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묵돌 Jan 08. 2019

습작

다섯 번째

“결국은 노력을 안 한 것 아냐? 사지도 멀쩡하고, 적어도 끼니 걱정도 않고, 교육 기회도 분명하게 있었지. 고액과외가 없었기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했다는 얘길 하려는 것은 아니지? 단순히 가난하다고 해서 말야”


마주 앉은 남자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포마드로 가지런히 올린 머리가 술집의 흰색 조명을 미세하게 반사시키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소주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소주는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 쓴 맛이었다.


“뭐야? 수긍 못하겠다는 표정인데?”


“네, 솔직히 말하면 그렇죠” 내가 말했다.


“아하, 네가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것은 인정해. 그걸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야. 그런데”


남자가 짐짓 무안한 척을 하더니 말을 잠시 끊었다. 나는 곧 불쾌한 말이 다가올 것을 알았다. 다만 마땅히 벗어날 도리도 없었기 때문에, 잠자코 잔을 채우고 있었다.


“내가 옵션이 더 많았다는 것은 인정해. 뭐, 학원도 다녔고, 꽤 비싼 과외도 받을 수 있었고, 어머니 권유로 입시 컨설팅 같은 걸 받기도 했어. 그러나 그뿐이야. 이런 것들은 몇 가지 옵션이 추가된 것뿐이고, 실질적인 노력 없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들이지. 내가 노력을 하지 않았으면 과연 서울대에 갈 수 있었을까? 내 아이큐는 기껏해야 백십 정도야. 평균보다 좋기는 하지만 타고난 천재는 아니라고. 그런데, 네가 말하는 흙수저 들도 노력 자체는 할 수 있었다는 걸 얘기하는 거야. 단순한 거지. 적어도 필요조건은 갖추고 있었던 거야…… 흙수저가 흙수저인 이유는, 네가 말한 것처럼 부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도 있어. 그건 사실이지. 그렇지만 흙수저 녀석들이 피씨방과 당구장에 갈 때 내가 학원에서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야. 그런 놈들이 성인이 돼서는, 정당히 노력해서 명문대에 진학한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징징대는 것도 사실이라고. 단순한 얘기란 말야”


“당연히 인정하죠, 그런 건. 어찌됐 건 사실이니까요. 제가 봐왔던 녀석들도 그랬으니까”


나는 말을 끝마치자마자 잔을 한 번 더 들어마셨다. 남자는 양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점잖은 자세를 하더니, 입꼬리를 올려 능숙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그래, 내가 널 인정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부분인 거야. 넌 인정할 줄 안 단 말이야. 흙수저라고 해서 다 똑같은 놈들만 있는 건 아니거든. 너처럼 그런, 진흙 속의 진주라는 게 있는 거지. 진주는 제 아무리 흙 속에 있어도 진주인 거야. 그래, 내 인정하지. 만약에 네가 나 같은 상황이었다면 너도 서울대를 갈 수 있었을 거야. 그게 너로서는 아쉬움이 있을 수도 있을 거야. 아무렴, 네가 다니는 학교도 물론 좋은 학교지만 말이야, 우리 사회가 서울대라는 타이틀에 주는 의미가 좀 크냔 말이야. 놓치기 아쉬운 것이면서도…… 일종의 책임감이랄까, 그런 걸 느껴. 특권이라는 게 없다고 하면 순 거짓말이지. 단지 서울대 출신이라고 해서 이토록 많은 특권을 누리는 건 나도 잘못됐다고 생각해.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이겠지. 차츰 특권을 내려놓으면서,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 말이야……”


남자의 장광설은 좀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들으면서, 때로는 귀로 흘려버리면서, 또 때로는 속으로 울고 웃기도 하면서 몇 잔의 소주를 더 마셨다. 남자는 그럴수록 신이 나서, 더 크고 즐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참, 완전히 평등한 사회라는 게 있을 수 있느냐, 그런 건 솔직히 의문이 들어. 메가스터디 회장이 그랬거든, 공부는 유전자라고. 나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생각해. 노력하는 유전자, 수학 문제를 잘 푸는 유전자, 다 따로 있는 거지. 만약에 모든 사람이 동일한 환경에, 완전히 동일한 교육을 받게 되더라도 명문대에 가는 사람과 지방대에 가는 사람은 그대로 나뉠 거야. 어느 정도는 결정이 돼 있거든. 당장 나만해도 양쪽 부모님이 서울대고, 내 누이동생도 이번에 일팔 학번으로 우리 학교에 입학했지. 한편 지방대 출신에, 심지어는 고졸인 부모 사이에서 자란 사람은, 너처럼 돌연변이가 아닌 이상 지방대에 가거든. 이건 절대 우연이라고 할 수 없어. 슬픈 얘기지만, 그냥 정해져 있는 거야. 문제가 있다면 공부 따위에 너무 많은 가치와 특권을 부여한 우리 사회 쪽에 있는 거겠지. 그저 운 좋게 유리한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을 욕해선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해. 내가 노력해 얻은 것들을 모두 상속된 재산인양 이야기하면서…… 안 그래? 그럼 나도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잖아?”


“그래서 결론이라고 하면”


“아, 그래, 내가 말이 길었네, 넌 너무 길게 얘기하는 걸 안 좋아했었지? 결론이라고 하면, 그렇지, 흙수저를 흙수저로 만드는 건 실상 유전자라는 거야. 적어도 공부가 중요한 지금 사회에서는…… 어때?”


“아뇨”


“뭐?”


“아니에요”


나는 가능한 단호하게 대꾸했다. 남자는 잠시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나 역시 분위기를 깼다는 느낌에 술기운으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니…… 뭐가 아니라는 거야? 다른 생각이 있으면 얘길 해봐도 좋아”


남자는 손짓으로 어디 한 번 해보라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나는 말을 시작하기 위해 소주 한 잔이 더 필요했다. 술은 더 이상 쓰지 않았다.


“선배님이 살았던 동네는 밤길이 밝았나요?”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밤늦게 집에 돌아오는 길이 밝았냐구요”


“음. 꽤 밝았던 것 같은데. 애초에 집과 학교가 멀지 않았어…… 아, 솔직히 말하면 잘 기억이 안 나. 어머니가 그 짧은 거리를 데리러 오려고, 매일같이 차를 끌고 오셨거든. 그렇게 치면 차에 불을 켜고 오진 않았으니까, 밤길은 어두운 게 되나?”


남자는 지나치게 유난을 떨며 말했다. 나는 소주 한 잔을 더 마셨다. 별안간 입에 단 맛이 돌았다.


“……제가 살 던 동네는 밤길이 엄청 어두웠어요. 아주 좁은 골목길에 주황색 플라스틱 등이 그야말로 드문드문하게 서 있었죠. 가로등 불빛이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간격을 걷고 있으면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서, 누가 날 때리고 가도 모를 만큼 깜깜했어요”


“그것 참 힘들었겠군” 남자가 기계적으로 말했다.


“제 옆집에는 저보다 한 살 많은 누나가 살고 있었어요. 제가 다니던 학교랑 방향이 비슷해서 등굣길에 가끔 만나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예 보이지 않더라구요. 한 달 정도가 지나서 다시 마주쳤는데, 부쩍 말이 없어진 느낌이 들었죠. 일주일 뒤에야 동네에서 도는 소문을 들었어요. 그 누나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강간을 당했다구요. 가해자를 법정에 세우네 마네, 그럴 것도 없었죠.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으니까. 가로등도 뜸한 길에 씨씨티비같은 게 있을 리도 없었고…… 온몸에 타박상은 물론이거니와 몸속까지 다쳐서 한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지다 온 거예요. 전학도 생각했다던데, 그 근처에 여고라곤 딱 한 곳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한 달이 지나서, 자신이 강간당했던 그 등하굣길을 다시 오다니게 된 거죠”


“음”


“뭐, 대충 그랬어요. 등굣길에도, 동네의 흔한 골목에도 스프레이로 ‘섹스’라고 써놓은 걸 열두 번은 넘게 볼 수 있었구요. 동네 자체가 그랬죠. 제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어머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것이 자랑스럽다면서, 졸업만 잘하고 공장에 취직하라고 했죠. 기왕 인문계를 나왔으니 사무직이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고. 더울 때 시원하게 일하고, 추울 때 따뜻하게 일하는 것이 그만이라고요. 제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간다고 하니 온 동네에 소문이 났어요. 서울의 대학은커녕 사 년제 대학에 가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니었거든요. 나더러 독한 놈이라느니, 저렇게 고생해서 빠져나가 봤자 고꾸라질 거라느니, 오르지도 못할 나무를 왜 거들떠보냐는 식으로 별 얘기를 다하고 다녔죠”


“……듣고 있어”


“그래요, 유전자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단지, 흙수저를 흙수저로 만드는 것은, 단순히 유전자나 끼니 굶는 사람의 비율이나 학군 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종류의 정신이에요. 우린 딱 이 정도가 어울리고, 분수를 아는 것이 미덕이고, 머나먼 꿈은 가지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는 거요…… 선배님의 집안에서 서울대가 당연하게 여겨지듯이, 제게 당연하게 여겨진 것은 가난과 주제 파악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선배님과 제가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처한 환경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한 사람과, 당연히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을 한 건 결과가 비슷할 뿐 완전히 다른 영역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절대적인 노력의 양 같은 것으로 비교할 수 없는 거에요. 선배님.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질 순 없어요. 제 말은, 저희로부터 가난마저 앗아가지 마시라구요…… 많이 취했네요, 전 이만 가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나는 그대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가게를 나왔다. 밤공기가 무척 차가워 코로도 입김 비슷한 것이 나왔지만, 워낙 많이 마신 탓에 추위는 느끼지 못했다. 난 큰 길가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정신을 잃었다.


다음 날 나는 자취방 침대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한동안 더 누워있다가, 문득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오전 열한 시 이십칠 분이었고, 엄마에게 부재중 통화가 세 건 와있었고, 학사지원팀에서 웹 발신 메시지가 두 건, 어제의 선배로부터 장문의 카톡이 한 건 와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몸을 일으켰다. 찬장에는 컵라면이 두 개 남아있었다. 난 컵에 따뜻한 물을 부은 뒤, 기다리는 마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반지하 단칸방에 한겨울의 햇빛이 스며들어왔다.


<불가침조약>, 2018. 12



매거진의 이전글 습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