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스물다섯번째
바람은 하루가 다르게 차가워졌다.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 개울 위로 쏟아져 내렸다. 투명한 표면에 부딪혀 반향 되는 물빛이며 막 정오를 지나 중천에 오른 햇볕이 눈을 찔렀다. 산책로를 걷는 내내 눈이 부셨지만 기분은 좋았다.
작은 개울치곤 제법 수풀이 우거진 곳이었다. 그 풀숲 주변으로 회갈색 무늬의 오리들이 떠다녔다. 강아지풀은 강과 콘크리트가 구분되는 곳에 울타리처럼 솟아 있었는데, 끄트머리가 뭉뚝한데다 강바람에 살랑거리는 것이 날아다니는 송충이 떼 같기도 했다.
그렇게 한 마디 말도 없이 십 분을 내리 걷고 있을 무렵이었다. 네가 개울 깊은 곳에 있는 바위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새가 있어. 엄청 큰데”
“정말이네” 내가 말했다. 딱 곁에 있는 바위만한 크기의 새였다. 새하얀 깃털, 기묘하게 꺾여있는 목과 노란 부리가 인상적인 놈이었다.
“무슨 새일까? 백조나 황새 같이 생겼는데”
“왜가리일걸. 아마” 내가 대답했다.
“왜가리?” 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와. 왜가리 같은 거 처음 봐. 신기하네. 천연기념물 같은 건가”
“아냐. 최근 들어 너무 많아져서 걱정이라던데”
“아, 그래?”
“응. 지방 하천 같은 데 가면 왜가리가 엄청 많대. 우리나라에는 왜가리 천적이라고 할 만한 게 별로 없어서”
“엄청 많을 만도 하네” 너는 대충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런데 천적이 없는데 왜 저렇게 조심스럽게 다니지?”
“그러게. 요 근처에 악어 같은 게 있나?”
“그럴 리가. 물고기도 커봐야 새끼손가락만한 것뿐인데? 먹이 수급도 잘 안 될걸”
“그런데 왜 여기 붙어서 살고 있는 걸까? 딴 데서 온 건가……” 하고 중얼거리면서 왜가리의 행동을 살피기 시작했다. 놈은 S자 모양의 목을 아주 천천히,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기는 속도에 맞춰 구부렸다 폈다. 굳이 사람에 비유하자면 포복자세로 조심조심 앞으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세히 보니까 뭔가를 사냥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오히려 몸을 숨기면서 움직이는 거 같은데”
“천적이 없다면서. 몸을 왜 숨겨?” 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여기서 자기보다 무서운 놈이 어딨다고”
“그거야 나도 모르지”
“뭐야, 희한한 새도 다 있네”
“그러게” 내가 말했다. 왜가리는 그 뒤로도 계속 몸을 수그리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201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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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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