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뛰며 읽어도 괜찮아

프로젝트 : 아이들에게 책장을 돌려줘03

by 이달

<소설처럼>의 다니엘 페나크는 독자에게 건너뛰며 읽을 권리가 있다고 하였다. 그는 덧붙여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과 건너뛰어도 좋을 부분을 아이들 스스로의 판단에 맡기지 않고 누군가가 아이들 대신 결정을 해버린다는 건 참으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무지막지한 커다란 가위를 손에 들고, 아이들에게 너무 '어렵다'고 판단되는 대목은 무턱대고 잘라내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졸지에 <모비딕>이며 <레 미제라블>이 졸지에 150페이지짜리로 줄어들어 형편없이 절단되고, 훼손되고, 쪼그라들고, 말라비틀어진 모골이 되었다가 종국에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답시고 빈약하기 짝이 없는 언어로 아예 다시 써지는 참담한 지경에 이를 테니 말이다! 그건 마치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열두어 살 먹은 아이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구실로 누군가가 다시 그려보겠다고 덤비는 격이나 같다."라고 했다.


-<소설처럼>, 다니엘 페나크 지음, 문학과지성사




부끄럽게도 다니엘 페나크가 가장 경계했던 그 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다며 명작을 듬성듬성 잘라내고 어려운 용어를 풀어서 쓰고 상황을 단순화시키며 고쳐 쓰는 리라이팅 작업으로 돈을 벌어먹고 산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4학년 정도 친구들이 읽기 적당하도록 만화 캐릭터까지 삽입해 가며, 정보를 주고 캐릭터들의 대화를 통해 간단하게 질문하고 답하는 구조까지 동원해 가며, 단숨에 레 미제라블을 읽을 수 있게 만든 그 명작선은 아직도 홈쇼핑에서 판매가 되며 그동안 60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초등학교 고학년 자녀가 있는 집을 방문했을 때, 종종 책장 두어 칸을 차지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들을 만난다.


이 작업을 하느라 원작과 원서를 찾아 읽어야 했던 나로서는 더없이 큰 공부가 되었다. 제법 폭넓고 깊게 책을 읽었던 청년기 경험으로 대부분의 작품은 이미 읽었음에도 서른이 넘어 다시 읽으니, 한 편 한 편의 깊이가 달랐다. 대학시절 읽었던 변신은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서른이 넘어 읽으니 인물에 깊게 몰입해 들어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걸리버 여행기는 소인국과 거인국 이야기만 있었는데, 다시 작업하면서 만난 완역판 걸리버 여행기는 천상의 나라와 휴이넘의 나라에서의 모험이 나온다. 내가 알던 걸리버 여행기가 아닌 전혀 다른 작품이라는데 소름이 끼쳤다. 로빈슨 크루소는 영화로 만화로 만들어지면서 모두 새로운 작품이 됐다. 하지만 다시 읽은 로빈슨 크루소에는 한계상황에 임한 한 남자의 내적 성장기로 읽혔다.


배반감이 엄습했다. 그런데도 나는 나를 충격에 빠트린 이전의 출판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가위를 들어 듬성듬성 작품을 잘라내 넝마를 만드는 작업에 동참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솜씨 좋은 리폼 장인처럼 옷을 잘 기워, 새 옷을 만들어 내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자위하며 완역본을 찾아 읽고 원서를 찾아 읽었다. 아무렇게나 칼을 휘두르지는 않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이 작업을 거듭하면서 기쁨보다는 슬픔이 앞섰다. 이렇게 좋은 작품을, 너무 일찍 읽고 읽어버렸다고 생각하고 다시 펼치지 않을까 봐. 이렇게 좋은 작품을, 안다고 생각하고 다시 읽지 않을 경우 아이가 결코 만나지 못할 어떤 문장들, 어떤 책의 맛! 그 한 문장, 그 어떤 맛 때문에 아이는 책 읽기의 즐거움에 빠져 들 수도 있는데.




너무도 잘 알려진 책들은 가끔 그런 함정에 빠트리기도 한다. 안 읽었는데, '제대로' 안 읽었는데, 읽었다거나 안다고 생각하여 다시 '만날' 조우의 기회를 앗아버린다. 그런 까닭에 나는 너무 어린아이들이, 그러니까 예닐곱 살 친구들에게 피터팬과 같은 명작을 그림책으로 읽히는 것이 안타깝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남들보다 일찍 이 책을 만났으면 하는 욕심에, 200쪽 남짓 분량으로 고쳐진 명작을 초등학생에게 건네는 것은 물론, 예닐곱 살 아이들을 위한 30쪽 남짓 그림책으로, 서너 살 아이를 위한 8장짜리 그림책으로도 만든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탐구가 7세 아이를 대상으로 나왔다가 다시 5세 용으로 나오는데, 그 과정에서 작가는 한 펼침면에 장을 13줄에서 8줄로 다시 4줄로 줄여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러니까 책의 내용을 더 쉽게, 더 덜어내서 이야기를 덧붙여 재미있게! 그렇게 사회탐구인지 이야기책인지도 알 수 없고 책의 완결성이 아닌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글자 수를 따지며 만들어진 책들이 부모에게 다가간다.


"어머니, 4세에는 자기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본격적으로 문제 해결력이 자리는 거랍니다."

"어머니, 3세 남아 집에 자연관찰은 기본이에요. 관심이 없다고 그냥 두시면 안 돼요. 초등학교 가면 애들은 다 아는데, 우리 애만 몰라 봐요. 대화가 안 돼요."

"어머니, 1학년 되면 교실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이름을 공룡 이름 외우듯이 애들이 줄줄 외면서 놀아요. 거기에 못 어울리면 왕따가 돼요."

"어머니, 칼비테는 무려 태어난 지 42일 된 젖먹이에게 고전을 읽혔대요."


이렇게 아이들은 출판사에 의해 이미 건너뛰기가 이뤄진 책을 읽고 자란다. 그런데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꼭 따져 묻고 확인한다.


"꼼꼼하게 잘 읽었어?"

"건너뛰며 읽은 거 아냐?"


칼 비테는 42일 아기에게 라틴어로 고전을 읽어주었다. 아이가 서시를 외우려고 외운 게 아니라 자장가처럼 들으며 자라서 주기도문을 외우듯 외우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읽어준 책은 마음대로 칼질을 당한 원고가 아니었다.

그런 질문은 또한 아이를 믿지 않는 마음을 드러낸다. 아이는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길 수도 있다. 아이들의 책장을 보러 여러 집을 다니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상당히 많은 아이들이 책을 건너뛰어 읽는 것에 대한 도덕적 의무감에 악박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아이들은 여러 권의 책을 쌓아놓고 읽으면서 책을 소개해 달라고 하면 "다 읽지 않았지만, 읽고 있어요. 끝까지 안 빼놓고 다 읽을 거예요."라고 덧붙여 말한다. 만약 그런 친구가 하나뿐이었다면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가볍게 생각했을 수 있다. 그건 그 아이의 문제라고. 하지만 꽤 많은 고학년 친구들이 이 문제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드러낸다.

그래서 독서클럽에 온 친구들과 책을 읽을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 또한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느 부분을 읽지 않고 넘겨도 좋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왜 그 부분을 읽지 않았는지 묻는다. 그러면 어느 챕터를 읽다가 넘긴 부분을 표시해서 들려준다. 나름의 논리가 있다. 앞부분을 읽다가 더 읽지 않고 책을 덮어 버렸다는 아이도 있었다. 그 친구가 아주 논리적으로 왜 책을 신뢰할 수 없었는지 다섯 가지 이유를 제시했을 때, 나는 너무도 납득이 되었다. 우리는 독서토론을 할 때, 책을 읽고 캐릭터를 분석하고 내용을 이해하고 쟁점을 정해 토론하는데 너무도 집중한 수업을 한다. 가끔은 읽지 않은 이유를 말하고 그것으로도 2시간을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묻지 말자. 아이들이 책을 건너뛰며 읽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그 이야기를 나눠보자. 어쩌면 아이가 먼저 그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잘못했다가는 읽는 척 속이는 선수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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