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맨얼굴이 어때서!
기본적으로 나는 굉장한 귀차니스트이다. 화장을 하려면 아침에 준비할 시간을 위해 조금 더 일찍 일어나야 하며 집에 들어오면 씻기 또한 정말 귀찮은 일이라 평소 출근 화장은 얼굴에 쿠션 톡톡, 눈썹을 그리고 볼터치(나는 블러셔를 좋아한다)를 문지르는 것이 내 화장의 전부이다. 요즘은 이마저도 귀찮아서 아침에 일어났는데 피부가 건조해서 갈라졌다, 혹은 상태가 좋아 보인다 싶으면(이라고 쓰고 매일이라고 한다) 어째 좀 까무잡잡해 보이지만 눈썹만 그리고 회사에 간다. 원체 눈썹 색깔도 옅은 데다 눈썹도 없어서 눈썹을 그리지 않으면 도무지 인상이 또렷해 보이지가 않아서이다. 회사에서는 센 캐여야 생활하기가 편한 법. 그래서 아직 눈썹은 포기를 하지 못했다.
캘리포니아에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그 만두 회사를 다니던 시절, 당시 법인장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에 좋은 학교에서 공부한 고학력자이신 것도 좋았고 연세가 꽤 있으신데도 불구하고 오픈 마인드를 가지셨던 점 (꼰대 스타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 의견도 들어줄 줄 아는, 탑다운의 일방통행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으시던), 그리고 직급 차가 엄청난 나 같은 나부랭이들에게도 대화를 시도하셨던 것들은 그의 큰 장점이었다.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뜨거운 햇살과 비가 오지 않는 건조한 날씨에 피부가 고생을 했는데 그 때문에 인중이나 코 주위 피부가 쩍쩍 갈라져 화장을 하기에 얼굴이 너무 아픈 날들이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도저히 화장을 할 수가 없어서 민얼굴로 출근을 했다. 그런데 내가 존경하던 그 법인장님이 지나가며 내게 말을 던졌다.
새봄님, 어디 아파? 아파 보이네.
아픈 게 아니고 이게 내 원래 얼굴인데. 원체 내 피부는 매일같이 얼굴 위로 입혀지던 팩트 같은 하얀색이 아닌데. 내 민낯을 드러내니 왜 아프냐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걸까. 어떠한 당당한 대답도 내놓지 못한 채 웃고 넘기고 말았다. 내 맨얼굴이 어때서. 여자가 꼭 화장을 하고 출근을 해야 한다는 것은 누가 만들어낸 관념인가. 그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나도 결국 시선을 극복하지 못하고 매일같이 분칠을 출근했다. 그리고 그 회사를 떠났다.
그 이후 이직을 해왔고 회사 생활 1년 후 어느 날부터 화장을 하지 않는 나에 대해서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는 내가 내키는 대로 행동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곳은 워낙 다양한 피부톤의 사람들이 있고 화장을 아주 진하게 하는 언니도 있고 아예 화장을 하지 않는 언니들도 있다. 그리고 그 법인장님 같이 내 노 메이크업에 대해서 코멘트를 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다.
여자 사람의 DNA에는 "美"의 대한 관심이 새겨져 있는 것인지 아직도 드러그 스토어에서 갈 때마다 화장품 섹션을 둘러보는 것은 즐겁다. 소유한 화장품 품목에서 제외된 지 오래인 마스카라를 보며 아직도 침을 흘린다. 2년 전 친구가 생일 선물로 준 세포라의 기프트 카드엔 아직도 잔고가 남아있다. 그 돈을 어디다 쓰면 좋을지 블러셔의 발색샷을 찾아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오늘도 노 메이크업으로 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