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제 내가 가장 기분이 좋은지 한 번 떠올려 보았다. 대단한 성공을 이룬 날도 아니고, 누가 봐도 특별해 보이는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생각해 보면 내 기쁨은 대부분 아주 평범한 순간들에서 시작된다.
첫 번째 기쁨은 소박한 한 끼를 먹었을 때 찾아온다. 푸짐하게 차려진 상보다, 재료 몇 가지로 정성스럽게 만든 한 끼가 나를 더 행복하게 한다. 배가 부른 것과 마음이 채워지는 건 조금 다르다는 걸, 이런 식사에서 자주 느낀다.
두 번째 기쁨은 오랜만에 하는 샤워다. 자주 샤워할 때는 그냥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인데, 미뤄두었던 샤워를 하고 나면 몸과 마음에 쌓여 있던 먼지가 함께 씻겨 내려가는 듯한 해방감이 있다.
세 번째 기쁨은 조금 솔직한 얘기지만, 쾌변 후 속이 편안할 때다. 속이 비워지는 그 후련함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몸 안에 쌓여 있던 불편함이 빠져나가며, ‘비운다는 건 이런 거구나, 비움의 철학이란 결국 몸으로도 느끼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정신보다 몸이 먼저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것 같다.
네 번째 기쁨은 대화가 즐거운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에서 온다.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와의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주제를 막론하고, 아무 말이나 꺼내도 이해받는 느낌, 말을 하면서도, 같이 웃으면서도, “이 시간은 절대 아깝지 않다”는 확신이 든다.
다섯 번째 기쁨은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할 때 찾아온다. 요가 시간에 평소 잘 쓰지 않던 근육을 천천히 늘리고, 버티고, 풀어내는 과정 속에서 묘한 쾌감과 기쁨이 함께 올라온다. 조금은 낯선 통증과 함께, ‘내 몸 안에 이런 힘이 있었구나’ 하는 발견의 기쁨도 따라온다.
여섯 번째 기쁨은 가족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다. 내 일보다 가슴이 뛰고 기쁘다. 사랑한다는 첫 번째 기준은, 아마도 진심으로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느냐가 아닐까 싶다. 가족의 웃음은 내 삶 전체에 따뜻한 조명을 켜 주는 것 같다.
일곱 번째 기쁨은 조금 현실적이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통장에 돈이 늘어날 때 느끼는 안도와 안정감이다.
돈은 단지 숫자가 아니라, 생활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다. 물론 줄어들 때는 다른 마음이 든다.
여덟 번째 기쁨은 내 글에 ‘좋아요’가 늘어날 때다.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내 안의 생각을 바깥으로 꺼내보는 일이다. 그런 글에 누군가 공감의 표시를 남겨줄 때, 고마움을 느낀다. 타인의 공감은 생각보다 큰 기쁨이다.
아홉 번째 기쁨은 조금 더 큰 차원의 이야기다. 우리나라에 좋은 일이 생길 때다. 스포츠, 문화, 정치,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우리가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흐뭇해진다. 내가 직접 한 일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덩달아 어깨가 펴진다.
이렇게 나를 기쁘게 하는 아홉 가지 장면을 쭉 나열해 놓고 보니, 그 뒤에 흐르는 공통된 노력이 보였다. 바로 절제, 정성, 도전이라는 세 단어였다.
나 자신을 대할 때는 절제와 도전이 필요했다. 먹는 것, 쓰는 것, 소비하는 것에서 조금은 덜어내고 조절하려는 절제, 익숙한 편안함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보려는 도전.
주변 사람들을 대할 때는 정성이 중요했다. 가족의 기쁨을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 주는 마음, 친구에게 온전히 귀 기울이는 시간, 읽어줄 누군가를 떠올리며 한 줄이라도 더 다듬어 쓰는 글. 이런 정성들이 쌓여서 다시 나에게 행복으로 돌아온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앞으로도 나는 이 세 가지를 잊지 않으려 한다. 내게는 절제와 도전을, 내 주변에는 정성을. 그렇게 살다 보면, 오늘 적어 내려간 이 아홉 가지 기쁨의 순간들이 조금 더 자주, 조금 더 풍성하게 나를 찾아와 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