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치의
절묘한 표현이다. 숨 쉬고 있는 공기에 빠져 익사라니.
<엄마, 가라앉지 마>라는 책에 있는 표현인가 보다. 책 소개 글에서 본 듯하다.
조만간 주문해서 읽어볼 참이지만 혹여나 너무 슬플까 봐 잠시 숨을 고른다.
우울을 유발하는 호르몬에 저항했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마치 불에 젖은 두꺼운 솜이불을 둘러싸여 아주 작은 빨대로 숨을 쉬는 기분. 힘껏 들이쉬어도 쇠로 만든 4차원의 공기가 입체적으로 짓누른다. 도무지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색깔로 치자면 우윳빛이고 효과로 치자면 지나치제 블러 효과를 많이 준 산소가 부족한 쇠로 만들어진 기이한 기체에 둘러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우적 대도 손가락 사이로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 그런 이상한 상태. 나 조차도 규명할 수 없는 아무렇지도 않은 상태이지만 결코 아무렇지 않지 않은 상태. 그저 콧속 깊은 곳에서 머리 뒤통수를 관통하며 느껴지는 쇠수저가 도기에 긁히는 거슬리는 주파수가 공존하는 불안정한 상태. 1분 1초로 벗어날 수 없고 끝나지 않는 상태. 작가도 이런 걸 느꼈나 보다. 그래서 숨 쉬고 있는 공기 속에 빠져서 익사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설명을 했던 것 같다. 너무 적절한 표현이라 기억해 두고자 옮겨 적는다.
이따금씩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가게 될까 봐 두렵다. 돌아가지 않기 위해 난 모종의 거래를 했었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보겠다고. 끝이 없는 게 아니라 끝이 있는 거라고, 그래서 더 힘을 낼 수 있는 거라고 결심하던 바로 그날 나는 다시 태어났다. 조금 무거운 집을 이고 다니는 것뿐이라고, 그래서 힘이 좀 달린 거라고, 대신 마음의 근육이 더 생겼을 것이고 그거면 된 거지. 폐활량이 딸리면 잠시 멈춰서 더 깊게 더 크게 숨을 쉬면 된다. 현란한 날도 있고 적막한 날도 있다. 단지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