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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ul 14. 2019

습작

예순한번째

 A대학교 정문 앞에는 여학생 스무 명 남짓이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여학생들은 이십대 초반에서 많게는 이십대 후반까지 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하나같이 교복차림을 하고 있는 것이나 <선생님! 여자인 저도 법조인이 될 수 있나요?> 라고 적힌 피켓이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논란입니다” 여학생들의 행렬 맨 앞 가운데 앉아있던 여자였다. 앰프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마이크에서 노이즈가 지직거리고 있었다. “우리 A대학교 여성주의 학회 <여력>은, 최근 불특정 다수의 남학생들이 제기한 로스쿨 역차별 논란에 당당히 맞서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때맞춰 뒤에 앉아있던 여학생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주위에 둘러서 지켜보던 사람들 몇몇도 소리를 보탰다. 목소리를 냈던 여학생이 말을 이었다.      


 “여러분! 최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여자대학교 로스쿨 폐지는 물론, 여자대학교 자체를 없애달라는 몰지각한 남성들의 행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로스쿨 입학에 이미 ‘암묵적인 여성 쿼터제’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최선을 다해 로스쿨 입시를 준비한 여성들의 노력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인근에 위치한, 법적으로 엄연히 정의된 여자대학교의 로스쿨까지 남성의 법조계 진출을 저해하는 역차별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사오십 대 중장년층의 의견이 아닙니다. 여러 대학교의 학내 커뮤니티에서 나타나고 있는, 다름 아닌 우리와 같은 세대 남성들이 내놓은 의견입니다……”     


 정문 인근에 연두색 버스가 멈춰 섰다. 우루루 내린 학생들 가운데 열댓 명 정도가 시위현장 주위로 몰려들었다. 차가 떠나고 정문 인근이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저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둡게만 느껴집니다.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성평등을 향해 조금씩 전진하고 있는 반면에, 대한민국은 혐오와 차별이 고쳐지기는커녕 더욱 고착화된 사회를 향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짜, 여성학…… 아니, 성평등과 관련된 서적이나 논문을 조금만 읽어본 사람이라면, ‘역차별’ 따위의 단어는 오늘날의 성담론에서 내놓을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학회장이 결연한 연설을 오래간 이어갔다. 그사이 시간이 흘러 정시가 다 됐다. 강의시간이 가까이 닥친 학생들은 시위현장을 뒤로한채, 하나둘 정문안으로 사라졌다. 현장에 교복을 입고 앉아있던 여학생들 몇몇도 강의실에 가야할지 말지를 저들끼리 의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직 학회장만이 흐르는 시간에도 아랑곳 않은 채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여성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해보신 분이라면, ‘적극적 우대조치’라는 단어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인종이나 경제적 신분간 갈등을 해소하고, 과거의 잘못을 시정하기 위해 특혜를 주는 사회정책’을 일컫는 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선진국에서 신분, 성별, 인종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 이 적극적 우대조치를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새터민, 장애인 의무고용이나 다문화가정 장려정책 같은 형태로 적극적 우대조치가 이뤄지는 중입니다. 어째서일까요? 명목적으로만 차별을 철폐하고 동일한 기회를 준다고 한들, 기존의 차별로 인해 축적된 차이가 하루아침에 극복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수백 년 늦게 달리기 경주에 참여한 사람이 있다면 그저 이제부터 동일한 조건으로 경쟁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요. 이런 사상적 배경을 바탕으로 생겨난 적극적 우대조치를, 그저 ‘역차별’이라는 값싼 단어로 깎아내리다니요?”     


 학회장의 목소리는 점점 몸집을 키우기 시작해, 어느 순간부터는 노이즈가 전혀 들리지 않을 수준이 됐다. 어느새 백 명 가까운 청중이 둘러서 현장을 메운 가운데, 금방 강의실로 갈지 말지를 고민하던 학생들도 학회장의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오롯이 신경을 쏟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사회입니다. 법을 알고, 다스릴 수 있는 것이 곧 사회에서의 권력을 상징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의 법조인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불과 17%에 불과합니다. 교육기회의 박탈은 물론, 법조인이 되는데 있어 여성에 대한 차별대우가 노골적으로 이뤄져왔기 때문입니다. 현 정권 역시 말로는 성평등을 추구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여성이 사회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이란 여전히 2할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차별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회의 ‘허락’이나 ‘용인’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적극적인 우대조치가 필요합니다. 저희는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모든 성차별에 대해 직접 행동할 것입니다. 때문에 저를 비롯한 A대학교 여성주의 학회는, A대 로스쿨에 30%이상의 동대학 여학생 할당제를 실시할 것을 당당히 요구하는 바입니다!”     


 “와, 와!” 뒤에 쭈르르 앉아있던 학생들 모두가 벌떡 일어나 환호하기 시작했다. 듣고 있던 청중들로부터 박수갈채가 뒤따라왔다.      


 “우리 여성들의 미래를 가로막고 있는, 저 오만한 유리천장을 함께 깨부숩시다. 여기 정문 뒤쪽에 있는 <여력>부스에서 시위참가 신청서를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바빠서 힘드시다면 청원서명에 힘을 실어주시거나, 저희 활동을 지지하는 의미로 소정의 후원계약을 체결해주셔도 좋습니다. 네, 저쪽이에요…… 저 쪽……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금방 열정적인 연설을 마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학회장은 한층 후련한 표정으로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그런 보람을 느낄 겨를도 없이, 후원이나 지지의사를 밝혀오는 사람들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연설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처럼 보였다.     


 그때 적당한 키에 다소 마른 체격의 남자 한 명이 단상에 올랐다. 군청색 청바지에 낡은 운동화, 회색 티셔츠와 검은색 뿔테안경을 쓴 남자였다. 아마 국내에서 생산되는 백과사전 가운데 ‘남대생’이라는 항목이 있고, 그래서 참고할만한 사진이 첨부돼야 한다면 이 남자의 사진을 찍어서 대표로 써도 괜찮을 것이다. 그만큼 평범한 행색의 남학생이었다. 그래서 이 남자가 몰래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첫 마디를 꺼낼 때까지 주변에 있던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인근의 B대학교 사회교육과에 다니고 있는 김민혁이라고 합니다” 남자가 말했다. “전 비록 타 대학 학생이지만…… 실례가 안 된다면 자유발언을 잠깐 해도 될까요?”     


 “어, 뭐야?” 바쁘게 몰려드는 사람들, 인솔 중이었던 학회장, 그리고 여학생들이 소리가 나는 단상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머잖아 학회 소속의 여학생 두 명이 그대로 단상에 올라 남학생을 제지하려 들었다.     


 “아니, 아니야. 놔둬. 말씀하실 수 있게 해드려”     


 학회장이 단상에 오르려는 학생들을 만류하며 말했다. 그 남자는 이미 수십 명이 넘는 청중들의 이목을 끌어놓은 상태였다. 물론 학회장은 그 남자가 어떤 논리로 공격해오더라도 완벽하게 반박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학회장님…… 연설 잘 들었습니다” 남자는 대뜸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나가던 길에 우연히 들었는데, 너무 말씀을 잘하셔서. 꼭 한 마디 하고 지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마이크를 잡게 됐습니다”     


 “아, 과찬의 말씀이세요. 그래도 고맙습니다”      


 “그래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으로서 작은 의견을 내려고 합니다. <여력>의 사상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도, 다양한 의견이 필요할 듯해서…… 괜찮을까요?”     


 “그럼요” 학회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받아쳤다. 슬하의 여학생들은 그런 학회장을 향해 무척 믿음직하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제가 학회장님의 연설을 제일 처음부터 들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꽂힌 것은 ‘유리천장을 함께 깨부수자’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정말, 여성의 권익향상에 대한 학회장님의 확신이 느껴져서 좋았던 대목입니다. 그런데……”     


 남자는 한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여전히 주위에 서서 단상을 응시하고 있는 청중들이며 지나가는 사람들, 학회장을 비롯한 <여력>관계자들 모두의 표정에 일말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학회장님이 말씀하셨던 그 유리천장이라는 것이 분명 있고, 그걸 깨부숴야한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건 평등사회로 가는데 있어 필수적인 절차죠. 그런데, 그 유리천장이라는 것이 다소 제한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로스쿨에 더 많은 여학생이 들어가서, 법조계에 더 많은 여성 법조인이 생기는 것 역시 우리 사회의 유리천장을 점차적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방법일 겁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모든 여학생이 로스쿨에 가고 싶어 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건 좀 편협한 말씀이신데요” 학회장이 남자의 말허리를 끊으며 말했다. “지금 말하시는 걸 들어보면, 여성이 법조인이 되는 걸 스스로 기피했다는 느낌이라서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오랫동안 여성에게는 ‘법조인’이 된다는 선택지 자체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여성에 대한 교육이 적극적으로 실시된 것도 한 세대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법조계 진출은 뭐, 말할 것도 없지 않나요?”     


 “그건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드리고자 한 말은 그게 아니었어요”     


 “그럼요?” 학회장이 대꾸했다.     


 “제가 드리고자 한 말은, 이 문제가 단순히 성별갈등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파보면 그저 남녀간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갈등의 문제이기도 하지 않느냐는 거죠.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엘리트와 저학력자, 지식인과 소시민 사이의 갈등 말이에요. 학회장님, 하나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하세요” 학회장이 말했다.     


 “학회장님이 말하는 성평등에서, 여성의 권익 향상은 경제적이나 계층적인 차별을 두지 않고 이뤄져야 하는 거겠죠?”     


 “물론입니다. 그걸 구태여 말할 필요가 있나요? 근데 그게 지금 여기서……”     


 “아! 그럼” 이번에는 남자가 학회장의 말을 끊었다. “우리 사회에서 도움이 필요한 여성, 그 가운데 교육수준도 소득도 낮은 여성을,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계층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계시나요?”     


 “그야, 소득과 교육수준이 높은 사오십 대 남성이겠죠. 그 사람들이 이해하는 거라곤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 뿐이니까요”     


 “네,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죠” 남자는 문득 유감스럽다는 투로 대답했다. 기이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이해 못하는 계층이 있어요. 바로 당신 같은 엘리트 여성들이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죠?” 학회장 뒤에 서있던 여학생 한 명이 끼어들어 물었다. 그때 남자는 단상 위에서 슬픈 표정으로 서있었다.      


 “뭐, 뻔한 얘기에요. 듣고 나시면 공감하실 텐데…… 그냥 상상을 해보자고요. 우리 젊은 세대를 엘리트 남성과 엘리트 여성, 멍청한 남자와 멍청한 여자의 네 분류로 나눠서 생각해봤을 때 말이에요. 엘리트 남성은 누구와도 함께할 수 있습니다. 엘리트 여성과는 엘리트스러운 얘길 할 수 있고, 멍청한 남자와는 군대 얘기나 천박하고 마초스러운 음담패설이나마 할 수 있을 거고, 멍청한 여자와는 뭐, 섹스라도 할 수 있겠죠. 엘리트 남성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멍청한 여자의 성이니까요, 하하…… 아, 올라오지 말고 들어요! 조선말은 끝까지 들으라고 못 배웠습니까?”     


 남자가 말끝에 이르러 더럭 소리쳤다. 그러자 당장 단상에 올라오려던 여학생 한 명이 깜짝 놀란 듯 도로 내려갔다.     


 “그런데 엘리트 여자는 어떻죠? 엘리트 여자가 대화 가능한 상대는 같은 엘리트 여성, 기껏 넓혀봐야 엘리트 남성 정도에 불과해요. 멍청한 남자는 혐오의 대상이고, 멍청한 여자는…… 아예 논외죠. 안 그래요? 여러분은 오늘 처음 만난 엘리트 여성과 중졸 여성이 단 둘이 마주 앉아서 몇 시간 동안 즐겁게 대화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나요? 전 안 되거든요. 아예 반례가 없지야 않겠지 만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혐오보다 더 나쁜 것이 무관심과 외면이라고요”     


 “주제를 말해! 지금 뭐하자는 거야?” 학회 소속의 여학생들이 소리쳤다. “공부도 지지리 못해서 B대학이나 간 주제에” “B대학에는 로스쿨도 없잖아? 뭔 상관이야?”     


 “아, 우리 서로 솔직해지자고요. 여자 쪽에 바보가 더 많은 건 사실 아닙니까? 교육수준이라든가, 자립가능성이라든가 하는 것들로 봤을 땐 명백하죠” 남자는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있었다. “유전적으로 여자가 더 멍청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저 결론적으로는 멍청한 인간의 비율이 남자보단 여자 쪽에 더 많은 건 맞지 않느냐고요. 당신들도 알고 있잖아요? 여자 중에 정말 엿같은 행동만 골라서 하는 개년도 있다는 걸요. 또 어떤 여자는 너무 멍청해서, 같은 여자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치밀지 않나요? ……그걸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냥 솔직하게 말하란 거죠. 그래, 솔직히 말해요. 당신들은 여성 전체의 권익이 올라가는 것보다도, 정말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가 되는 것보다도, 엘리트 남성들이 누려왔고 누리고 있는 것을 똑같이 얻고 싶은 것 아닌가요? 그래서 ‘로스쿨 동대학 여학생 할당제’같은 걸 주장하면서 유리천장이나 운운하는 것 아니냐고요?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고, 이렇다 할 소득도 없고, 이런 자리에서 크게 목소리 낼만큼 지지받은 경험조차 없는 여성들이, 당신네들에게 ‘같은 여성’으로 취급되기나 하나요? 그저 우매한 대중의 일부로서, 당신들의 이기적인 시위에 동참해주면 그게 전부 아니냐고요!”     


 “당신은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얘길 하죠? 우리 학회에 대해 뭘 알고 있다고 그따위 망발을 하느냐고요” 학회장은 단호하고 뚜렷한 소리로 되물었다. “우리 학회의 사상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고 이야기하는 걸, 우리가 더 이상 왜 듣고 있어야하는지 모르겠네요”     


 “그러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왜 학회장을 포함한 A대학교 여성주의 학회 <여력>의 회원 대부분이 법과대학 소속인지, 전방위적인 여성주의를 표방한다면서 왜 활동은 A대학교 로스쿨 여학생 할당제를 요구하는 시위뿐인지 말이에요. 하기야 이건 증거가 될 수 없겠죠? 누가 보낸 공문처럼 ‘공교로운 우연’일 뿐이니까요”     


 “이제 당신이 누군지 알겠네요” 학회장은 비웃으며 말했다. “알면 이만 내려가세요. 말했다시피 우연이라고요, 그건”     


 “그래, 우연이겠죠, 아주 기가 막힌 우연…… 같은 지역구 저소득층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봉사 요청에도, 캠퍼스 내에 생리대 공동구매를 위한 모금함 설치를 도와달라고 했을 때도, 근처 거주민들이 장애여성보호센터 건설에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었을 때도, 고등학교 교복 기부 프로젝트에 참여해달라는 공문을 보냈을 때도, 미혼모 자립을 돕자는 취지에서 공석이 된 근로장학생 TO를 배정해달라고 했을 때도, 그저 ‘다른 여성권익 보호 활동에 바쁘다’는 이유로 죄다 거절한 건 우연일 뿐이겠죠. 다른 대학교 페미니즘 동아리에서 아무리 도와달라고 애를 써도!”     


 “아, 씨발……” 학회장이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야! 저 새끼 안 끌어내고 뭐해? 빨리 끌어내!” 

    

 “이봐요! 우리는 학회지, 자원봉사단체가 아니거든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 멋대로 지껄이고……” 막 단상에 오른 여학생이 남자의 면전에 대고 말했다. “기부도 그렇지, 그게 의무입니까? 봉사는 스스로 결정해서 하는 건데, 그걸 안 했다고 우릴 비난하는 게 말이나 돼요? 당신같은 사람들이 유리천장을 더 깨기 힘들게 만드는 거라고요. 알고 있어요?”     


 “우리 사회에 깨야할 유리천장이 있는 건 인정해요” 남자는 세 명의 여학생에게 붙들린 채, 단상에서 끌려 내려가며 말했다. “그런데 당신들한테는 유리천장보다도 먼저 깨부숴야할게 있는 것 같네요. 적어도 내 생각에는……”     


<유리가면>, 2019. 7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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