


"근데 다람아~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긴 해. 아빠도 어렸을 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정말 어려웠어. 그래도 그런 말들은 꼭 해야 하는 거야. 친구들이 오해하니까. 다음에는 이런 일이 있으면 아빠한테 미안하다고 꼭 말해줘~" 했더니


화장실에서 나온 아내가 거들었다.


"맞아~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어렵긴 해. 근데 다람이는 꼭 할 수 있을거야~"


엄마와 아빠가 함께 감싸주니 기분이 풀어졌는지 조금 나아진 기분으로 이를 닦으러 가는 다람이.

이젠 이도 혼자 닦는데, 그래 언젠가는 하겠지. 조급하지 말자 다짐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다람이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 나는 말없이 다람이를 꼭 안아줘야만 할 것 같다. 아빠에게 미안하다 말하지 못한 8살의 나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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