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환이 있는 부모님을 돌보는 일이 힘겹다. 직접 모시는 것도 아닌데, 근처에 살며 일주일에 두세 번 찾아뵙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겁다. 때로는 ‘내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과거에 어린 자식을 돌볼 때는 힘이 들어도 그런 감정은 없었다. 그 일은 책임이자 기쁨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몸도 예전 같지 않다. 아픈 곳이 많아지니 마음의 여유도 줄어드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동물도 자기 새끼는 돌본다. 그러나 늙은 부모를 돌보는 동물은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어쩌면 단지 ‘동물’에 가까운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인간도 생물학적으로는 동물이지만, 스스로를 다른 차원으로 구분한다. 그것은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동물의 진짜 능력과 지혜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그런 판단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 역시 인간인지라, 인간이 가진 그 ‘우수성’을 긍정하고 싶다.
그렇다면, 동물과 인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기준을 통해 우리는 ‘동물 같은 사람’과 ‘동물보다 못한 사람’, 그리고 ‘동물보다 우수한 사람’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동물보다 못한 사람
자식을 돌보지 않는 사람: 대부분의 동물은 자기 새끼를 보호하고 기른다. 자기 자식을 방치하거나 버리는 인간은 동물보다 못하다.
자식을 독립시키지 못하는 사람: 동물은 때가 되면 새끼를 떠나보낸다. 성인이 된 자식을 여전히 돌보거나 통제하려 드는 것은 우수함이 아니라 집착이다.
재미나 탐욕으로 타인을 해치는 사람: 동물은 생존을 위해서만 사냥한다. 인간이 쾌락이나 욕망 때문에 다른 생명을 해친다면, 그것은 동물보다도 비열한 일이다.
동물 같은 사람
약자를 억압하는 사람: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이다. 그러나 인간은 공존과 협력을 통해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약자를 억압하는 사람은 문명 이전의 단계에 머무른 존재다.
타인의 것을 훔치는 사람: 동물의 도둑질은 생존 본능이다. 하지만 인간이 생존이 아닌 욕심이나 재미로 훔친다면, 그것은 동물보다 더 낮은 행위다.
동물보다 우수한 사람
부모를 돌보는 사람: 부모를 돌보는 동물은 없다. 인간만이 ‘효’라는 가치를 만들고, 그 의미를 실천해 왔다.
타인을 돕는 사람: 동물은 본능적으로 자기 생존만을 위해 움직인다. 그러나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돕는다.
강자를 이겨내는 사람: 동물 세계에서는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연대와 지혜로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다.
동물보다 높은 수준의 존재가 되려면, 부족한 점을 채우고, 타인을 배려하며, 부모를 돌보는 일을 ‘의무’가 아니라 ‘사람다움의 증거’로 받아들여야 한다.
때로는 지치고, 억울하고, 손해 보는 느낌이 들지라도 — 그 마음을 넘어설 때, 우리는 비로소 동물보다 우수한, 진정한 ‘인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