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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un 13. 2019

습작

마흔네번째



야간 편의점을 지키는 일은 대개 따분하다. 밤 열 시부터 오전 아르바이트가 오는 오전 여덟시 까지, 열 시간에 달하는 시간 동안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매대 정리, 재고 관리, 매장 청소, 손님 응대, 계산, 그리고 다음 알바가 오기 전에 인수인계 정리를 해두는 것 정도가 주요 업무인데, 실상 가장 애를 써야하는 일은 ‘잠들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이렇듯 편의점 알바가 하는 일이란 늘어놓고 보면 참 단순한 일들뿐이다. 다만 젊은이들은 일이 너무 단순하다는 이유로 이 일을 시작했다가, 정확히 같은 이유로 돌연 그만둬버린다. 나처럼 무려 5년 동안, 심지어 삼십 줄을 막 앞둔 시점까지 계속 일하는 경우는 무척 드문 케이스인 셈이다. 편의점 알바라는 일 자체가 오래할 것이 못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이 편의점이나 지키기엔 너무 아까운 인간이라 느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날은 폐기식품이 유독 많았다. 지난 일주일동안 수확이 적었기 때문에, 마침 식비부담이 절정에 달했던 나로서는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나는 폐기식품 가운데 맨 앞에 있는 고추장불고기 맛 삼각김밥을 하나 먹어치웠다. 

     

첫 복통은 자정 무렵에 있었다. 난 매대를 대강 정리한 다음 카운터에 앉아 휴대폰을 하고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아랫배가 꽉 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날 먹은 음식이라곤 점심의 컵라면과 출근 직후에 먹은 삼각김밥 뿐이었는데. 나는 그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겠거니 하고, 신호가 오면 잠깐 편의점 문을 닫고 화장실에 갈 요량으로 버티기 시작했다.     


편의점은 큰 도로가에 있었다. 주위는 온통 빈 상가와 사무실, 일찍 문 닫는 식당들이 위치했고, 걸어서 오 분 거리에 있는 오피스텔을 제외하면 가정집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자정에서 새벽까지는 손님이 거의 없다. 어떤 날에는 해가 뜨기 전까지 단 세 명만이 편의점을 찾았다. 그런 주제에 어째서 야간영업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본사와의 계약조건이 연중무휴에 이십사 시간 운영이었던 게 아닐까, 추측만 해볼 뿐이다. 

    

이 날도 별 다를 건 없었다. 새벽 두 시까지 손님은 고작 다섯 명에 그쳤다. 기억나는 건 새벽 한 시 쯤의 손님이었는데, 이십대 중후반쯤 돼 보이는 젊은 남자가 한 여자를 등에 업은 채 들어왔다. 여자는 멀리 카운터까지 술냄새가 진동할 정도로 만취한 모양이었다. 손이며 팔이며 몸통이 중력에 따라 축 늘어지는 것이 시체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 여자를 업은 상태 그대로 편의점 구석의 ATM기로 다가간 남자는 현금 몇 만 원을 인출하곤 곧장 가게를 빠져나갔다. 신경이 좀 쓰이긴 했지만 나로선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두 시가 조금 넘어서, 나는 편의점 문을 잠근 다음 화장실로 향했다. 복통이 더욱 심해져 아랫배는 물론 윗배까지 콱콱 쑤셔댔다. 양손으로 배를 부여잡고, 좁아터진 화장실에서 십 분을 넘게 앉아있었지만 도저히 나올 기미가 없었다. 마침 멀리서 ‘아무도 없어요!?’ 하고 남자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공연히 변깃물을 내리고, 금방 카운터로 돌아가 계산을 마쳤다. 남자는 담배 한 갑을 손에 들고 왔던 길을 향해 되돌아갔다.     


새벽 세 시 반쯤 돼서 화물트럭 한 대가 편의점 앞에 멈춰 섰다. 주말을 앞둔 평일에는 늘 발주물량이 만만찮다. 난 기사님과 함께 수십 개의 소주와 막걸리 병이 든 플라스틱 박스며 잡화 무더기들을 가게 안쪽으로 옮겼다. 몸이 좋지 않아서인지, 평소보다 더 무거운 느낌이었다. 기사님이 돌아갈 즈음에 나는 땀으로 범벅이 돼있었다. 난 물량이 오는 대로 즉각 정리하는 편이었지만, 이날만큼은 현기증이 돌아 카운터에서 잠깐 쉬었다 하기로 했다. 

     

얼마지 않아 오십대 쯤 돼 보이는 아저씨 한 명이 들어왔다. 꾸깃꾸깃한 지폐와 동전 몇 개로 막걸리 한 병을 계산하더니, 곧바로 가게 구석 테이블로 가서 주저앉았다. 추레한 갈색 자켓에 낡은 카고바지를 입고, 혼자 술판을 벌이는 모습을 본다면 그 아저씨가 부랑자라는 사실쯤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주제에 나보다 더 굶고 사는 사람을 무시할 생각은 없지만, 퀴퀴한 냄새는 물론이거니와 혼자 뭐라 중얼거리는 등 여간 귀찮은 존재가 아니었다. 멀쩡할 때와도 골치가 아픈데, 제대로 몸 가누기도 쉽잖은 상황에 만나자니 재수가 옴 붙었다 싶었다.

     

나는 카운터에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금방 다섯 시가 넘어간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겨우겨우 정신을 차린 상태로 가게 내부를 둘러봤다. 부랑자 아저씨는 테이블에 퍼질러 누운 채 잠들어있었다. 막걸리병은 텅 비었고, 발밑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보니 가게 안에서 담배도 피운 것 같았다. 깨워서 한 소리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당장은 눈앞이 핑핑 돌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난 그때 처음으로 이마에 손을 대봤다. 내 손은 이미 뜨거워 땀에 절은 상태였는데, 내 이마는 그 보다도 훨씬 뜨겁게 느껴졌다. 내가 단순한 배탈이나 감기 따위에 걸린 게 아니라는 걸 그제서 깨달은 것이다. 입고 있던 옷은 흠뻑 젖어 무거워졌고, 온 몸에 오한이 돌아 손발이 와들와들 떨렸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편의점 주위에는 가로등 불빛 이외에 아무 것도 없었고, 사람이라곤 가게 구석에서 시체처럼 잠들어있는 아저씨밖에는 없었다. 다음 알바가 도착하기 까지는 세 시간이나 남았다. 몇 분쯤 고민한 끝에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난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어본 일이 거의 없었다. 하물며 그 시간에 전화를 건 것은 지난 오 년 가운데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시간에는 사장님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걸 전혀 몰랐던 것이다.     

 

나는 급한 대로 가게에서 해열제를 찾아 먹기로 했다. 사장님은 폐기 처리된 식품 이외에 다른 물건을 알바가 쓰는 것에 무진 화를 내곤 했는데(심지어 정상적으로 돈을 내더라도 그랬다), 너무 아파서 약 한 알 꺼내 먹는 것 정도는 이해해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매대에는 안 듣기로 유명한 소화제 두 통, 뿌리는 파스 세 통 그리고 밴드 여섯 통이 전부였다. 해열제며 진통제는 재고가 다 떨어진지가 이틀은 됐는데, 오늘이 돼서야 겨우 물건이 들어온 마당이었다. 나는 편의점 곳곳에 늘어진 박스를 뒤져가면서 필사적으로 약을 찾았지만, 당최 보이지 않아 포기해버렸다.      


여섯시가 다 되자 가게 유리벽 바깥으로 어슴푸레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해가 뜨는 모양이었다. 평소 이맘때의 나는 가게 밖으로 나가 이른 아침 공기를 듬뿍 들이마시곤 했는데, 열이 펄펄 끓는 마당에 그럴 겨를이라곤 없었다. 아저씨는 급기야 코를 골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안 그래도 아픈 머리가 금방이라도 깨질 지경이었다. 몸이 멀쩡했다면 그 아저씨를 마구 두들겨줬을 텐데.      


나는 병원에 가고 싶었다. 카운터 위에 놓여있는 휴대폰을 겨우 집어 들었다. 사장은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국 지도 앱을 켜서 가장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차로만 십 분이 넘게 걸리는 곳이었다.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곳이었다. 119를 부르자니 가게를 지킬 사람이 없었다. 나 하나 아프다고 가게 문을 닫아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교대하러 온 다음 알바는 당황할 것이고, 무단으로 영업을 중단한 것 때문에 사장과 본사 사이에 분쟁이 생긴다면 더더욱 큰일이었다. 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젊은 여자 손님 한 명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몇 시간만의 손님이었다. 꽤 높은 구두를 신고 있었던 여자는 또각또각, 발굽소리를 내며 들어와 가게 내부를 쭉 돌았다. 아저씨는 여전히 코를 골며 자고 있었고, 나는 카운터에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오 분쯤 지났을까. 여자는 옥수수수염차를 두 병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난 손 끝에 겨우 힘을 줘가면서, 포스기에 바코드를 두 번 입력시켰다. 그러자마자 포스기에서 튀어나오는 소리……     


“삑! 투 플러스 원 행사상품입니다!”     


나는 순간 욕지거리가 나올 뻔 했던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얼빠진 표정으로 서있는 여자더러, 돌아가서 같은 제품을 하나 더 가져오시겠냐고, 최대한 정상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 이거 두 개가 전부던데요?”     


여자의 대답에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 상태에서 냉장실에 들어갔다간 시체가 돼서 나올 게 분명했다. 결국 나는 ‘남은 재고가 하나도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여자는 세상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가게에서 나갔다. 난 그대로 카운터에 쓰러져 십 몇 분간을 뻗어있었다.     


그 시각 가게 앞 도로에는 차가 몇 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개 중에는 ‘빈차’ 표시등이 켜진 택시도 간혹 있었다. 고열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으며, 현기증은 깨질 것 같은 두통과 함께 더욱더 심해졌다. 아저씨는 아직도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난 더 이상 제정신이 아니었다. 편의점이고 뭐고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 병원으로 가야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혔다. 곧 편의점 유리문에 붙은 잠금장치에 열쇠를 꽂아 돌리자,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가게 문이 잠겼다. 가게 안은 아직도 불이 켜져 있었다. 테이블에 엎드려 자는 아저씨도 그대로 비쳐보였다. 나는 그 광경들을 뒤로하고 도로를 향해 절룩거리기 시작했다.     


편의점 입구와 도로 사이에 있는 인도는 기껏해야 차 두 대가 지나갈 정도의 너비였다. 그러나 이제 막 편의점을 빠져나온 내게 도로는 너무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야도 불분명했다. 아까보다 해가 더 떴는지, 약간 밝아졌다는 느낌 외에는 아무 것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머리가 이쪽저쪽으로 흔들렸다. 덕분에 방향감각이 엉망이었지만, 어떻게든 본능에 의지해 도로를 향해 전진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렇게 하면 언젠가 도로에 다다를 것이고, 곧 택시를 잡아타서 병원에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도로를 향해 기어가는 도중에, 딱 한 번 뒤를 돌아봤다. 가게 내부의 하얀 불빛이 깜빡거렸고, 어느새 잠에서 깨어난 아저씨가 괴성을 지르며 가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었다. 매대를 발로 차 쓰러트리고, 카운터를 향해 물건을 마구 던졌다. 아마 자신이 가게에 갇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유리문 아래의 잠금장치를 돌려 따고 빠져나오면 될 일이지만, 그럴 정신이 아저씨에게 있을 리 없었다. 나는 몸을 반대로 돌려서, 편의점에서 내뿜는 불빛을 향해 다시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이게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장면이다.     


나는 지금 병상에 누워있다. 의사는 내 두뇌가 사십 도를 훌쩍 넘어가는 고열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고 했다. 그 결과 언어능력과 운동능력을 대부분 상실해서, 소위 식물인간으로 불리는 신세가 됐다. 독감이 이토록 무서운 병일 줄이야, 이렇게 되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 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편의점 야간 알바 정도였지만, 이제는 그마저 사라지고 이렇게 혼자 생각하는 것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먼 지방에 계시던 어머니는 그날부로 서울에 올라와 날 간호하셨다. 욕창이 생기지 않게 매일같이 내 등을 닦아주시는데, 정작 당신이 흘리는 눈물은 닦지 못해서 내 어깨죽지며 손등에 뚝뚝 흘리시곤 한다. 그럼 나는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이나 몇 번 깜빡여본다.     


어머니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그 뒤로 편의점이 어떻게 됐는지, 아저씨는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여덟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을 알바가 정상적으로 인수인계를 할 수 있었는지, 점심시간이 다 돼 잠에서 깬 사장이 내게서 온 부재중 전화를 보고 어떻게 했는지, 그 날 내가 정리 못한 물량은 누가 정리했는지, 지금쯤 텅 비어있던 상비약 코너가 도로 꽉 채워졌는지, 지금 상황에 책임지겠다고 나선 사람이 과연 있는지, 그 어떤 사실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다만 딱 한 가지, 내가 아는 확실한 사실이 있다면…… 머잖아 편의점에 새로운 야간 알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알바, 천국>, 2019. 6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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