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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Nov 12. 2020

습작

백여든두번째

 “하여튼 정리하자면 이런 거야. 계층 사다리는 무너졌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성공한다는 건 산업화 세대가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거지…… 너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 않아?”


 “어렴풋이…… 뭘 느낀다는 건데?” 나는 영 내키지 않는 질문을 했다. 실은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았는데. 단지 그 술자리를 망쳐선 안 된다는, 어떤 의무감 때문에 대꾸했다. 


 “오, 그러니까, 내 말은, 잠깐 한 번 계산을 해보자고. 우리가……” 그러나 그 공연한 되물음 때문에, 무려 삼십 분 동안이나 자기만의 논리―라고 해야 할 지 신앙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를 이어나가고 있던 놈의 흐름에 탄력이 붙어버렸다.


 함께 시달리고 있던 동료 여직원은 내가 원망스럽다는 듯 짧은 눈총을 보내왔다. 나는 조금 멋쩍어져서, 마주 앉아있던 입사동기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말귀가 다시 열린 건 오 분은 넘게 지난 뒤였다. “……그렇게 알뜰살뜰 아끼고 모아봤자 일 년에 천만 원 모으면 잘 모은 거지……. 야! 이게 말이 되는 세상이냐? 저어기 지방 내려가서 전셋집 하나 얻는 데도 일이 억은 들어. 하다못해 서울은? 우리 같은…… 아니, 미안하다, ‘나 같은’ 흙수저들은 월세 아님 서울에서 눈도 못 붙여. 아파트 한 채에 십 억이 말이 되는 소리냐 그게? 심지어 거기서 계속 올라. 또 올라. 내가 십 년 동안, 일 년에 천만 원씩 죽어라 모아봤자 이자 합쳐서 일 억이 조금 넘을 텐데. 그동안 서울에 아파트 가지고 있는 인간들은 숨만 쉬어도 나보다 많이 벌어. 왜? 십 년 전에는 그 십 억짜리 아파트가 이삼 억 밖에 안됐거든! 십 년 동안 대충 칠 억 정도 시세 차익이 발생했다고 치면, 세금 떼고 뭐 떼고 해도 일 년에 연봉 오천 은 그냥 넘는 거야.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일도 출근도 안 했는데. 그냥 연봉이 오천이라고! 정말 욕 나오지 않냐? 걔네는 관리비 말곤 월세도 안 내는데!”


 “하긴, 그렇긴 하지. 요즘 세상이 빈익빈부익부인거 누가 모르겠어?” 동료 여직원이 다소 동요된 투로 말했다. 


 “아아니! 빈익빈부익부 수준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동기 녀석이 다시 열변을 장전했다. 놈의 얼굴은 몇 분 전부터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몇 잔 마시지도 않은 술 때문일 리는 없었고, 그냥 정말 그렇게 상기될 만큼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그건 당연한 거, 정말 당연한 거고. 이젠 방법이 없다니까요. 뭐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열심히 살기만 해서는, 확률이 제로나 마찬가지야. 백전백패, 열 번 싸우면 열 번 다 지는 싸움이지. 그건 하는 놈이 바보인거야.”


 “아니, 그래도…… 아주 제로라곤 할 수 없지. 로또라는 것도 있고……” 나는 볼멘소리로 답했다. 조금쯤 반항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오히려 그런 대응은 역효과만 불러오는데도. 알지만 그런 걸 참을 수 없는 시점이 몇 군데 있다.


 “로또, 그래. 로또…… 지난 주 로또 일 등 당첨금이 얼만지 아냐?” 놈은 자기가 아주 사이비 교주쯤이나 되는 사람처럼, 무척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만데?”


 “십칠 억이야, 십칠 억. 언뜻 보면 많아 보이지? 근데 딱히 그렇지도 않아. 평균수명 백 살 시대에 넉넉하게 살만한 돈은 절대 아니지. 그렇게 생긴 돈을 잘 굴린다면 모르겠는데, 보통은 그럴만한 역량이랄게 없어. 애초에 로또 일 등에 당첨될 확률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겠고……”


 “아주 확률이 제로는 아니라는 거지, 내 말은”


 “하지만 그건 제로나 다름없다는 거야, 내 말은…… 우연히 많은 돈이 생겨봤자야. 그걸 잘 불리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지. 그냥 시간문제일 뿐이야.”


 “아, 그래서 결론이 뭔데. 우리한테는 꿈도 희망도 없다고? 오늘 여기 술안주가 그거야?” 동료 여직원이 역정을 냈다.


 “아니…… 꿈도 희망도 아예 없지는 않지. 문제는 그게 아주 어렵고 복잡한 원리를 깨우쳐야 겨우 가능하다는 거지만.” 놈이 자못 점잔을 빼며 대답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물었다. 별 호기심 없이 계속 묻는 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내가 요즘 회사에서 휴대폰 자주 보고 있잖아. 그 정도는 눈치 챘지?”


 “그건 뭐, 평소에도 다를 건 없어서…….”


 “아, 최근에 뭔 그래프 같은 거 보고 있던 거 얘기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까 그러네. 그 전에는 폰을 가로로 잡고 있었는데 요즘은 세로로만 계속 보더라고”


 “모바일 게임은 접기로 했어. 재미도 없고, 인생에 별로 도움도 안 되고.”


 “좋아, 자아 높은 강도비판.” 내가 덧붙였다.


 “솔직히 말하면 주식 차트 공부를 계속 하고 있어. 최근 들어서 투자에 관심이 생겨서…… 아니, 정확히 말하면 투자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거지. 좀 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개처럼 일 해봐야 그냥 평생 노예로 살다 뒈질 뿐이니까. 정승처럼 쓰기는커녕 더더욱 묶인 존재가 되는 거라고. 이제 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야. 살아남으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미리 알고, 그렇게 확보한 인사이트를 자본으로 치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거지. 단순노동으로 재화나 서비스를 만들어서 돈을 번다? 사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어림도 없지. 암, 어림도 없고말고.”


 “그래서 투자는 잘 돼가?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그래 보이는데.”


 “뭐, 나쁘진 않은데 그렇다고 아주 드라마틱한 정도도 아냐. 단타로 자본금을 두 배로 뻥튀기 하는 것 까지는 괜찮았는데.” 놈이 이 부분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그러면서도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이야기하는 게 느껴졌는지 돌연 속이 역해질 지경이었다. “그 뒤로는 조금 교착상태야. 업 앤 다운이 계속 되고 있지.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어느 지점까지는 순간의 감각과 직관으로 커버가 되는데, 그 너머에서는 정말 프로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


 “이젠 뭐, 학원이라도 다니냐?”


 “학원은 아니고, 온라인으로 1:1 코칭을 받고 있지. 코칭해주시는 분이 정말 프로거든. 운용자산만 쳐도 수십억은 되는 분인데 진짜 겨우 만났다니까. 원래 돈 줘도 그런 거 잘 안 해주는 사람인데, 아는 형님 통해서 어떻게 어떻게 연결이 된 거지. 확실히 그런 사람은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 진짜로. 일반인들이랑은 사회를 보는 안목자체가 궤를 달리해. 한 수 앞을 내다보는 수준이 아니라 세 수 네 수 앞까지 보고 있는 느낌? 사회나 시사 문제에 대해서도 정통하시고. 진짜 많이 배우고 있어. 그 분한테 거의 모든 걸 전수받는다? 그럼 회사에 다닐 필요도 없을 것 같애. 내 생각에는. 그냥 재택근무하면서 이런저런 정보 확보하고, 그러다보면 적어도 지금 받는 연봉의 두 배는 거뜬히 벌 것 같거든.”


 “아, 그래?” 나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게 놈의 뭘 자극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확실한 건 놈이 다음과 같은 말로 나를 도발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너도 일만 열심히 하지 말고, 짬짬이 시간 내서 배워봐. 원래 제일 늦었을 때가 제일 빠를 때라고, 그런 말도 있고.”


 “내가? 왜?” 검지로 나 자신을 가리키면서 받아쳤다. “나는 지금 삶에 웬만큼 만족해. 하는 일도 나쁘지 않고. 물론 출퇴근 버스가 빡치긴 하지만…….”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까. 지금까지 뭐 들었냐?”


 “아이, 왜 그래? 본인이 안 하겠다는 데. 내버려둬, 그냥.” 동료 여직원이 조심스럽게 제지하려 들었다.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막말로 여자는 안 배워도 돼.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만 잘 해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으니까.”


 “이야, 그건 진짜 막말인데?” 나는 노골적으로 비아냥댔다.


 “그런데 남자는 달라. 남자새끼로 태어났으면, 어른들 말마따나 지 앞가림은 할 수 있어야지. 돈 벌 능력 없는 남자를 누가 거들떠보기나 하냐?” 놈은 한층 더 격앙된 투로 이야기해왔다. “진짜로. 요즘 세상에 돈 굴릴 줄 모르면 나날이 일해도 잃으면서 사는 거나 다름없어.”


 “흠…….” 나는 손가락 마디로 턱밑을 쓸어 만졌다. 이유는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고민하는 시늉은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알고 보면 내 인생에,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그렇게 지어내고 흉내 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조차 안 됐다. “야야, 맞다……. 내가 대학에서 경영학과 졸업한 건 알지?”


 “아, 그랬었어?!” 동료 여직원은 실제로 놀란 눈치였다.


 “응. 그랬어.” 내가 말했다.


 “그래서, 그게 뭐?” 놈은 팔짱을 끼고 되받아쳤다. 언뜻 보기엔 ‘어디 한 번 해보시지’하는 제스쳐였다. 


 “학교 다닐 땐 나도 주식투자 같은데 관심이 꽤 있어서, 비슷한 동아리에서 잠깐 활동도 해보고 관련 강의도 몇 개 듣고 그랬거든.” 나는 가능한 눈을 크게 떠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근데 하면 할수록 나는 못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왜냐, 주식 투자는 다른 것과 달리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없어. 실제로 주식시장을 통제하는 건 외부적인 변수일 뿐이고, 개인 투자자로서는 그런 것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결론을 낼지 눈치 보는 것밖에는 할 수 없더라고.”


 “그래서 정보가 중요한 거야. 주식시장은 기본적으로 정보의 비대칭성을 바탕으로 이익과 손해를 보는 곳이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지.” 나는 진심으로 수긍하며 말했다. 적어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그랬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정보’라는 게 과연 사실일지를 어떻게 분간할 수 있냐는 거지. 엄밀히 말하면, 저 맨 위에 있는 작전세력이 아니고서야 시장의 미래를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정보는 만들 수도 알 수도 없어.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들은 본인의 자유의지로, 독자적인 판단으로,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선택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지. 실제로 대다수의 일개미들은 스스로 판단해서 기어가는 게 아냐. 앞에서 뿌려놓은 페로몬을 따라서, 본능적으로 줄지어 따라갈 뿐이지. 그래서 난 생각한 거야. 그럼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하고. 차이가 있다면, 개미랑 다르게 사람은 정말 자기가 그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오해하는 것 정도에 있는 것 아니겠냐고……. 그래서 얼마 되지도 않는 자본으로 주식투자에 뛰어드는 건, 사실상 확률 낮은 도박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판단한 거야. 그래서 난 투자 같은 거에는 관심을 접었어.”


 “딱 들었을 땐 그럴 듯한데.” 놈이 다시 한 번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별달리 긴장은 하지 않았지만, 단지 그게 얼마나 길어질 지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벌써 자정이 가까워왔다. 막차 시간도 아슬아슬했다. “파고들면 정말 허점이 많은 주장이네. 그건 너도 알지?”


 “뭐, 대충 알지.”


 “그래, 그게 문제야. ‘대충 안다’는 거. 뭐, 나도 이 분야의 마스터는 아니라서 길게는 얘기 안 하겠지만…… 정리하자면 그런 거지. 네 말처럼 주식투자에는 확실히 도박 같은 면이 있어.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그런데 포커는 어떠냔 거야. 포커는 아마추어들한테나 도박이지, 프로 도박사들한테는 하나의 스포츠로 자리 잡았어. 정말 깊게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고, 자신만의 전략을 수립하고, 그렇게 프로가 되고 나면 도박일지언정 이길 확률을 아주 크게 높일 수 있지. 물론 거기에서의 핵심은 정보를 확실하게 안다는 거고. ‘대충’이 아니라.”


 “오, 그것도 그럴듯하네.” 


 “너도 여기에 대해선 딱히 반박 못하겠지?” 놈이 넌지시 승리를 예감한 표정으로 되물어왔다. 


 “어, 반박은 딱히 하고 싶지 않고” 말하면서 자세를 조금 고쳐 앉았다.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있다 보니 온 몸이 뻑적지근했다. 그러고 나니 그전까지 살짝 먹먹했던 목소리가 원래대로 되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자신감에 차서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정보를 하나 줄 순 있을 거 같아서. 이건 미국의 존스홉킨스 대학 연구진이 발표한 내용인데…… 맨 처음엔 실제로 세 명의 투자자를 상정해 놓는 거야. 월스트리트에서도 꽤 이름이 있는 전문 투자자 한 명이랑, 어렸을 때부터 취미로 주식을 사고 팔아온 학부생 한 명, 그리고 원숭이 한 마리.”


 “오, 이거 재밌겠다.” 잠자코 있던 동료 여직원이 대화에 조미료를 뿌렸다.


 “계속 해봐.”


 “연구팀에서 한 일은 간단해. 이 세 투자주체를 제한된 공간에, ‘거의 모든 정보’들을 비슷하게 알아볼 수 있는 환경을 갖춰놓고, 정해진 기간 동안 주어진 천 달러를 얼마나 불려놓느냐를 본 거야. 다만 원숭이는 컴퓨터를 만질 줄도 모르고, 정보를 파악할 줄도 모르고, 주식을 사고 팔 수도 없지. 그래서 다트 던지는 훈련을 따로 시켰다는 거야. 그 다음엔 주식을 사고 팔 수 있는 회사 목록을 칸칸이 늘어놓은 거고. 여기서부턴 상상이 되지? 그날그날 원숭이가 던지는 대로 투자할 회사를 정하고, 매수와 매매 타이밍도 똑같이 했지. 그렇게 했더니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뻔하지. 의외로 별 차이가 없었다거나, 원숭이의 수익률이 제일 높았다거나.” 놈은 이제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니? 그럴 리가.” 나는 아랑곳 않고 말했다. “당연히 전문 투자자의 수익률이 제일 높았어. 학부생은 그 다음이었고, 원숭이는 크게 손해를 봐서 오백 달러밖에 안 남았지.”


 “아하!” 동기 녀석이 돌연 손뼉을 치며 화색을 띠었다. “그건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보 같은데?”


 “처음엔 그랬지.”


 “처음엔?”


 “그 똑같은 실험을 계속 반복했어. 거의 십 년 동안. 중간에 사람이나 원숭이 개체가 바뀌긴 했지만, 통제된 환경과 조건은 완벽하게 동일했어…… 그러니까, 그게 처음 일 년 동안은 꽤 차이가 명백했다나봐. 원숭이는 이득을 보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학부생은 그냥저냥 원금만 유지하는 수준이고, 전문투자자는 전문가답게 크든 작든 꾸준히 수익을 냈지. 근데 이게 삼 년이 지나고, 오 년이 지나고 하다보니까, 이 세 주체의 평균적인 결과 값이 거의 비슷해진 거야. 단기적으로는 차이가 가시적인데, 장기적으로 봤을 땐 전문 투자자나 대학생이나 원숭이나 별 차이가 없었어. 기껏해야 일이 퍼센트의 차이였는데 그마저도 원숭이가 앞설 때가 많았지. 심지어 원숭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그 포트폴리오를 투자자문회사에 평가해달라고 했더니, ‘시장에 휩쓸리지 않는 독립성과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있다. 노련한 투자자임에 틀림없다’고 말해왔다고.”


 “으으음…….” 이번엔 놈이 턱밑을 쓸어 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론이라고 하면?”


 “결론은, 말하자면 이런 거지. 세상에는 그저 열심히 하는 것과 관계없이 나타나는 결과들이 있고, 당장에 큰 차이처럼 보이는 것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보면 별 다를 바 없다는 거. 그런 면에선 일이나 투자나 나는 비슷하다고 봐. 오히려 몸은 힘들겠지만 정신적인 면에선 일이 더 편하지 않나 싶고. 적어도 내가 자는 사이 놓치는 정보가 있을까봐 노심초사하진 않을 거 아냐.”


 “방금 그건, 확실히 그럴듯해. 진심이야. 조금 설득됐어.” 동기 녀석이 새삼 진지한 얼굴로 말해왔다. 


 “아니, 뭐. 내가 널 설득하려고 한 건 아니고. 그냥 내가 알고 생각하는 바는 이렇다, 그 정도지……. 그런데 나는 이제 그만 가봐야 돼. 내가 술 마시는 날에는 항상 막차가 빨리 가더라고.”


 “오, 그래…… 아무튼 얘기 고마워. 흥미롭고 재밌는 얘기였어. 나도 투자라는 것에 대해서 좀 더 진중하게 고민해볼 기회가 생긴 것 같고.”


 “아, 그건 정말 진중하게 고민해보면 좋겠어.”


 “음? 왜?”


 “왜긴 왜야.” 나는 외투와 노트북 가방을 집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방금 게 다 지어낸 이야기라서지…… 하여간 힘내고. 잘 쉬고 다음 주에 보자.”


 말을 끝맺자마자 돌아 나오는 길이었다. 무어라 신경질적인 소리가 뒤따라왔지만 아무 상관없었다. 아, 그러고 보면 세상은 얼마나 넓디넓은가. 이 넓은 지구엔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참으로 많았다.


 문득 휴대폰을 꺼내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은 이제 막 자정을 지났다. 경기도로 향하는 광역버스 정류장 앞에는 여느 때처럼 줄이 길게 늘어섰다. 나는 그 줄 맨 끝에 본능처럼 뒤따라 섰다. 아직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개미들의 합창」

2020. 11   



< 초개체 생태학 >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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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 2019년에 쓴 약 일흔 편의 작업물 및 미공개본을 묶은 첫 단편소설집, 「시간과 장의사」가 출간되었습니다. 표지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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