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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Sep 08. 2020

습작

백일흔여섯번째

 “그럼 저는 잘린 건가요?”


 “그래” 점장이 대답했다.


 “이건 너무 갑작스러운데요. 갑자기 이렇게 말씀하시면” 나는 온몸으로 당혹스러움을 표현해가며 말했다. “왜냐면 전 다음 달 월세도 내야하고, 관리비랑 전기세도 내야하는데…… 사실 통신비도 지난달부터 밀려있거든요. 친구가 갑자기 차사고가 났다고 그래서 돈을 안 빌려줄 수가 있어야……”


 “그건 딱하긴 한데, 본사 방침이 그래. 이젠 주문이며 계산 같은 걸 다 키오스크로 대체하게 됐잖아. 카운터에 직원이 붙어있어야 할 이유가 없기야 하니까. 내 생각엔 너도 할 일이 너무 없어서 지루했던 것 같은데”


 “아뇨. 전 전혀 그렇지 않은데요. 저도 저 나름의 고통이 있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꼬박꼬박 최저임금을 때려줘야 하는 내 입장도 생각을 해줘야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어. 힘없는 가맹점주한테 무슨 권한이 있겠니?” 점장이 애써 마음 아픈 얼굴로 이야기했다. 


 ‘으, 비겁한 놈……’ 난 차라리 “넌 이제 필요 없으니 꺼져”라고 말해줬다면 마음이 한결 편안했을 것이다. 이거야 사람 해고하는데 미움도 받고 싶지 않다는 말 아닌가?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사람 밥벌이를 조져놓고서. 세상 약자인 척이나 하다니.


 “그래도, 이번 달 절반 일한 건 오늘 저녁에 바로 넣어줄게”


 ‘그거야 당연히 줘야하는 거고’ 라는 생각이 목젖까지 차고 올라왔다. 그럼에도 나는 “네, 감사합니다……”하고 가벼운 목례를 하고 돌아 나왔다.


 유니폼에 달아뒀던 플라스틱 명찰은 가지고 가도 좋다고 했다. 나는 순간 감상에 차올라 넙죽 받아 챙겼다가, 돌아가는 길에 불쑥 울화가 치민 나머지 공중에 냅다 던져버렸다.      


-     


 “그래서 새 알바는 구했어?” 친구는 입에 꼬나문 담배에 불을 붙여주며 물었다.


 “너도 인간이면, 야. 생각을 해봐라” 나는 입술을 뻐끔뻐끔하며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구했으면 지금 여기 있겠냐고. 양심적으로”


 “그건 그렇지” 


 “진짜, 내가 노력을 안 한 게 아니고…… 요즘은 정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이래서 ‘자격증이라도 하나 따놓을 걸’ 하는 소리가 나왔구나 싶다니까”


 “솔직히 자격증 있어도 별 수 없지 않아?” 친구는 교묘하게 어르고 달래는 뉘앙스였다. 나는 그런 친구의 태도에 신경질이 날 뻔도 했다.


 “……있으면 지금보다는 나았겠지”


 “그래?”


 “이제 가진 건 정말 불알 두 쪽 밖에 없다고. 근데 내 불알 같은 건 아무도 필요로 안 해. 아무래도 이력서에 「싱싱한 불알 두 쪽 보유 중」이라고 써낼 수는 없는 거잖아. 양심적으로…… 그딴 걸 누가 뽑아 주겠냐?”


 “하긴, 장기밀매업자들도 불알은 취급 안 하겠지……”


 “더럽기도 하고. 줘도 안 가질 걸”


 “맞는 말이야” 친구가 말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당장이라도 폐암에 걸려 죽을 것처럼, 니코틴을 온 몸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빨아 삼킨 다음 말을 이었다.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인간인가 싶어. 말했다시피 불알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나이 서른 가까이 먹고 할 수 있는 건 몸 쓰는 것 밖에 없잖아. 그마저도 다친 허리가 예전 같진 않으니까 막 쓸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지?” 곁에 서있던 친구는 연기를 푹 내쉬었다. 회색 아지랑이가 가파른 하늘로 피어오르더니 곧 희미해졌다. 


 “그래서 기껏해야 찾아보는 게 편의점 알바나, 홀서빙 같은 잡일이야. 그런데 그마저도 지랄할 기계들이 다 차지해버리고 있다고. 이게 말이 되냐? 저 길 건너편 고기집에서 알바 구한다 그래서 갔는데, 주방에서 뭔 월E같은 새끼가 돼지갈비를 등쳐업고 쫄래쫄래 나오더라니까…… 주인장이 하는 말이 걔 한 달 대여비가 알바 구하는 비용의 절반밖에 안되는데, 주문은 두 배로 소화하니까 거의 네 배의 효율이 난다는 거야. 그래서 홀서빙 알바는 필요 없다고, 주방 보조가 필요하긴 한데 그것도 주말에 재료손질 할 때나 잠깐 필요한 거라 풀타임은 어려울 것 같다고…… 이런 씨발, 염병할 기계새끼 때문에 제대로 된 알바 자리도 하나 구하기 어렵게 됐어. 오함마로 갈겨버리면 꼼짝도 못하고 작살날 것들이”


 “아니,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난 피할 수 있어. 달려오는 차도 쉭쉭 피하는데. 오함마처럼 느린 무기는 자다가도 피할 수 있지……”


 “한다던 공무원 준비는? 이젠 아예 접었고?” 친구는 눈에 띄게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어. 지금은 학원비도 못 내고, 이런 마당이 되니까 생각도 안 들어…… 아니, 공무원이라고 기계가 대체 못하라는 법 있냐고. 그것도 미래랄 게 없어. 당장 동사무소 입구만 가 봐도……”


 “아, 요즘은 전자민원인가, 자판기 비슷한 게 있지”


 “확실히 그게 편해. 등본 같은 거 뽑을 때도 금방 나오고. 한부모가족이나 수급자증명서 뽑을 때도 좋아. 동사무소 직원은 괜히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볼 때가 있어서. 기계는 그냥 종이만 뽑아주니까”


 “그렇게 기계한테 서류 뽑아서 가면”


 “그래, 기계 때문에 취직을 못하지”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대답했다. “말하고 보니까 참 거지같은 세상이구만. 사람 편하라고 만든 게 기계인데. 이젠 기계가 너무 편해서 사람이 좆되고 있잖아”


 “좆같은 세상”


 “……그래. 이제 내 얘긴 됐고, 너는 요즘 어때. 차사고는 잘 해결됐다 그랬던 거 같고. 학원 알바는 계속 하고 있냐? 거기도 뭔 채점 기계 들였다면서”


 “아, 그랬었지. 그래서 하마터면 잘릴 뻔 했는데”


 “했는데?”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아무렴 논술은 기계가 채점하는 게 영 정확하지가 않다더라고. 그 기계가 키워드랑 서술어 중심으로 매기거든. 근데 문제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이랬다저랬다 한 놈은 정답 취급하고, 다 맞게 썼는데 정확한 키워드가 하나 없어서 오답 처리되고 그랬거든. 모의고사 결과보고 학부모들이 전화를 얼마나 해왔는지…… 장난 아니었어. 그대로 기계 계속 썼으면, 일주일 뒤에는 학원에 불까지 질렀을 걸”


 “하하! 멍청한 기계 새끼들. 이래서 기계 놈들은 안 된다니까. 어디 피조물 주제에 인간을 제쳐보려고……”


 “사람 1승 추가네”


 “그럼, 물론이지” 나는 아스팔트 바닥에 담배를 비벼 껐다. 편의점 차양으로 불투명한 햇살이 퍼져 내려왔다. “또 다시 인간의 승리야……”          



<편의점>, 2020. 9     




< 신기루 >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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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 2019년에 쓴 약 일흔 편의 작업물 및 미공개본을 묶은 첫 단편소설집, 「시간과 장의사」가 출간되었습니다. 표지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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