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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Feb 15. 2019

습작

열한번째

“나는 확신해, 넌 천재야. 네가 만든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걸 뭐라고 해야 좋을까?”


“그만해. 낯뜨거우니까”


 남자가 박박 깎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대꾸했다. 그리고 좀 전까지 요란하던 기타 몸통을 방구석에 옮겨 기대 놓았다. 여자는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다. 


“내가 말재주가 없어서, 적절한 표현이 생각이 안 나. 그래도, 있지. 영혼이 울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야”


“그건 니가 날 좋아해서 그래”


“내가 니 여자 친구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니까? 네가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모습이 얼마나 멋지냐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야, 이건”


“……뭘 말하고 싶은 거야?”


남자가 여자의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니가 천재라구, 정말, 그걸 믿어줬으면 좋겠어”


“난 천재 같은 거 아니야”


“이런 음악은 천재나 만들 수 있는 거야. 이런 건……”


“그만해!”


 별안간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기타가 세워져 있는 모서리 맞은편에 쪼그려 앉아 훌쩍거리는 소리를 냈다.


“왜 그러는 거야? 나는 그냥……”


“소리 질러서 미안해. 근데, 나는 천재 같은 게 아니야”


남자는 팔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대답했다. 울먹거리는 소리가 남자의 팔과 허벅지 사이 비어있는 공간에 울리면서 먹먹한 소리가 났다. 여자는 바퀴 달린 의자의 방향을 자기 쪽으로 돌려 앉았다.


“나는 빈말을 하는 게 아니야. 진심이라구. 내가 너 다른 부분은 몰라도, 음악적인 부분만큼은 이견의 여지없이 대단하다고 생각해. 네가 아직 이런 반지하에 있는 건 그냥 알려지지 않아서일 뿐이라니까.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널리 알려질 기회가 필요할 뿐이야. 그 뒤에는 뭐, 끝이지. 넌 한국의 브루노 마스가 되는 거야”


“난 브루노 마스가 되고 싶은 게 아니야”


“그래, 너는 너일 뿐이지. 내가 말을 잘못했네”


“아니야. 왜 내가 널리 알려져야 해? 난 그냥 하고 싶어서 할 뿐이야”


“그럼 너는 지금의 생활이 만족스럽다는 거야? 나는 싫어. 네가 만족을 해도, 난 싫단 말이야. 너처럼 대단한 재능을 가진 애가 고작 이따위 대우나 받으면서 살아간다는 건 사회정의의 실종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 지금 세상에는 저스틴 비버 같은 애가 예술가 코스프레를 하고 다녀. 세상에, 제발 내 말을 들어. 네 음악은 더 널리 알려질 필요가 있어. 더 많은 사람들이 니 음악을 듣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된다고 생각해봐. 상상만 해도 기쁘지 않아? 그건 모든 예술가의 꿈이야” 


“그럼 난 예술가가 아닌가 보네. 그런 꿈 없거든. 그리고 난 저스틴 비버 좋아해. ‘Love Yourself’는 요즘도 듣고 있고”


“그딴 건 음악도 아니야”


“아니, 너한테는 대체 뭐가 음악인데? 음악에 기준이 있기는 있어?”


“있어. 네가 하는 게 바로 제대로 된 음악이지. 지금 차트에 있는 것들은 다 똥이야. 똥 같은 음악, 아니, 음악 같은 똥이라고”


“듣기 좋으라는 소리 같아. 솔직히 말하면 듣기 좋지도 않지만”


남자는 표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리고 주저앉은 채 말없이 박박 민 머리를 쓸어 올렸다. 아마도 내일 즈음에는 머리를 밀어야 할 것 같았다. 여자는 선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 어처구니없는 표정과 분위기가 좁아터진 단칸방을 가득 채웠다. 남자가 아무 말도 않자, 여자는 옆에 있던 캔맥주를 우악스럽게 들이마시고 말했다. 


“왜 그렇게 배배 꼬였어?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평생 이렇게 신선놀음만 할래? 월세 밀리고, 전기세 밀리고, 내가 돈 내주지 않았으면 지금 난방도 끊겼을 거잖아. 이게 뭐야? 넌 이게 제대로 된 삶이라고 생각해?” 


여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캔을 테이블에 내려치듯 놓았다. 그러자 남자는 앉은 상태로 고개만 슬쩍 들어, 빤히 여자를 쳐다보고는 심호흡을 몇 번 했다.


“……난방비는 정말 고마워. 내일 오후쯤 알바비가 들어올 테니까 그때 바로 줄게. 미안해. 너도 그냥 학생일 뿐인데”


“알면, 좀! 내일 알바비는 어디서 들어오는 건데? 지난번에 그 레스토랑?”


“아니, 계단 청소야”


“뭐? 계단 청소는 또 언제 했대? 그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배워서 하는 게 아냐. 그냥 하는 거지. 돈이 필요하니까”


“하긴 넌 음악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네. 배우는 거 자체가 적성에 안 맞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네” 남자가 멋쩍게 대답했다.


“음악은 돈도 안 되는데 말이야”


여자가 말을 마쳤지만 남자는 대꾸가 없었다. 여자는 무릎에 팔꿈치를 얹고 그쪽 손으로 턱을 괴곤 남자를 응시했다. 남자는 애써 눈길을 피하려 했지만, 워낙 방이 좁은 탓에 시선이라도 도망칠 곳이 마땅찮았다. 


“그냥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면 안 돼? 오디션 같은 건 정말 나가기 싫어”


“한심한 소리 그만해. 그럼 너한테 달리 방법이 뭐가 있어?”


“오디션은 정말 아니야. 심지어 그건 이제 끝물이라니까!”


“그럼 다른 방법이 있어? 있냐고”


여자는 마치 어린애를 혼내는 본새였다. 남자가 떨군 고개는 더 깊이 잠겼다. 


“……일단 앨범을 내고 싶어”


“또, 또 그 앨범 타령이야, 너 그거 하다가 죽어. 굶어 죽는다고. 나 너 줄 돈 이제는 없어. 나도 내 삶이 더 중요하단 말야. 내가 언제까지 널 믿어야 하니? 너 스스로도 못 믿는 너를 언제까지 내가 믿어야 해?”


“믿지 않아도 상관없어. 어차피 할 거거든. 앨범은 밴드와의 약속이고,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야. 네 말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아도 좋아. 어차피 그딴 건 상관없었어. 좋은 음악이니까 널리 알려져야 한다는 건 논리도 뭣도 아냐. 그냥 네 희망사항이지. 난 돈 때문에 이걸 하는 게 아니야. 이걸 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 거지. 좋은 음악이라는 건, 좋은 장비나 교육이 아니라 바로 이런 자세에서 나오는 음악을 말하는 거야. 난 내게 좋은 음악을 할 거야. 그게 전부야. "


남자가 말했다. 그리고, 이제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아예 모로 누워 자는 시늉을 했다. 여자는 부아가 치밀어 탄식했다. 단지 여자의 탄식에는 희미한 체념과 냉소, 자포자기한 듯한 뉘앙스가 함께 묻어 나왔다. 남자는 난방 켜진 방바닥에 몸을 뉘인 덕에 금방 따뜻해졌다.


“한심한 새끼, 그냥 죽어, 죽으라고” 여자가 발을 들어 남자의 몸을 마구 밀며 말했다. 


“그건 내가 세 번째로 하고 싶은 일이지”


“뭐……? 두 번째는 뭔데?”


여자의 물음에도 남자는 묵묵부답이었다. 대신 눈을 감은 채, 넌지시 히죽거리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여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남자는 발길질을 열일곱 차례 더 당해야 했다. 그날 밤에 남자와 여자는 마지막으로 관계했고, 서로의 길을 가기로 약속하며 시원하게 헤어졌다. 


여자가 다시 남자의 노랫소리를 들은 건 계절이 세 번째 바뀔 무렵이었다. 통신사 대리점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는 첫 앨범의 타이틀 곡이었고, 몇 주 동안이나 차트 상단을 오르내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여자는 앞으로 평생 볼 일 없을 남자의 전화번호를 삭제했는데, 훗날 간신히 기억을 더듬어 전화를 걸었더니 모르는 여자가 받아 ‘없는 번호’란 말만 남기고 툭 끊어버렸다. 발렌타인데이였다.


<신뢰와 명분>, 201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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