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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 Jan 12. 2022

닥치고 방문하라 28화

왜 기다려야 하나요? _ 이달의 닥방사 

<닥치고 방문하라>는 제목에 회차를 덧붙여 쓰다, 잠시 고민에 빠집니다. 어쩌면 이 글은 <닥치고 반문하라>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부제로 달아놓은 '왜 기다려야 하나요?'부터가 반문이기도 하고요. 당연한 것들에 대해 반문을 해야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잖아요.  


최근 출판과 베이스가 아주 다른 스타트업 회사에 합류하면서 고전하고 있습니다. 이 고전의 과정 자체가 수없이 많은 반문을 불러일으키는 중입니다. 가장 먼저는 일의 방식이 출판과 너무 달라서, 다른 하나는 함께 하는 파트너들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달라서. 그 조율 과정에서 나는 '격하게 다름'의 폭을 줄이기 위해 수없이 영혼의 촉수를 뻗어 그들의 사고에 닥방을 해야만 했습니다. 거듭거듭 반문을 해가면서요. 더듬더듬. 


그래요! 반문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영혼의 촉수를 뻗어 문제를 닥방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왜 기다려야 하나요?' 또는 '왜 해야 하나요?' 또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하고 묻고 묻고 다시 물어야 합니다. 


세 아이를 낳고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하고 근문하고 돌아와 아이들 픽업하고 저녁해서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다시 회사에서 들고온 일을 하고 새벽까지 막내 젖을 먹이던 2010년도 겨울의 어느 토요일. 친정 어머니가 벌컥 문을 열고 '세상 어느 집 여자가 이 시간까지 자느냐. 남편이 일어나서 굶고 있는데 밥을 차려야지. 말세다.'라고 외치셨을 때, 나는 이제까지 참아온 설움이 폭발해서 꺽꺽 울었어요. 그랬더니 친정 어머니는 '왜 울어? 뭐가 서러워! 세상 팔자 좋아진 줄도 모르고'라고 하셨고 그때 친정 어머니 뒤로 DJ가 다가와 서서는 알 수 없는 미소로 웃었어요. 그때 나는 처음으로 참 외로웠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금란서점에서 시몬느 드 보브와르의 <제2의 성>을 읽고 나는 여자로 길러졌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자라는 내내, 친정 어머니가 나에게 어떤 요구를 하실 때마다 스스로 반문하고는 했어요. 


'정말 그런가?'


덕분에 많은 덧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반문을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여성'이라는 이름에 너무 많은 책무가 주어지고 있다는 걸 깨우쳐갔죠. 이제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의 바스켓으로 하나하나 자리를 옮겨갔어요. 하지만 한국에 살면서는 덧붙여진 기대와 기준들을 완전히 벗어나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아이를 셋 낳은 것은 나의 선택이었지만, 그 선택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철저하게 나답지 않게 살아가야 했는데, 그때 나에게 왔던 말들은 여성이 제대로 이 사회에서 살기 힘들게 하는 말들이었어요. 


-애들한테는 엄마가 중요하지. 

-엄마가 그럴 수는 없지. 

-애들을 어느 정도 키워 놔야 다시 일을 하지. 

등.


무거운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내가 일하는 엄마로도 잘 지낼 방법을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DJ에게 1년의 안식년을 요구했어요. 물론 온전한 안식년은 아니었죠. 아이 셋과 함께 떠나야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당장 나에게 쏟아지는 '엄마의 삶'과 '아내의 삶'에 대한 강요로부터는 벗어나야 했어요. 


반문을 시작하자, DJ가 안식년을 허락했고 반문을 시작하자 나의 몸은 세부에 있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5년간 모두와 분리된 삶을 살면서 객관적인 눈을 가질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엄마이지만 이달이고 나는 아내이지만 이달로 돌아오는 5년의 시간을 가졌고 돌아와서 다시 5년간 서서히 이달로 돌아오는 시간을 가지게 됐어요. 그 이야기는 곧 그림에세이로 쓸 예정이기에.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기로 해요. 


닥치고 반문하라. 나는 스타트업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반문을 하게 되어요. 중년이 무엇인가? 중년 여성은 어떤 사람들인가? 47살. 모두가 내게 중년이라는데, 나는 조금도 내가 중년이라는 생각이 안드는 이 상황. 그리고 중년에 들씌워져 있는 프레임들. 모든 시장에서 큰손으로 알려진 중년 여성들의 실제는 무엇인지. 20년 전에 중년과 10년 전에 중년과 지금의 중년이 같은 모습일까요? 


특히 지금의 중년 여성에 대해 우리는 뭘 알까요? 여러분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세상이 바뀌었어요. 60대가 된 G사 대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40대일 때도 중년, 50대 일 때도 중년, 60에도 중년, 70에도 중년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중년으로 40년을 살게 됐다고요. 우리는 이 점을 함께 반문해 보아요. 왜냐면 최근 검색한 어떤 자료도 시원하게 오늘의 40대를 정의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같이 반문해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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