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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그리뜨 May 17. 2023

카레 냄새가 나는 집

오전 5시 37분 햇살에 눈이 번쩍 뜨인다. 어딜 나가려고 해도 문들이 열어야하니 회사 이메일과 작은 업무들을 본다. 시간도 이른데다 잠도 얼마 못잔 것 같으니 다시 눈을 붙여본다. 아, 얼른 아침이 와서 집 밖으로 나가고 싶다. 도무지 이 집에서 나는 냄새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출장으로 시애틀에 왔다가 공항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부랴부랴 3분 정도 둘러본 집을 계약 하기로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유쾌하지는 않은 냄새가 났던 것 같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월세도 맘에 들었고 무엇보다 재택근무를 해야하는 나에게 당분간 30평이라는 큰 집에 혼자 살면서 가구를 어떻게 배치할까 생각하며 즐거운 상상을 했다.

 

마침내 이사를 오게 되었을 때 회사 출장의 명목으로 호텔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사하게 될 아파트에 간간이 들러 짐이나 날라두었지, 막상 집에서 잠을 자거나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집에서 나는 냄새라는 것이 일상에 어떤 파장을 가지고 올 것인지 그 때는 알지를 못했다.


그 집은 도심에서 약간은 떨어져 나무가 우거진 언덕 위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집 밖의 공기는 늘 산소가 특별히 더 풍부할 것만 같은, 아침에는 이슬을 잔뜩 머금고 있는 것만 같은 그런 아름다운 곳이었다. 근데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지옥이 시작되었다. 아마 전에 살던 사람이 남기고 간 진한 향신료의 향인 듯 했다.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파트 청소팀와서 다시 한번 청소를 했고, 그것도 모자르다고 생각해 부엌을 세제로 닦고, 부엌 카운터탑에 올라가 캐비넷 위에 찌든 기름과 심지어 천장과 벽까지 열심히 닦아봤지만 닦는 그 순간 케미컬로 냄새가 아주 잠시 지워질 뿐, 케미컬이 증발 하고 나면 다시 불쾌한 향신료의 냄새가 났다. 지워지지 않는, 5분에 한번씩 후각이 의식되는 불편한 냄새였다.


도저히 그 집에서는 살지 못하겠어서 돌아오던 주말, 시내에 아파트를 몇 개 보고 집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곳으로 돌아왔는데 어디서 역겨운 바로 그 냄새가 올라왔다. 아래 집이 요리 중이었다. 토마토 향이 섞인 듯한, 큐민과 여러가지를 섞어서 무언가를 만드는 듯 한 그 냄새가. 그 냄새가 위로 올라와서 이런 노답 냄새를 만들어낸걸까. 특정 인종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호흡이라는 것은 무의식 행위이다. 다시 말하자면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은 의식이 없이 일어나야 일인데 그 집에 앉아있으면 5분에 한번은 "냄새"가 인식되면서 내가 호흡을 하고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의식하고 온 신경 또한 후각에만 집중되어 있으니 정신병이 올 것 같았다. 적막한 30평 집에 일만 할수있도록 컴퓨터와 책상만이 셋업 되어있는 그 공간에서 답답하고 막막한 마음에 계속 울었다.


집은 떠나고 싶지 않은 곳이여야한다. 어딜 갔다가도 결국 돌아가고싶은 공간이어야 한다. 며칠 지내지는 않았지만 이 집이 내 집이고, 내가 돌아갈 곳이라고 생각하니 밖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마다 우울함이 몰려왔다. 스트레스를 받는 양이 어마어마하다보니 밥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하루에 한끼를 먹으며 5일을 보냈다. 의식주 중 주가 망가지니 의와 식도 함께 망가져버렸다. 이삿짐이 배달왔는데 도무지 짐을 풀고 싶지가 않았던 이유, 무의식은 알고 있었나보다. 내가 그 집에서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냄새가 1번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동네가 외지고 근처에 뭐가 많이 없다는 것도, 치안에 확신이 들지 않았던 것도 집을 나가겠다는 결정을 신속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또 하나 깨달은 점은 나는 내가 생각했던거보다 도시에서 자란 도시의 사람이라는 점이였다. 대륙을 건너 타지로 가는 이사는 결코 쉽지가 않고 눈물없이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경험이었다. 실수와 실패로 크게 배운 경험이었다.


다행히 아파트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30일 만족 보장 제도를 운영하고있어서 고생스럽게 이사는 했어야했지만서도 5일의 월세만 내고 다른 페널티 없이 이사를 나올 수 있었다. 절박한 마음으로 주말동안 아파트를 보러다니니 다행히 살 집이 또 나타났다. 결국 돌고 돌아 시애틀 다운타운 한복판에 사는 도시 여자가 되었다. 한번 사는 인생, you live only once, 이 때가 아니면 살아보기도 힘들 시애틀 다운타운 한복판에서 이왕이면 한번 즐겁게 살아볼란다.


오피스에서 바라본 시애틀 다운타운 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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