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이천봉의 점프
열린 창문 너머로 흘러나오는 합창부 아이들의 ‘카타리 카타리’ 노랫소리를 뒤로 한 채 우리는 뒤 운동장에서 여느 때처럼 고무줄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까지 줄 밖에서 시작하는 고무줄놀이를 했다면 지금부터 할 고무줄은 줄을 다리 사이에 위치시켜 시작하는 거야.”
고수가 말했다.
“금강산이야. 이 노래에서는 점프를 잘해야 돼. 참 너 점프 잘하지? 지난번에 보니까 완전 높이 뛰던데.”
전학생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뛰는 건 자신 있는 듯했다. 처음에는 곧잘 하더니 나중에 단계가 올라 갈수록 애를 먹었다. 단순한 점프로는 뛸 수 없는 높이이다. 이를 성공시키려면 기술이 필요하다.
“아, 이건 이렇게 하면 돼. 잘 봐.”
고수가 시범을 보였다.
금강산을 찾아가는 <금강산>이라는 제목의 노래이다. 줄을 다리 사이에 넣고 준비자세를 취한다. 그리고는 박자에 맞춰 오른발을 줄 건너 뒤로, 그리고 앞으로 밟아 나간다. 그러고 나서 두 발을 모은 후 점프하여 오른발을 넘기는 동작이 있다. 그렇게 8박자가 지난 후 두 번째에서는 왼발을 뒤로 올려 반대방향을 향하고 다시 시작한다. 이 점프 동작은 낮은 단계에서는 그저 높이 뛰면 된다. 어려울 것이 없다. 그런데 높은 단계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점프로는 도무지 뛸 수 없는 높이로 고무줄이 말려 올라가면 끝장이다. 그래서 우리는 줄을 가둬야 한다. 대게 무릎 아래 발목 가까운 위치로 걸쳐 둔다. 줄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발목에 걸쳐 놓은 채로 줄이 도망가지 못하게 가두는 것이다. 이건 사람이 많을수록 서로 엇갈린 대형에서 더 가두기가 쉬워지지만 혼자라고 해서 못할 건 없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자질 구래 한 기술들이 요구된다. 줄을 가두기 위해서는 노래의 앞부분인 ‘금강산 찾아가자’ 파트에서는 줄을 오른발 안쪽에 거는 것이 유리하므로 줄이 왼쪽으로 치우쳐진다. 그런데 “일만 이천 봉’부터는 오른 발의 바깥쪽으로 밀착시켜 줄을 가두는 것이 다음 단계인 점프를 할 때 유리하므로 몸은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순간적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마치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들이 속도를 낼 때 옆으로 다리를 쫙쫙 밀고 나가는 것처럼 반대편으로 잽싸게 순간 이동해야 한다. 줄을 무릎 아래 최대한 발목 쪽으로 가둔 후에 점프할 때 말을 바깥으로 감아 순간적으로 발을 빼는 것이다. 그냥 빼면 신발 끈에 걸릴 수 있으므로 바깥 방향으로 포물선을 그리듯이 재빨리 돌려서 고무줄을 넘는다. 마치 공중 떠 있는 채로 멈춰 있는 것처럼 멋진 장면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음 동작을 이어 나간다. 이때 줄을 놓쳐서 줄이 위로 올라가버리면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아웃이다. 굉장한 순발력이 필요하다.
고무줄놀이는 가만히 제자리에서 뛰는 운동이 아닌 고무줄을 다스리는 놀이이다. 때에 따라 좌에서 우로 왔다 갔다 움직이기도 하고 원을 그리면서 줄을 다리의 원하는 위치에 가두어 두고 뛰기도 하고 넘고 밟고 감는다. 스케이트 선수가 빙상장을 누비듯이 고무줄의 탄성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양쪽을 모두 누벼야 한다. 마치 냄비 속 수프를 눌어붙지 않게 한쪽 방향으로 동그랗게 커다란 원을 그리며 천천히 저어주듯이 그렇게 고무줄을 다리에 걸어 바깥 방향으로 끌어당기거나 바깥쪽으로 밀어내서 어떤 높이에 있어도 고무줄을 발목 쪽에 가까이 가둬 둘 수 있어야 한다. 이 원리는 모든 고무줄놀이에 적용된다. 잘 익히고 나면 그야말로 고무줄 할 맛이 나기 시작한다.
저녁 준비하며 국거리를 휘휘 젓다가 허리가 아파서 기지개를 한번 켜어본다. 여기저기 아픈 건 나이 탓일까. 살은 어쩔 수 없다 손 치더라도 건강은 스스로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여기저기 아픈 건 필히 내가 게을러서 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운동이라는 걸 하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나서 하는 것이 아닌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것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이때부터 이것저것 ‘시도’라는 걸 하기 시작해본다. 불현듯 옛 기억에서 사라질 뻔한 고무줄놀이를 운동에 접목시켜봐야겠다고 생각 한 순간, 머리에 튕겨진 고무줄을 맞았을 때처럼 눈앞이 번쩍 거리는 걸 느꼈다.
몸을 돌보지 않다가 40대가 되어 마음먹고 시작했던 운동들은 만만치 않았다.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랐던 시절, 통증을 잡기 위해 트리거 포인트 마사지를 했고 굳어버린 관절의 유연성을 회복하기 위해 스트레칭을 부지런히 했다. 근력을 기르기 위해 근력 운동도 시작하였다. 홈트레이닝은 주로 근력 위주로 했었는데 초반에만 땀이 나더니 나중에는 땀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잡히는 살들을 빼기 위해 유산소 운동도 시도해 보았다. 처음 시도했던 것은 줄넘기였다. 그런데 몸이 너무 둔해서 줄에 자꾸 걸렸다. 뛰고 나면 다리가 근육이 뭉쳐서 단단해졌었는데 그때 다리를 풀어줘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대로 방치하곤 했었다. 몸이 가벼워지는 것이 아닌 돌덩이처럼 딱딱해지고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줄넘기를 잠시 중단했다. 줄넘기는 숫자 세기 위한 나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다음에는 걷기도 해 보고 재미있게 뛰어보고 싶어서 트램펄린 운동도 해봤다. 그런데 끝까지 성공한 것은 아직 없었다. 끈기가 많이 부족한 편이었나 보다. 그만큼 유산소 운동을 싫어했다는 반증이었다.
몸 여기저기가 아파서 통증케어에는 진심이었는데 분명 불어난 체중을 줄여야 좋아진다는 사실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유산소 운동이라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실내 자전거는 지속적으로 하기 힘들었고 러닝머신도 마찬가지였다. 또 코로나로 인해 헬스장에 가는 것도 힘들었다. 걷기 운동이 제일 좋을 것 같긴 한데 40분 정도의 시간을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다음으로는 온라인으로 홈트레이닝 영상을 보면서 유산소 운동을 시도했다. 대부분 영상을 보며 홈트레이닝으로 진행했는데 웃기고 재미있는 영상으로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있었고 춤을 추거나 태보 같은 방식도 있었다.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는 것도 있었고 시간을 정해서 끊어서 하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기 전에 큰 용기가 필요했고 자꾸 다음으로 미루려는 유혹에도 쉽게 넘어가버리곤 했다. 따라만 하는 운동에서의 버티는 힘은 화면 구석에 표시되어 있는 남아있는 시간뿐이었다. 몇 번만 더하면 끝나니까 최대한 버텨보자는 식이다. 시간을 미리 알 수 있게 표시를 해주는 것도 있었고 아무 표식이 없는 것도 있었다. 자꾸만 시계를 쳐다보게 되는 것은 나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도무지 언제 끝나는지 모를 운동을 하염없이 따라 하는 것은 실제 강도가 세지 않았다 하더라도 충분히 힘들었다. 마음속으로 숫자를 천천히 세거나 틀리게 세는 강사 선생님이 너무 미웠다.
홈트레이닝의 유산소 운동을 따라 하는 것은 힘든 동작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힘들다. 왜 그런 것일까. 아마도 따라 하는 동작들은 다음 동작을 모르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운동을 할 수 없어서 인 것 같다. 내가 미리 알고 있는 동작들은 그다음으로 오는 동작들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양을 뛰더라도 덜 힘든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고무줄놀이가 유산소 운동으로 좋은 것 같다. 고무줄놀이는 만세 단계까지 틀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이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원동력이자 고무줄놀이를 계속하고 싶게 하는 원동력이다. 고무줄은 8곡을 1절 정도 하면 5-6분 정도 걸린다. 2절까지 하면 10분 정도 걸린다. 솔직히 10분간 타바타 운동을 하는 것도 숨 넘어가도록 너무 힘든데 나처럼 힘든 운동 하기 싫어하는 사람도 고무줄놀이는 쉬지 않고 10분이 가능했다. 운동하기 싫은 나에게는 딱이었다.
생각해보니 어른이 된 이후로는 버스 놓치기 싫어서 달려갈 때 빼고는 뛸 일이 별로 없었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움직일 때는 차로 움직이니 정말이지 의식적으로 뛰지 않으면 도무지 뛸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뛰는데 쓰이는 근육들은 모두 퇴화하고 지금은 뛰지도 못하는 비루한 몸뚱이가 되고 말았다. 뛰는 일 자체가 굉장한 결단과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그런데 고무줄놀이는 친근한 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가볍게 시작할 수 있고 부담이 크지 않다. 띄는 것에 있어서 거창한 결단과 동기부여라는 허들을 고무줄놀이가 낮춰주는 것 같다. 색다르고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운동으로 고무줄놀이를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