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흔아홉번째
“저기요, 이게 대체 뭔가요?” 남자는 지나가던 종업원을 붙잡고 물었다. 표정을 보니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는 식이었다. 다만 그 참을 수 없었던 것이 마주앉은 여자와의 어색함인지, 그 물컹물컹한 안주의 정체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우럭이랑 같이 나와서 먹고 있기는 한데요. 뭔가 묵 같기도 하고 곤약 같기도 한데…….”
“아, 글쎄요. 곤약이 맞을 걸요? 아마도” 종업원은 다소 귀찮다는 듯이 반응해왔다.
“아마도? 저, 여기 직원 분 아니세요?”
“제가 여기서 일한 지 얼마 안 돼서요. 원래 바닷가 사람도 아니어서. 전 그냥 서빙만 해서 잘 몰라요.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거 까지는 없고”
“정 궁금하시면 주방에 가서 이모한테 한 번 물어보고 올까요? 그 분은 확실히 아시긴 할 걸요.”
“아뇨. 됐어요” 듣다 못한 여자가 마침내 입을 뗐다. “물어볼 필요 없어요. 해파리에요, 그거”
“아” 남자는 어안이 벙벙한 듯 빤히 여자를 쳐다봤다. 그러자 여자는 괜히 말을 꺼냈다는 것처럼, 또는 그런 시선이 무척이나 짜증스럽다는 것처럼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었다.
“이야,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바닷가에 자주 놀러 오시나 봐요?”
“아뇨. 자주 오지는 않고”
“그럼 해파리인 건 어떻게 아신 거에요? 혹시 좋아하는 안주에요?”
“아, 그런 건 아니고요…….” 여자는 순간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잠깐 화장실에 간다던 언니는 십 분 넘게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대판 싸우고 나왔다는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여자는 언니 없이 혼자 파라솔 테이블에 남겨졌다.
한편 횟집이며 포차가 즐비해있는 해변 상가에는 늘 그렇듯 ‘낯선 여자와 말 한 마디 섞어보려는 남자들’이 어슬렁거렸다. 여자가 생각하기에 그런 남자들은 대략 두 부류로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 한두 번 장난치듯 휘젓고 떠나는 경우가 첫 번째, 누가 됐든 술을 진탕 먹여서 어떻게든 자빠트려보겠다며 달려드는 양아치들이 두 번째였다. 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 여자의 맞은 편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그 남자가 두 번째 부류의 동물이라는 건 굳이 계산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평소에 말이 별로 없으신가 봐요? 아니면 그냥 술을 덜 드셔서 그런가?” 남자는 눈치도 없이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하기야 그맘때의 남자들, 그러니까, 주말이나 연휴에 애인도 없이 바닷가에 놀러온 남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여자들이 나와 대화하는 걸 싫어할 수도 있어’ 같은 생각은 하지 못한다. 마주 앉은 여자가 대놓고 싫은 티를 내올 때조차 그저 ‘한 번쯤 튕기고 싶어서’ 혹은 ‘처음이라 부끄러워서’ 하는 행동쯤으로 이해해버리는 것이다. “어때요. 해파리 좋아하시면 이거 안주로 해서 소주 한 잔 더 하실래요? 여기는 좀 시끄러우니까, 다른 데로 좀 옮겨서요. 거기서는 제가 살 테니까…….”
“아뇨, 그건 좀…… 같이 온 언니가 있어서요.”
“아?” 남자는 애써 당황한 티를 숨기며 말했다. “그럼 더 좋네요. 언니도 가면 되죠. 저도 친구랑 같이 놀러왔거든요. 이대 이로 같이 놀면 되겠는데요?”
“오…….” 여자는 정말 탄복할 지경이었다. 어떻게 자기가 한 말을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지? 놀라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이제는 정말 그 귀찮은 대화를 마무리할 때가 온 것 같았다. “그, 있죠. 아까 해파리인 줄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셨죠?”
“아? 네. 그랬죠. 생각해보니까 저도 몇 번 먹어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저는 오늘 처음 먹어보는 건데요. 그래도 알아요.”
“어떻게요?”
“제가 그런 일을 하거든요. 요 근처 해양생물을 연구하는…….”
“우와!” 남자는 볼썽사납게 눈을 크게 뜨며 호들갑을 떨었다. “우와…… 저 그런 일 하는 사람 처음 봐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 하셨나 보네요?”
“그건 딱히 중요한 건 아니고요” 여자는 최대한 무미건조한 투로 대꾸했다. 만약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이 남자에 대한 관심표명인 양 받아들여지면 곤란하니까. “해파리는 가장 단순한 구조로 이뤄진 생물 중 하나에요. 사실 그런 건 수조에 있는 해파리를 보면 대번에 눈치 챌 수 있는 거죠. 왜냐면 속이 다 비쳐 보이거든요. 그래서 누구나 알 수 있어요. 해파리가 얼마나 단순한 동물인지요. 정작 해파리 자신은 자기 속이 훤히 보이는 걸 모르고 있겠지만요.”
“아…… 네, 그렇군요. 그런 건 몰랐네요. 근데 여기가 좀 시끄러워서 그런데, 자리를 다른 데로 옮…….”
“왜냐면 뇌가 없거든요. 해파리한테는요. 그러니까, 해파리처럼 단순한 동물은 생각할 줄을 몰라요. 단순히 생존에 대한 본능이 있을 뿐이죠. 우리같은 고등생물한테는 좀 어려운 얘기인데…… 그럼 해파리는 왜 사는 걸까요? 왜 사는지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 저…… 제가 공부는 잘 못해서요. 머리가 좀 나빠가지고, 어려운 얘기는 잘 못들어요”
“번식이에요, 그냥. 뭣보다 이런 해변가에 해파리가 나타나면 정말 재앙이나 다름없어요. 왜냐면 해파리한테는 대체로 독이 있거든요. 그걸로 상대방을 마취시킨 다음에 잡아먹는 거죠. 제 딴에는 아주 대단한 수법이나 되는 줄 아는가본데…… 뭐, 그래봤자 해파리니까요. 문제가 있다면 재생력이 너무 뛰어나서, 상처를 입어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되돌아오는 거라고 할까요. 어때요? 해파리 얘기 재미있나요?”
“……아, 죄송해요” 남자는 여자의 마지막 말에 화들짝 놀랐다. 좀 전의 대화에 거의 집중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 확실해보였다. 몇 초가량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다가, 멋쩍게 휴대폰을 꺼내 흔들면서 “그, 방금 제가 친구한테 전화가 와서요.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요.”하고 도망치듯 테이블에서 멀어져갔다.
‘정말 미친 여자였어. 하마터면 잘못 걸릴 뻔했네.’ 남자는 잠잠한 휴대폰을 공연히 얼굴에 가져다대며 생각했다. ‘다음번에는 좀 가려서 말을 걸어야겠다. 역시 너무 말짱한 여자는 상대하기 어렵다니까…….’
<해파리>, 2020. 10
-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아래 링크에서 이 글과 그림을 구매하거나, 혹은 다음의 작업물을 미리 예약함으로써 이 활동을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더 오랫동안 쓰고 그릴 수 있게끔 작업을 후원해주세요. 후원자 분께는 오직 하나 뿐인 글과 그림을 보내 드립니다.
+ 2018년 ~ 2019년에 쓴 약 일흔 편의 작업물 및 미공개본을 묶은 첫 단편소설집, 「시간과 장의사」가 출간되었습니다. 표지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