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정신
나에게는 변두리 정신이라는 게 있다. 스스로를 변두리 작가로 칭하고 변작이라 부르기도 하고 똥작가로 부르며 팟케스트를 했다. 난 변두리도 좋고 똥도 좋다. 변두리와 똥이 가지는 매력이 얼마나 많은데, 하찮게 여기겠는가.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의 변두리에 살았고 동네에서도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에 살았고 반에서도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에 머물었고 성적도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에 머물었었다. 뭐든 적당히 눈에 드러나지 않는 구석 자리를 실제로 선호하고 조용하고 말없지만 혼자 있으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세상의 중심이 되던 그런 아이가 나였다. 변두리여서 불편하거나 그랬냐면, 혼자일 때 늘 마음껏 자유롭게 상상하고 혼자도 잘 놀았기 때문에 중심에 서는 걸 어려워 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런 내가 초등학교 3학년 이후, 선생님들에 의해서 자꾸 교탁 앞으로 불려 나가서 내가 쓴 작품을 읽게 되고, 상을 받게 되고, 어쩌고 어쩌고 하면서 보통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센터에 서게 되니까 그게 또 그렇게 재밌고 좋았다.
물론 혼자 노는 게 좋았던 나는 여러 아이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을 때도 여전히 혼자 노는 걸 좋아하고 말이 없다. 같이 어울리고 함께 하는 일도 좋지만 그걸 가만히 보고 패턴을 파악하고 뭔가 새로운 걸 제시하는 것을 초등학교 시절부터도 좋아했다.
돌아보니, 그게 나이고 나의 정신세계였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변두리 정신으로 살고 있다. 가운데보다는 변두리에서 가운데로 성장하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내가 가운데가 되면 다시 변두리를 찾아서 새로운 중심을 찾아 지속적인 활동을 한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한 대표님이 내게, 지치지 않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냐고 물었는데. 아마도 나는 그 월동력은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파고 들어가려는 성장의 욕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기획이라는 것도 그렇다. 뭔가의 필요가 있는 변두리들에서 충만한 지점으로 파고 들어가는 게 아닌가.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마들렌컴퍼니의 일도, 뉴북나우의 일도, 클수의 일도 달달북스의 일도 모두 변두리 정신을 가지고 있다. 이미 엄청나고 대단한 어딘가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가며 중심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바쁜 곳이 아니라. 아직 개발이 덜 되어 필요하고 손이 많이 가는 곳에서 나는 뭔가를 시작하는 것을 좋아한다.
2011년에 세부로 갔던 것도 돌이켜 보면 그런 나의 변두리 정신이 반영이 된 것이었을 수도 있다. 유럽이나 미국이 아니라, 나는 필리핀이나 베트남과 같은 나라에서 살며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힘이라도 쓸모를 가지게 하고 싶었던 것이 기억난다.
혹시라도 어느 날에, 내가 변두리 정신을 잃고 그 가치의 소중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록으로 남긴다.
출판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조앤롤링과 같은 성공한 작가는 부러운 대상이 분명하지만, 나의 현실과 조앤롤링과의 격차가 너무 크면 의욕이 덜난다. 오히려 내 옆에 적당히 잘 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나도 한번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만만하니 엄두가 나고 해볼 마음이 들고 깔보는 심정에서라도 한번 움직이게 되는 게 사람 아닐까?
조앤롤링을 꿈꾸다가는 정말 평생 가난하게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녀의 운명이 바뀐 첫 권의 발행이 평생 안 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 채 말이다.
그래서 변두리 정신으로 하나하나, 한땀한땀, 차곡차곡. 작은 체리 하나라에 감사하고 나눠 먹을 줄 아는 그런 마음으로 성장을 꿈꾸는 '변두리 정신'을 이 아침 다시 떠올려 본다.
오늘 모두 여러분의 자리에서 별처럼 빛나는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