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한 긴장감을 콕콕 찍고 지르밟고
전학생의 입장에서 이곳(한국의 중학교)은 정말 ‘외딴곳’이었을 것이다. 빽빽한 수업시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앉은 채 수업마다 바뀌어서 들어오는 선생님들의 수업을 듣는 거하며 알아듣기 힘든 낯선 언어까지. 훨씬 자유분방한 미국에서의 학교생활과 많이 비교됐을 터였다. 게다가 거의 전교생이 한때 미쳐 있었던 고무줄놀이까지 이상한 곳이라고 생각했을까. 선생님들이 내주시는 깜지 숙제를 하느라 쥐가 나는 손목을 부여잡고 종이 치자마자 우리만의 탈출을 시도한다.
“오늘도 쉬운 걸로 가르쳐 줄게. <오즈의 마법사> 같이 한번 해보자.”
고수가 전학생에게 말했다. 전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잘 적응하려면 이걸(고무줄놀이) 해야만 하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오즈의 마법사>는 만화 애니메이션의 주제가이다. 찾아보니 1989년 KBS에서 방영되었던 것으로 나온다. 이 노래도 한 소절이 8박으로 이루어져 있고 발 모아 구르기로 시작한다. 이 노래의 핵심은 뒤에서 오른발로 콕콕 찍는 동작이다. 도로시가 구두를 탁탁 치는 동작에서 착안한 것일까. 아무튼 노래의 내용과 찰떡인 동작이다.
한번 연습했던 터라 높은 단계에서도 발을 구른 후 오른발로 고무줄을 거는 일은 유연했던 전학생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키가 작아서 높은 단계에서 줄을 놓치는 일이 더러 있었다. 어쨌든 일단 줄을 걸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매우 수월 해진다. 여려 명이 지그재그로 엇갈린 대형을 서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높은 단계에서도 줄은 무릎 아래, 발목 근처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른발로 고무줄을 건 이후에 이 노래의 핵심 동작이 등장한다. 어렵지 않은 포인트 안무 정도로 보면 된다. 보통은 가만히 서서 오른발로 뒤쪽에서 콕 찍는다. 한 번은 다리를 크로스 시켜 줄 건너편으로, 또 한 번은 다시 제자리로, 마지막으로 줄을 한번 콕 밟고 나서 그 자리에서 줄을 뛰어넘는다. 그렇게 빙그르르 돌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즉 처음 시작한 자세에서 곡이 끝날 때까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그대로 하는 것이다.
보통은 가만히 서서 박자를 맞추며 오른발로 콕 콕 찍는데 그 와중에 흥이 많은 아이들은 왼발도 번갈아가면서 들썩이며 박자를 맞춘다. 일종의 변형이다. 발을 잠시도 땅에 붙일 수 없는 에너제틱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변형이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살짝 멋있게 보였다. 그냥 우리끼리 그런 게 있었다. 고수도 그런 식으로 무심하게 흥을 맞추곤 했다.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운동할 때 그러면 안 되지만, 절제된 최소한의 동작으로 고개는 45도 아래를 향한 채 적당히 흥을 타면서 늘 끝까지 살아남았다. 수묵화에서의 여백의 미와 같은 절제와 절도가 마디마디 매듭이 진 가늘고 까만 고무줄 위에서 실려 있었다고나 할까.
“만세 단계에서는 고무줄을 어떻게 걸어?”
전학생이 물었다. 물리적으로 그냥 거는 것은 힘들었다. 만세 높이에서는 제 아무리 유연한 사람도 발끝이 고무줄에 닿지 않는다. 물구나무를 서서 팔의 길이까지 합치면 모를까(그렇게 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옆 돌기 후 다리로 고무줄을 거는 것인데 일종의 묘기였다.) 무리하게 시도했다가는 나자빠지기 십상이다. 다리를 앞으로 올려도 옆으로 올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우리끼리 만세 단계에서만 허용되는 손으로 ‘줄 내리기’라는 것이 있었다.
손으로 줄을 잡는 것이 아닌 (와중에 줄을 잡으면 또 반칙 이랬다.) 손을 쫙 펴서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발이 닿는 높이까지 줄을 내려 발을 거는 것이다. 박자를 차치하면 안 되니 거의 동시에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가끔은 만만세라고 그 와중에 줄을 잡고 있는 키가 제일 큰 아이들이 만세 단계보다 더 높게 까치발까지 들고 서는 경우도 있었다. 키 작은 아이들이 아무리 점프를 해도 손이 닿지 않게 저 멀리 저 높은 곳으로 줄을 위치시켜 대거 탈락을 유도했다. 높아지는 줄을 따라가기 위해 대부분은 폴짝폴짝 뛰었다. 그런데 고수는 최대한 유연성을 활용했다. 그것도 남들이 하지 않는 신박한 방법으로 말이다. 발끝이 닿을 수 없는 높이에서 비로소 점프를 가미한다. 그 모습이 때로는 절도 있는 태권도 동작 같기도 하고 우아한 발레 동작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고난도 기술을 전학생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따라 했다. 선수급의 다리 찢기 실력을 가져서 가능했었던 것 같다. 일자를 넘어 반대방향으로까지 넘어갔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고무줄놀이는 한국 토박이 스타일과 아메리칸 치어리더 스타일까지 버무려진 글로벌한 고무줄놀이가 되었다.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에너지가 나올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그저 그 나이 때라서 가능했던 건지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절이어서 그랬던 건지. 지금 시점에서 그 옛날을 떠올리며 고무줄을 다시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실천해 보기 전까지 전혀 다른 몸뚱이와 상황이 되어버린 것을 실감해 버렸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여럿이 함께 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확실히 여럿이서 하게 되면 수월해지는 동작들이 있다. 또 누군가의 박자 세는 소리, 누군가의 노랫소리, 다 같이 뛰는 발소리 등이 어우러지면서 이 한 곡을 완주해야겠다는 오기도 생긴다. 그런데 현실은 그 모든 소리가 추억 속에 묻혀 파동 형태로 우주 미아가 된 지 오래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여파로 혼자 할 수 있는 홈트레이닝이 대세가 되었다. 세 번의 출산을 거치면서 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건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되자 운동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누워서 하는 근력 운동만 찾으며 요령의 부리던 나에게 운동의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나이 탓이려니 생각하다가 그 중요하다는 유산소 운동을 등한시했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유산소 운동은 꾸준히 하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걷기 운동도 40분 이상 해줘야 했고 그러기에는 의지가 그리 강하지 못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시계만 바라보는 것은 크게 동기부여가 되지 못하고. 작심삼일이 되기 일수였다.
고무줄놀이는 같이 할 수도 있고 혼자 할 수도 있는 놀이이다. 같이 하는 것의 장점도 많지만 여기서는 현재 상황에 맞게 혼자서도 가능한 장점을 먼저 짧게 짚고 넘어가기로 한다.
우선 준비물이 간단하다. 그저 고무줄만 있으면 된다. 과연 요즘에도 고무줄이 온라인상에 팔까 싶었는데 왠 걸 몇 천 원 만 주면 60가닥들이 고무줄이 배송된다. 그걸 몇 개 매듭을 지어 이어서 사용하면 된다.
두 번째로, 혼자서도 가능한 운동이다. 예전에는 고무줄을 잡아줘야 했기에 3 사람 이상이 필요했지만 사실 아무 데나 묶어서 사용해도 뛰는데 큰 지장이 없다. 즉 혼자서도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세 번째, 장소의 제약이 없다. 층간 소음 이슈가 없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오케이이다. 장소를 물색하다가 아파트 앞 배드민턴장을 선택했다.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는데 한쪽은 네트가 걸려 있었고 다른 한쪽은 네트 없이 기둥만 세워져 있었다. 처음에는 기둥만 세워진 곳에 고무줄을 걸어서 사용하려고 했는데 길이가 생각보다 길어서 (고무줄 4개를 연결해야 했다.) 혼자 뛰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웠다. 그러다가 네트와 네트 사이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혼자 하기에 폭도 적당했고 단계별로 높이를 조절하는 것도 수월해 보였다. 혼자 고무줄 뛰기에 적합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놀이터에서 할 수도 있고 의자 같은 것에 묶어서 할 수도 있다.
네 번째, 아주 좋은 유산소 운동이다. 일정한 시간 동안 뜀을 뛰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유산소 운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지루함이다. 그런데 고무줄놀이는 노래에 맞춰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찌 됐든 노래가 끝날 때 까지는 좋든 싫든 뛰게 된다. 그리고 각 노래마다 마스터해야 할 기술들이 있고 고무줄의 높이마다 난이도가 달라지게 된다. 즉, 마스터를 하는 재미를 느낌과 동시에 이는 고무줄놀이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다섯 번째, 그 밖의 유연성 및 민첩성, 근지구력을 향상할 수 있다. 다리를 쫙쫙 올리는 일부터 유연성이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런데 스스로 다리를 들어 올리면서 힘을 쓰기 때문에 유연성과 함께 근력도 향상된다. 박자에 맞춰 민첩하게 동작을 수행해야 하고 특히 높은 단계에서 유연성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유산소 운동으로 기초 체력을 증진시키면서 덤으로 유연성과 근지구력을 챙긴다.
여섯 번째, 고무줄놀이는 적당히라는 타협이 안된다. 힘이 빠지면 고무줄에 걸려버리고 만다. 요령도 물론 있다. 하지만 어찌 됐든 다리를 들어 올려 고무줄을 넘겨야 하기에 ‘적당히’라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
일곱 번째, 재미있다. 고무줄놀이는 혼자여도 즐길 수 있고 여럿이 하면 더 재미있다. 재미라는 요소는 운동을 지속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만하라고 해도 더 하게 하는 것이 ‘재미’라는 요소이다. 그 재미는 놀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이 놀이의 특성을 운동에 접목시켜보는 것이다. 규칙이 있고 레벨이 있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만족과 희열이 생기기 때문에 운동으로서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여덟 변째, 자기 스스로 운동량을 조절할 수 있다. 운동량은 노래를 단위로 끊어서 조절할 수 있다. 1절까지만 하는 방법, 2절까지 하는 방법 등 마음대로 조절이 가능하다.
아홉 번째, 자기 스스로 난이도 조절이 가능하다. 난이도는 대게 높이로 조절한다. 높아질수록 고무줄이 달아나기 십상이다. 올려야 하는 다리 높이도 높아지고 고무줄이 빠지지 않도록 쓰는 기술이 늘어난다. 자신에게 적당한 곡을 선택해서 운동을 할 수도 있고 적당한 높이를 선택해서 익힐 수도 있다.
열 번째, 응용이 가능하다. 고무줄놀이의 곡들은 대게 한 소절이 8박이다. 즉, 8박(4분의 4박자)의 곡이라면 어떤 곡이든 고무줄놀이를 할 수 있다. 즐겨 듣는 노래에 고무줄 동작들을 짜깁기해서 새로운 고무줄을 만들어 응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열한 번째, 친근하다. 처음 보는 새로운 운동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한때 동네를 주름잡았던 고무줄놀이의 고수들이었는데 단지 어떻게 했었는지 기억이 안 날 뿐이지 않은가. 기억을 조금만 일깨워주면 우리는 충분히 날고 길 수 있다. 전혀 새로운 운동을 배우는 것보다 훨씬 더 적은 노력으로 최고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하다못해 줄을 끊으러 쫓아다녀본 적도 있었지 않은가. 이 마저도 어떤 연결고리가 없다 손 치더라도 우리의 전통 놀이라는 사실로 충분히 우리에겐 친근하다.
열두 번째, 배우기가 쉽다. 얼마나 쉬운지 아이들이 곧잘 한다. 아이들이 주로 했던 놀이이다. 아이들이 할 수 있다면 어른들은 말해 무엇하나. 아이들 놀이라는 인식 때문에 부담스럽다는 사람들의 편견을 아마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사라져 있을 것이다.
열세 번째, 가족이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놀이이다. 엄마들이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고 또 온 가족이 야외에 나들이 나갔을 때도 즐기기 좋은 놀이이다. 요즘 휴대폰에만 빠져 있는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이제 다 같이 한번 즐겨보자. 잊혀 가는 옛 전통 놀이의 불씨를 다시 한번 살려보자. 단언컨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 운동이라는 옷을 입게 되면 현대에도 걸맞지 않을까. 한가득 사심을 담아 이렇게 덕질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