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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un 15. 2020

습작

백예순네번째





네게 걸어오느라

한참 더러워진 발을

너는 깨끗이 씻어오라고 했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너의 그 더러운 발은 사랑할 수 없어     


나는 발을 씻으려 한참동안

은색 양동이에 너의 눈물을 모았고

네 눈에서 나온 물은 날 괴물로 비췄단다     


화가 나 발을 집어넣으니

당장 모든 걸 엎어버리고

퉁퉁부은 눈으로 내게

멀리 떠나라 말하는 너     


미안해 내가 사랑한 것은

내게 걸어오던 네 모습이었어

너도 너의 씻은 발도

사실은 필요하지 않을지 몰라     


나는 굳은 얼굴로 추하게 엎드린 채 

양동이에 물을 주워 담고 있다

너의 이빨에 처참히 잔해가 된 채

물을 주워 담고 있다

발을 씻으려하고 있다     




<세족식>, 2016. 2




< 멀지 않은 곳에 >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Reinette' 님이 값을 미리 치러 주신 덕분에 이 글과 그림을 작업하고 공개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좋은 그림이 걸린 방에는 방향제가 필요없다고 합니다. 이번 기회에 작업도 후원하고, 당신만의 공간에 멋진 그림도 한 점 걸어두세요.  


아래 링크에서 다음 작업을 미리 후원해주시면, 이 작업을 더 오랫동안 지속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 2018년 ~ 2019년에 쓴 약 일흔 편의 작업물 및 미공개본을 묶은 첫 단편소설집, 「시간과 장의사」가 출간되었습니다. 표지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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