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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 Jan 03. 2022

닥치고 방문하라 9화

왜 기다려야 하나요? _ 이달의 닥방사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집을 한 채 마련하셨습니다. 반듯한 집이었지만 무허가라 언젠가는 재개발이 되는 지역의 산동네였습니다. 다시 기억을 떠올려 보아도 그 집은 참 예뻤습니다. 반듯하게 자리도 잘 잡았지만 마당에 아름드리 포도나무가 있어서 웬만한 단독주택이 부럽지 않았어요. 나름대로 집밖에 화장실과 창고 목욕탕까지 있었고 넓직한 방이 네 개나 있고 부엌도 넓고. 다만 집 안에 씻는 공간이 좁고 귀뚜라미와 곱등이가 좀 많았다거나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요. 


앞에 이야기를 읽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서울 와서 여러 번 이사를 다니며 반지하와 산동네 달방살이를 제법 했기에 나에게 그 집은 지금까지도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기억되어 있습니다. 무허가 산동네였어도 포도나무와 통창이 아름다운 집. 나름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 더 이상 밥을 굶지 않아도 되는 따뜻한 날들이 그 집의 기억입니다.  동상이 걸려 걷지 못하고 학교에 울며 갈 일이 없었으니까요. 어린 나의 입장에서는 호시절이었고 어머니는 그 호시절의 시작을 하얀 원피스와 샌들로 열어주셨어요. 그 옷차림 덕분에, 부자집 딸로 오해를 받아서 학교 선생님들을 곤란하게 해드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남겨 봅니다. 선생님들은 아주 빠르게 나의 형편을 파악하시고는 안타까워해 주셨어요. 번번이 교사용 이달학습과 다달학습을 챙겨 주셨죠. 또, 딴 얘기로 빠졌죠? 돌아가 봅시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닥방 이야기인가? 궁금하시죠? 이번에는 전단지를 벽에 붙이는 일에 관해서예요. 손에서 손으로 건네는 전단지는 보통 식당들에서 많이 쓰지요. 그런 알바를 제법 한 뒤에 나는 전단지를 건네는 요건을 너무 잘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노량진에 님프타운이라는 식당을 하시게 되었을 때, 효율적인 전단지 전달을 위한 나의 능력을 십분 발휘합니다. 당연히 어머니의 호프집은 엄청나게 잘 됩니다. 이때도 완성의 요건은 어머니 호프집의 안주가 맛이 있는가, 인심이 좋은가이지만, 어머니 식당은 취약한 점이 있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거리. 그리고 지하라는 점. 


그런데 이런 손에서 손으로 건네는 전단지가 아닌, 벽에 붙이는 전단지는 어떤 경우에 가장 많이 쓰나요? 맞아요! 과외, 그리고 부동산 관련된 것들. 이유는 무작위의 누군가에게 전달을 하기 때문에 벽에 붙이는 형태로 바람에 흩날리는 전단지로 시선을 붙잡는 것이죠. 최근에는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도 이런 방식의 전단지를 붙이기도 합니다만. 나는 이것도 닥방의 성격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닥방을 요청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건 닥방을 원하는 사람이 닥방을 요청하는 닥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부동산과 같은 중개소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법적으로 불완전하고 서로에 대한 확신이 불확실한데도 이런 방식을 이용할 때는 중개소를 거치며 수수료를 떼이지 않겠다는 의지와 닥방을 온 사람을 확실하게 파악하여 좋은 세입자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예요. 


어머니는 초등학교를 겨우 나오셨기 때문에 전단지를 제대로 만들 수 없었기에,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봄부터 전단지 만드는 일에 투입이 되었습니다. 집의 방이 4개나 되니까, 우리 가족은 방을 하나만 쓰고 나머지 3개를 세를 주었거든요. 그리하여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전월세 세입자를 구하는 전단지를 직접 만들어야 했어요. 전단지의 문구는 어머니의 요청에 따라 디자인이 되었어요. 손으로 그리거나 썼지요. 그렇지만 이 일을 대학 때까지 지속했고 구로동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멈추게 됐습니다. 


전단지에는 정확한 정보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로 전봇대에 붙기 때문에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게 풀로 바르는 것이 좋습니다. 기껏 붙였는데, 안 붙였다고 어머니에게 혼이 날 수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집에 대한 정보를 중심으로 작성했지만 나중에는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에서 집이 얼마나 넓거나 아름다운지가 궁금하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면서부터는 월세나 전세금을 강조하는 내용을 크게 보이게 작성이 되었습니다. 가격이 싸지만 방이 넓직하다는 점! 개별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이 강조된 전단지를 만들어가면서 나는 편집력을 쌓았던 것도 같습니다. 이때부터 까다로운 클라이언트(어머니)를 만나서 요구에 맞춰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이 발달한 것 같아요. 여기까지가 닥방을 촉구하는 닥방용 전단지 작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이런 관계로 만난 사이에 범죄를 다룹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면 대부분 이렇게 나쁜 사람이 닥방을 올 확률이 높더라고요. 어머니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문턱을 쉽게 넘어들어가면서도 어머니는 문단속을 하는 사람이었고 코가 베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는 분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월세를 놓을 때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을 보면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월세는 저렴하게 내놨지만 집에 아무나 들이지는 않으셨습니다. 여러 주제로 긴 대화를 나누고 어머니 마음에 쏙 드는 사람만 받았는데, 그렇게 고심해서 들인 세입자들은 모두 월세를 밀리지 않고 잘 냈고 오래 살았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사람을 간파하는 대화술이 있었습니다. 

아, 위험한 닥방을 피하는 어머니의 방법! 공유합니다. 절대 혼자 낯선 사람을 만나는 법이 없었습니다. 시간을 지키지 않고 오면 일단 문을 열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긴 대화로 그 사람의 태도를 본다고 하셨어요.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으셨지만, 어머니는 대인 관계가 좋고 후에 장사로도 나름 성공을 하셨지요. 


자, 다음은 닥방의 아주 다른 버전을 소개합니다. 나는 감히 그것도 닥방이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어쨌던 다음 닥방 이야기도 보러 오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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