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쉰번째
“사실 너는 별 볼 일 없어. 다른 누구도 아닌 너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지”
“그런 식으로 말 하지 마”
“그런 식이 뭔데? 아, 널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투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그런 말들이 다 진실이라고 생각해?”
“나는 내 나름대로 소중한 사람이고 그건 변치 않는 사실이야”
“마음에도 없는 소릴”
“뭐라고?”
“그 사람들이 널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아? 아니야. 사랑하는 건 네가 꾸며내고 지어낸 거짓말들뿐이지. 화장한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사랑받아봤자 네 본질이 사랑받는 게 아니라는 건 명백해”
“따지고 들면 그렇게 꾸며낸 것도 나야. 내가 사랑받는단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
“평생 가면을 쓰고 살 순 없지. 너도 알잖아”
“평생 쓰고 살진 않을 거야. 다만......”
“네가 지금 하는 얘기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알기나 해? 계속 가면을 쓰고 있으면 네 진짜 얼굴이 가면처럼 변하기라도 할 것 같아? 넌 지금 너무 쉽게 빌려 쓴 걸 네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어. 사실은 전부 빚인데!”
“언젠가는 솔직하게 털어놓을 거야.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보여줄 거라고......”
“언젠가는? 그 언젠가가 언젠데? 오늘? 내일? 일주일 뒤? 일 년 뒤? 아니면 죽기 직전에?”
“그만해”
“당연한 말이지만, 빚에는 시간이 갈수록 이자가 붙어. 나중으로 미루면 미룰수록 갚아야 할 건 더 많아질 뿐이지, 조금도 덜어지는 일은 없다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이자가 원금보다 더 커질 거고, 네가 갚을 수 있는 능력을 한참 지나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될 거야”
“아니야”
“다들 너처럼 빚을 정당화하곤 해. 나중에는 상황이 더 좋아질 거야, 먼 훗날에는 없던 용기가 불쑥 생겨있을 거야, 하고”
“네가 뭐라든간에, 난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 내가 한 말들은 거짓말이 아니야. 왜냐면 전부 사실이 될 테니까”
“도둑질한 물건을 실컷 써놓고, 나중에 제자리에 갖다 놓으면 도둑놈이 아니라는 심보네. 넌 언제까지나 거짓말쟁이일 뿐이야”
“난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야. 아주 조금만......”
“그건 누구나 그렇지. 그렇다고 누구나 거짓말을 하진 않아. 너처럼 약아빠진 인간들이나 그렇게 하지. 나중에 상대방에게 갈 상처는 생각도 안 하고 말이야”
“아니야. 난 상처 줄 마음은 없었어”
“거짓말은 누구에게나 상처야. 그걸 대가로 그 사람에게 뭔갈 받았다면 더더욱 그렇지”
“......대체 나보고 뭘 어쩌란 거야?”
“뭘 어쩌기는. 여기서 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네가 말했다. “지금 당장 깰 수밖에 없지. 꿈이든, 거울이든”내가 말했다.
<모놀로그>, 202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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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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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 2019년에 쓴 약 일흔 편의 작업물 및 미공개본을 묶은 첫 단편소설집, 「시간과 장의사」가 출간되었습니다. 표지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