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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일상 기록

by 투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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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더 자고 싶기도 하지만 뭐라도 남기는 하루가 되려면 아침 모두가 자는 시간에 하나라도 해 놓아야 하기 때문에 차를 우려 보기로 한다. 게다가 장모님께서 국화차라며 선물을 주셨다. 거기에 이전 회사 퇴직할 때 옆 부서 분이 선물로 준 보이차를 섞어서 마셔보니 정말 좋다.


처제가 선물해준 다기에 뜨거운 물을 담고 아내가 선물로 받아온 스타벅스 보온병에 우려낸 차를 옮겨 담는다.

첫 직장에서 회식 대신 손수 빚어 만들었던 찻잔에 채를 옮기고 찻주전자를 기울여 찻잔에 일부를 담고 나머지는 보온병에 옮겨본다. 그렇게 하면 온도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또 찻잎이 물에 닿지를 않아 현재 시점의 우려낸 정도가 유지가 된다. 이 작업을 두 번 하면 보온병에 찻물이 가득 찬다.


아주 귀찮기도 하고 번거롭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아침 시간의 10분 정도를 사용하고 나면 차가 주는 따뜻한 온기와 내 눈앞에 있는 여러 가지 기물들에 묻었던 마음과 기억들이 떠오른다.


내가 만든 찻잔을 강남역 근처 어디 지하에 있는 곳에서 만들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레 위에 흙을 한 덩이 올리고 손가락으로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려가며 모양을 잡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배웠던 사군자 중 국화꽃을 그려본다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렸었다. 그것이 벌써 10년 전이다.

보이차는 몸이 아파 갑자기 회사를 그만둘 때 커피를 잘 못 마시는 나를 위해 선물로 주신 것이었는데 동그란 원반 모양으로 생긴 것이 신기하였다. 보이차 보관법을 인터넷을 찾아보니 주방 선반이 가장 좋다고 하여 거기에 보관하고 있는데 보이차는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발효가 되는 것이라는 설명을 읽으니 오래될수록 좋은 친구 같은 느낌이 들어 그 순간부터 더욱 마음에 들었다. 커피도 보이차도 모두 카페인이 들어있는데 보이차는 괜찮고 커피는 몸이 거부를 한다. 카페인이 아닌 다른 것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더는 캐묻지 않는다.


국화잎을 보이차와 섞어 보는 것은 아들이 초등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배워온 것을 응용해 본 것이다. 여러 가지 차를 섞어서 향의 조화를 이루어보는 것을 차 블렌딩이라고 배웠다며 갑자기 첫째가 차를 끓여서 대접해 주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맛이 상당히 좋았었기 때문에 이번에 국화차도 받은 겸해서 보이차와 섞어 보았더니 보이지도 않는 차의 향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며 빈자리를 메워 주는 것이 눈에 보이는 느낌이었다.


항상 중고만 사서 쓰는 아빠를 두고 있다 보니 컴퓨터라고는 엄청 느리기만 한 노트북으로 학교 수업을 듣던 첫째가 자신은 데스크톱을 꼭 사고 싶다면서 오랫동안 졸라대었다. 그래서 코로나 시대에 대중교통 타기도 어려워 어제 아들 둘과 자전거를 타고 테크노 마트까지 한 시간을 이동하여 안이 훤이 들여다 보이는 컴퓨터를 한대 장만하였다. 어제 하루 종일 흥분하여 방방 뛰어다니던 아들들이 눈에 선하다. 이 컴퓨터 앞에서 나의 오랜 친구가 될 차 기구들을 놓고 사진을 찍어보았다.

옆에 덩달아 찍힌 프린터기는 당근 마켓에서 중고로 저렴하게 구입한 무한충전식 프린터이다. 먼지가 잘 쌓여서 일주일에 한 번씩 먼지를 닦아 주고 있다. 잉크가 줄어드는 것이 눈으로 확인되는 것인데 그 또한 나와의 시간을 증명하는 것 같아서 애정이 느껴진다.


어제저녁 아내와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었다. 연인에서 친구로 변해가는 것이 부부 사이인가 싶기도 한 그녀와 오랫 만에 옆에 앉아서 주전부리를 먹으며 VOD를 보았다. 가끔 웃긴 장면이 나오면 아내와 눈을 맞추며 그 순간을 교감할 때 나의 즐거움이 완성이 된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던 옛말을 조금 바꾸어 보면 즐거움을 나누면 완성이 된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내 주변의 물건들 하나하나에 기억이 있고 지나간 순간순간에 추억이 있다. 약간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아침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간은 흐르고 이제 동이 트겠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을 마음에 흘려보며 아침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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