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여행에서 뭐가 제일 좋았냐고 묻는다면 알테 피나코텍과 다하우 수용소을 꼽겠다. 물론 후자는 좋다기보다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일으키는 곳이었지만.
노이에 피나코텍은 바이에른 왕국 루드비히 1세가 그의 개인 컬렉션을 모으기 위해 세워졌다. 1853년, 알테 피나코텍의 맞은편에 세워진 이 건물은 유럽 최초 현대 미술관의 타이틀을 얻는데 1868년, 루드비히 1세가 세상을 떠나며 그리스와 로마에서 모티브를 얻은 신고전주의와 인간의 감정에 주목하는 낭만주의 작품이 주가 된 425점의 작품을 남긴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바이에른 주는 뮌헨 글라스 팔라스 식물원에서 열렸던 국제 출품 전에 출품했던 작가들의 그림을 사들이기 시작하고 (이 글라스 팔라스 식물원은 불에 타면서 건물과 많은 작품들이 훼손이 되며 건물을 다시 올리려고 했으나 나치당이 집권을 하면서 히틀러가 이 자리에 하우스 데어 쿤스트를 세운다) 당시 예술 비평가이자 개인 콜렉터들이 미술관에 작품들을 기부한다.
1909년에 휴고 본 츄디가 예수와 성모 마리아를 성스럽지 않고 원색적으로 그린 폴 고갱의 "신의 아들" 작을 구입했다는 이유로 베를린 내셔널 갤러리에 쫓겨나 노이에 피나코텍의 디렉터로 자리를 옮긴 후 그는 계속해서 프랑스 작품을 노이에 피나코텍에 추가한다. 이때 마네, 세잔느, 고흐 등의 작품들이 노이에 피나코텍에 둥지를 틀기 시작한다.
1915년, 노이에 피나코텍의 소유권이 로얄 패밀리에서 바이에른 주로 넘어가면서 미술관의 전시품도 서서히 바뀌어간다. 루드비히 1세 소장품이었던 작품들 대신 미술관의 디렉터 츄디가 계속해서 개인 소장 작품을 추가하고, 독일 작가들의 작품이 들어선다. 그 후 1919년부터 1939년까지 노이에 피나코텍은 18세기, 19세기의 독일 작품을 위주로 전시하게 되는데 세계 2차 대전이 터지면서 폭격에 대비해 건물을 비우고 작품들도 함께 피신을 간다. 전쟁 중 훼손이 된 미술관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재건축을 했는데 그 이후부터도 40년이 지나서 시설 낙후로 현재는 레노베이션이 진행 중이다.
그래서 원래 노이에 피나코텍에서 전시하는 19세기 그림들이 알테 피나코텍에 걸려있다. 그중에 하나가 고흐의 해바라기다. 뉴욕의 모마에서 그의 The Starry Night, 파리 오르세에서 Starry Night Over the Rhone를 보고 큰 감동을 받은 후 최애를 모네에서 고흐로 갈아탔다. 뮌헨에서 가장 기대했냐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알테 피나코텍에 고흐 해바라기라고 답을 하겠다. 해바라기가 있는 방은 클림트 작품 한점, 모네의 수련, 고흐의 작품 세 점과 폴 고갱의 신의 아들이 함께 미술관 동선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다.
오르세에서 파는 당시 최애 모네의 달력 작품 시리즈가 맘에 들지 않아 대신 고흐의 달력을 사서 손에 들고 인상파방에 들어가서 마주한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생각한다. 다채로운 짙은 남색들의 물결이 만드는 밤하늘에 쫑쫑 떠있는 노오란 별, 환한 별빛아래 다정함이 가득한 귀여운 커플까지 보기만 해도 행복한 그 그림은 붓 터치와 텍스쳐가 그 모든 것을 한층 더 생생하게 만드는 듯했다. 메트로폴리탄에서 고흐의 자화상을 봤을 때도, 시카고에서 고흐의 방을 봤을 때도, 디트로잇에서 고흐의 작품을 보고도 이런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해바라기를 보니 어떤 이유에서 고흐의 그림이 그렇게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지를 생각이 한번 더 정리가 되었다. 고흐의 작품은 3D였다. 고흐의 그림의 붓터치와 질감이 남다르다는 건 모두 알고 있듯 그의 그림은 붓이 물감을 겹겹이 쌓아 올려 작품에 입체감과 생동감을 배로 더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그림을 2D가 아닌, 3D로 내 마음에 훅 다가오게 만드는 것이다.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 그랬듯 해바라기가 그랬다. 눈으로 보고 있는데 부들부들한 꽃밥의 감촉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알트 피나코텍이 더 좋았던 건 오르세에선 사람에게 밀려 밀려 줄을 서서 보고 얼른 비켜줘야 했지만 해바라기 방은 간간히 사람들이 오갈 뿐 방에 엄마와 나밖에 없는 시간들이 주어질 만큼 한가해서 해바라기를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소중한 순간이었다.
물론 고흐 작품에 오랜 시간을 쏟아서 그렇지, 멋진 작품들이 아주 많았다. 기억에 남는 명작들이 있다면 뉘른베르크에서 동상을 봤지만 이 사람 누구야? 하고 지나갔던 주인공 뒤러의 초유명작 모피코트를 입은 자화상 (뉘른베르크에는 뒤러의 생가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클림트의 작품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아델 바우어의 초상화, 피터 루벤스의 초대형 작품 최후의 심판 등등. 미술관은 엄청 크고 작품들도 엄청 많은데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다는 것은 여행을 배로 즐겁게 만들어줬다.
이 외에도 하우스 데 쿤스트, 바바리아 민속박물관, 피나코텍 데 모던 등 뮌헨엔 정말 많은 미술관이 있지만 엄마가 가져온 뮌헨 책에서 잠렁 샤크 미술관(?)(Sammlung Schack) 이 무료라는 말에 속아 박물관 거리를 끝도 없이 걸어 바바리아 민속 박물관과 love, hate 동상을 지나 잠렁 샤크 미술관에 도착했다. 이 미술관에는 티켓 끊어주는 언니와, 엄마와 나, 이렇게 세 사람이 밖에 없었다. 이런 미술관을 멋지게 감상할 소양이 아직은 약간 부족해서 휘릭휘릭 보고 나와 이사르 강 건너 쪽으로 동상이 보이길래 또 계속해서 걸으니 평화의 천사탑과 분수가 나왔다. 이곳 역시 아무도 없이 조용했다. 해가 쨍쨍 유난히 더운 날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오르세에서 모셔온 고흐 달력을 넘기는데 7월의 그림은 뮌헨의 해바라기였다. 2024년 7월, 뮌헨의 해바라기는 나의 운명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