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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Nov 04. 2019

습작

백스물네번째

 버려져 상처 입은 사람은 무엇이든 돌아오리라 믿는다.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은 이미 다 죽고 없기 때문에.    

 

 태어나 처음으로 찾아간 고아원이었다. 크고 작은 아이들이 서른 명 정도 입원해 있었다. 건물 내부는 대체로 조용한 편이었다. 천장 모서리에 스피커 몇 개가 부착돼 있었지만 취침시간을 알리거나 봉사자를 호출하는 용도로 가끔 사용할 뿐이었다. 음악 같은 걸 트는 경우는 없었다. 동료 자원봉사자의 말에 의하면 ‘긍정적이거나 활기찬 음악을 틀어봤자 더 잔인한 분위기가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기야 놀이방에서 일과를 보내는 아이들은 항상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활기를 띠는 것 같았다.


 고아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아이가 얼마만큼의 마음을 소화할 수 있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은 가능한지의 여부와 사뭇 다르다. 가령 어떤 아이가 한 끼니에 먹을 수 있는 최대한의 양이 짜장면 두 그릇 쯤 된다고 하자. 그 이상은 물 한 방울도 더 먹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배가 꽉 차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누구라도 필연적으로 배탈이 나 고생을 하게 되고, 소화기능이 정상적으로 되돌아오기까지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게 돼버린다. 따라서 이 아이에게 ‘소화가능한 양’이라고 하면, 짜장면 한 그릇이 채 안 될 것이다. 사람은 단 한 번의 끼니로 평생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너무 많은 정을 붙이면 안 돼” 그 고아원에서 몇 년 간 일 했다던 봉사자가 내게 말했다. 처음에 나는 겉으로는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속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봉사의 대상인 아이들을 막 대해서야 안 되겠지만, 아주 친절해서도 안 된다니 대체 무슨 소리일까. 나는 그 이유를 첫 날이 다 지나가기도 전에 깨닫고 말았다.


 “선생님! 우리 엄마는 언제 와요?” 이번에는 일곱 살 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그때가 정확히 다섯 번째였다. 다섯 명의 다른 아이들이 똑같은 질문을 한 번씩 했던 것이다. ‘새로운 봉사자가 오면 이렇게 물어보자’라고 저들끼리 약속이나 해놓은 것처럼. 나는 그때가 돼서야 알 수 있었다. 봉사자가 한 말의 뜻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것까지 말이다.     


 그렇게 한 달이 다 돼가던 무렵이었다. 


 “선생님이 엄마 오신댔어, 선생님이 오실 거라고 했단 말이야!” 


 내가 돌아갔을 땐 이미 모든 일이 벌어진 뒤였다. 한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고 소리를 질러댔다. 놀이방에 있던 벽지가 마구잡이로 뜯겨있는 가운데, 파란색 크레파스로 기이한 형상 하나를 묘사해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아이들이 엉성한 솜씨로 그린 ‘커다란 고래’였다. 나는 알아차리자마자 온 몸에 힘이 풀려서, 하마터면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질 뻔 했다. 


 “그러니까, 정확히 뭐라고 말했다고요?” 원장은 가까스로 화를 가라앉히며 내게 물었다. 


 “저, 그게……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꽤 책임감 있는 성격이라 자부하고 있었다. 실로 오만한 생각이었다. 세상에는 나 따위가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는 걸. 정말이지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저는 그냥……”


 순간적으로 도망치고픈 마음이 일었다. 원장으로부터 되돌아올 말이 너무도 두려웠다. 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한 걸 아이들이 착각한 거라고, 되도 않는 변명이나마 늘어놓고 싶었다. 그럼에도 도저히 빠져나갈 구석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그나마 남은 시간조차 모두 무너질 것 같다는, 가늠조차 되지 않을 만큼의 두려움이 엄습해오고 있었다. 


 “……아이가 엄마가 언제 돌아 오냐고 물어서요”


 “네” 원장이 대답했다. 그 짧은 대답이 내게는 지나치리만치 냉정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올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고래가 다 크면 돌아온다고요……”


 “놀이방 벽지에 있던 고래요?” 원장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물었다. “뜯겨나간 그 부분에 있던 거. 맞나요?”

 “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그랬겠죠” 원장은 말하다말고 안경을 벗어 내렸다. “그 아이, 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교통사고로…… 알고 계셨나요?”


 “네. 나중에 듣고”


 “그래요. 이제 됐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사물함에 넣어놓은 물건 있나요?”


 “없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난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원장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렇게 내 짧은 봉사활동이 끝이 났다. 불과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버려진 이들이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목마른 이가 바닷물로 갈증을 해소하는 일과 무척 닮았다. 왜냐하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미 비극적 죽음을 향해 치닫고 있으며, 몸 안이 소금물로 푹 절여질수록 한층 더 고통스러우리라는 것까지 모두 알고 있다. 그런 이들에겐 훗날 비가 내릴 거라 믿는 일조차 독이 돼버리곤 한다. 


 사람들은 선한 의도를 갖고 한 일들이 으레 선한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믿는다. 자신이 세상에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슬픔을 알고 있다고, 모든 타인을 위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산다. 내가 내미는 온정의 손길이 누구에게나 따뜻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동물은 자신의 체온을 모른다. 다른 누군가와 접촉해보기 전까진 말이다.


 내가 떠난 뒤 그 고아원은 꽤 큰돈을 들여 놀이방 벽지를 바꿨다. 벽지에는 그냥 보기에도 상당히 묘한 기분이 드는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그 형형색색의 패턴이 어린이들의 내재된 공격성을 경감시켜준다는 게 원장의 설명이었다. 나는 버틸 수 없어 울고 말았다.      



<고슴도치>, 2019. 11



<패치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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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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