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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Sep 03. 2020

습작

백일흔다섯번째

 요즘 꿨던 꿈에서 나는 몇 번쯤 시간을 넘나들었다.


 꿈은 밤이나 새벽에 찾아오지 않았다. 현실에서든 꿈속에서든 정신을 차릴 무렵에는 늘 대낮이나 이른 오후였다. 창밖의 날씨는 대개 흐린데, 이따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펼쳐지거나 장대 같은 소나기가 내린 적도 있었다.


 나는 거기서 예닐곱 살의 어린아이가 돼있는가 하면, 어떨 때는 거동조차 힘든 백발의 노인이 돼있기도 했다. 이런 꿈들의 내용은 그때그때 다르다. 다만 이러나저러나 혼자 고립돼 죽어가는 마음만은 꼭 닮아 있었다. 또 사랑이라는 단어와는 몇 백만 광년쯤 떨어져서, 평생 동안 그런 마음과는 손잡아본 적도, 마주본 적도 없었던 것만 같았다. 사랑은 그런 어린아이에겐 너무 멀었고, 죽어가는 노인에겐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낡았다. 


 가끔 꿈에서 깨는 행운으로부터 나는 깨닫는다. 우리는 무한한 시간을 달려 서로의 곁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포옹할 때에는, 있는 힘껏 세게 껴안을 수밖에 없다. 그 모든 마음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듯이. 하루하루를 사랑이 없는 세계로부터 도망쳐 왔다는 듯이. 당신이 갑자기 왜 이래, 라고 말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라고 대답한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있는 힘껏 끌어안아야 한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고통이 다름 아닌 후회라는 것을 안다면. 나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다.  


 ―흐르는 강물은 마를 날 없었다. 푸른 들판은 지평선 너머 우주의 먼 바깥까지 펼쳐져있었다.


 나는 또 다시 죽음 같은 악몽으로부터 살아 돌아왔다. 마침 숨을 들이마실 때는 나 아닌 우리가 거기 있다. 분홍색 시간이 연기처럼 흩날린다.      



<심폐소생술>, 2020. 9     





< For What It’s Worth >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익명의 후원자 님이 값을 미리 치러 주신 덕분에 이 글과 그림을 작업하고 공개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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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 2019년에 쓴 약 일흔 편의 작업물 및 미공개본을 묶은 첫 단편소설집, 「시간과 장의사」가 출간되었습니다. 표지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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