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9
여름이다.
더위를 잘 타는 편이 아닌 나에게도 이번 여름은 끈적이고 뜨거운 습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밖에 나갔다가 땀에 전 채 방으로 뛰어들어와서 급하게 옷을 벗고, 에어컨을 켜고, 물을 끼얹는. 하루에 샤워를 두 번, 또는 세 번씩이나 해야 하는 계절.
서른두 해 동안 여름을 맞았어도 올해 서른세 번째 여름이 되어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처음 먹어보는 살구와 잊고 있던 백도 복숭아의 맛 그리고 케이크 위에 올라가 있는 몇 알의 포도까지도 이렇게나 달다는 것(심지어 복숭아가 여름에 나오는 거라는 것도 잊고 있었잖아.) 또 서울에 능소화가 잔뜩 피고 질 때쯤이면 밑에 지방에는 수국이 잔뜩 핀다는 사실들.
수국은 그저 연기처럼 막연하게 느껴지는 꽃 중 하나였다. 약간은 신기루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어딘가에 있지만 나는 보지 못하는 그런.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수박은 엄마가 잘 사주려고 하지 않아 양껏 먹지 못했고 혼자 살게 되면서는 더더욱 생각도 할 수 없어 해마다 여름이 되면 수박 타령만 해오던 나였는데 다양한 여름의 맛을 알게 해주는 사람이 생기고 나서야, 이런저런 것들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결국 혼자였다면 아주 깨닫지 못했거나 꽤나 오래 지난 후에 알게 됐을지도 모르는 것들이다.
예전의 나는 습하면 손가락 사이사이도 벌리고 다닐 정도로 끈적이는 걸 싫어했는데 지금은 끈적여도 그와 살을 마주 대고 있을 때가 좋다. 맨살이 닿으면 땀에 미끌거리는 것도 재밌고, 콧등에 맺힌 땀방울을 손가락으로 쓸어 닦아줄 때나, 뜨거운 콧바람을 맞을 때도 좋아. 짙어지는 여름의 색만큼 여름을 깊이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 나는 그 사람이 그저 가을에 와서 가을인 줄 알았지 내 여름까지 그 사람을 빼지 않으면 안 될 정도가 될 줄은 몰랐다.
조금씩 내리는 가랑비에 옷깃이 젖는 것도 모른 채 서있다가 자기도 모른 새 함뿍 젖게 되는 거라고 하던가. 여름은 역시 힘들지만 이런 사소하고도 사랑스러운 이미지들이 모여 결국 여름마저 애정 하게 되려나 싶을 정도로 오히려 가끔은 즐겁다.
며칠간 오락가락 내리던 비는 오늘에서야 멈춘 듯 보인다. 해는 아직이지만 이렇게 장마도 가는 거겠지. 이제 곧 불타는 뜨거움과 싸워야 한다.
지금처럼 두세 번씩 샤워를 하고, 작은 원룸에 선풍기를 세대를 돌리고, 에어컨을 틀고, 과일을 먹으며 우리는 잘 이겨낼 거다.
어쩐지 이 글을 쓰는 건 더위와의 전쟁에서 조금 더 서로의 여름을 잘 지켜보려는 약간의 발버둥 같아 보이기도 하네.
다 먹고 이제 없는 살구와 복숭아의 부드러운 잔털의 느낌이 벌써부터 조금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