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랜 친구네를 만났다. 어릴 때부터 같이 크고 놀던 친구이다 보니 식구들끼리 모두 친하게 지네는 사이이다. 그런데 그 친구 집에 오랜만에 방문을 한 자리에서 둘째가 이것저것 둘러보면서 좋아 보이는 것이 많았나 보다. 그러더니 아저씨네는 왜 이렇게 부자예요 한다. 그러면서 아빠는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하면서 내 친구가 최고라는 식으로 떠벌리고 다닌다. 내 오랜 친구들이 모두 자기 사업을 하는 사장님들인데 그러다 보니 아들들이 항상 아빠 친구들은 다 사장님인데 아빠만 부장님이네 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요렇게까지 말하고 있으니 친구에게 너는 왜 이렇게 부자여서 나를 힘들게 하냐 하고 웃고 지나갔지만 속으로는 '아니 저 녀석이 왜 저러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에 집에서 같이 놀던 둘째가 또 아빠는 이런 것 못하지? 이러면서 나를 놀린다. 그래서 또 속으로 '이 녀석이 아빠가 잘 나가지 못해 자존감이 낮은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또 '아빠를 부끄러워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면서 슬슬 부아가 치밀기에 한번 따져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야 너는 아빠가 못나면 좋겠니?"
하고 묻자 큰소리로 답을 한다.
"네! 아빠가 못난 게 좋아!"
그 말을 크게 하는 둘째를 보며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한번 더 물어봤다.
"왜 아빠가 못난 게 좋아?"
그러자 둘째가
"그래야 아빠가 회사를 잘리고 그러면 하루 종일 나랑 놀 수 있잖아요!" 하는 것이 아닌가.
코로나19 확진자가 500명을 넘어가면서 꼭 출근해야 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주 아빠가 노는 줄 알고 온라인 수업 중에 수시로 방에 들어오던 놈이 재택근무는 집에서 "일"을 하는 것임을 알았는지 며칠이 지나자 재택근무는 안 좋다고 한다. 그래도 잠자리에 들면서 나는 아빠가 좋아! 라며 아빠랑 잔다고 해준다. 그 말을 듣던 키가 훌쩍 큰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초등학생 첫째도 나도 아빠가 좋아!라고 이야기해 준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참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다. 끊임없는 야근을 하던 작년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하루 20분의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을 다그치고 몰아세우던 나를 용서하고 다시 좋다고 해주는 아이들 덕에 요즘같은 시대에 오히려 마음이 좋을 때가 있다. 우리 아버지 세대를 생각해보면 내 또래 사람들에게 아빠는 주말에 집에서 잠만 자는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 내가 회사 생활을 해보니 왜 맨날 아버지는 늦게 들어오고 주말에 잠만 주무실 수 밖에 없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세상이 변해 갈 것인가? 내 직업은 어떻게 유지 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할 것인가? 전혀 알 수 없는 미래로 하루하루마음이 바빠질 때 커나가는 아이들의 생각지도 않은 말들이 큰 힘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