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서의 조깅 라이프
워싱턴의 그림 같은 산들과 호수 등산에 관하여 글을 쓰다가도 내 글이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다 담기엔 턱없이 부족해 몇 달째 끄적대고만 있는데 작년 땡스기빙부터 새로운 관심사가 생겼다. 달리기.
평생 달리기를 잘한 적도 없었고, 고등학교 시절 축구부에 들어가기 위해 목구멍에서 피맛이 나도록 달린 이후로 달리기는 생각만 해도 거부감이 드는 단어였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을 동경할 뿐, 한 번도 내가 해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살고 있던 그때. 동네 친구가 러닝을 같이 시작해 보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해왔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이 아름다운 워싱턴에서 달리기를 시작하지 않으면 앞으로 평생 뛸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서 뛰러 나갔는데 웬걸, 등산으로 알게 모르게 체력이 꽤 다져졌는지 내게 쉬지 않고 5km를 뛸 수 있다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달리기에 중독 증상이 시작되었다.
운동의 기본 중 기본이자 끝판왕. 내가 했던 모든 운동이 달리기로 시작해서 달리기로 종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걷기 다음으로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션, 달리기.
조깅이 정말 좋은 이유는 1. 신체 건강, 2. 절제력(self-displine), 3. 정신 건강의 향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정신적인 부분에 대해서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은데 심박수를 올리는 첫 10분은 꽤나 괴롭지만 올라간 심박수를 유지하며 계속해서 달리는 과정에서는 마음의 평화와 자아도취가 찾아온다. 대단한 장거리는 아니지만 5-7km를 쉬지 않고 뛰는 데는 상당한 자기 절제력이 필요할뿐더러, 뛰는 동안에는 내가 정말 멋진 사람인 거 같고, 모든 걸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솟아오른다. 이것이 러너스 하이일까? 이 부분이 조깅에 중독을 부르고 있다. 현재, 내가 살아온 그 어느 때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고 느끼고 있다.
겨울이면 시도 때도 없이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시애틀의 사람들은 겨울에 해가 뜨면 해님을 영접하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가길래 도대체 다들 왜 저러나, 싶었는데 1년 사이에 내가 딱 그런 시애틀 사람이 되어서는 해만 뜨면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일 포함) 달리기를 하러 나가고 있다. 등산을 더 잘하기 위해 체력 보강을 위한 운동쯤으로 생각하고 시작한 달리기였는데 비가 오지 않고 반가운 해가 뜨는 날이면 어김없이 동네 호수로 나선다.
가을에 특히 그림같이 멋진 이 호수는 한 바퀴를 돌면 정확히 2.8마일(4.5km)로 초보를 위한 완벽한 조깅 코스이다. 내 집 바로 앞에는 걸어 나가면 한 바퀴가 10km인 멋진 호수가 있는데 아직 초보라 10km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10분쯤 운전을 하고 가서 이 호수를 뛰고 있다. 그래도 뛸 때마다 가능하면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려는 노력으로 2.8마일 한 바퀴로 시작해서, 달리기 3개월 차인 지금은 최대 4.2마일(6.7km)까지 뛰어봤다. 꾸준히 해서 2024년에 10km를 한 번쯤은 달려보고 싶다.
11월 18일 조깅을 처음 시작하였으니 출장을 갔던 주들을 빼고는 매주 3회 달리기를 했다. 나 자신을 특히 칭찬하는 순간은 앞으로 5일 동안 달리기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퍼 출장 가기 전 날 달리러 나갔던 것과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 한번 경유를 하고 총 8시간 비행기를 타고 밤늦게 집에 도착해 다음날 일어나서 정말 죽을 것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음 날 비 예보에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라는 생각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호수로 뛰러 나갔던 것이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처음 시작했던 기록에서 두달 동안은 마일당 기록이 만족스럽게 줄어왔는데 최근 정체기에 들어섰다. 기록을 위해 뛰는 것은 아님에도 못내 서운한 마음인데, 결국 기록 향상을 위해서는 근력운동이 동반되어야 함을 느끼고 있다 등산을 잘하기 위해 하는 달리기를 잘하기 위해 하는 웨이트.
30분 투자로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기분 전환, 조깅. 배우 유해진이 어느 시상식에서 본인이 외롭고 힘들 때 늘 곁에 있어주는 북한산에게 영광을 돌린 적이 있었는데 그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간다. 물론 지금도 많이 고맙지만 미래에 어느 날, 30대의 나를 회상하며 그린 레이크,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라고 돌아볼 날이 꼭 있을 예정이다. 그 대단한 사람, 항상 그린 레이크를 뛰고 있었어,라고 기억되기를 소망하며,
이 글은 달리기에 나를 입문시켜 준, 달리기를 하기 위해 동네 호수 앞으로 이사를 한 제 친구에게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