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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Sep 26. 2019

자세히 표현하는 연습

                                                                                                                                                                                                                                                                                                                                                                                                                                                                                                                                                                       

몇 번이고 생각했다. 글을 쓰자. 뭐 대단한 게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일기라도 꾸준히 잘 써보자라고.

뭔가 쓴다고 하면 펜으로 끄적거리는 걸 좋아하는 나이지만 장문의 글을 써낼 때는 펜보다는 컴퓨터로 쓰는 게 수정하기도 좋고, 읽기도 편하고, 보관하기에도 좋다. 아무래도 지금 손으로 쓰고 있는 일기는 여름방학숙제를 몰아서 하듯 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감추고 싶은 무언가를 빼고서는 이렇게라도 적어야지.

일간 지우니를 목표로!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공을 살리지 못한 채 단순히 회사만 다니는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잃어버리고, 잊어버리는 단어들이 많았던 게 조금은 스트레스였다. 요즘은 그저 주욱-써 내려가는 게 아니라 많은 단어를 쓰고 싶어 져서 알고는 있지만 생경하게 느껴지는 단어들을 메모하고 있다. 한 번 더 적음으로써 내 걸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필사를 하려고 했지만 그것 또한 제대로 못 지키고 있네. 나에게만 이렇게 시간이 적게 주어지는 걸까?


글을 쓰는 것과 별개로, 감정에 예민해져야 한다.

어느 작가는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때 엄청 좋다, 엄청 재밌었다는 걸 어떻게 다르게 말할 수 있을까를 아이들과 함께 고민했고 구체적인 정보와, 근거를 주었을 때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는 말을 쓰지 않고 그 사실만 남기도록 노력하고 훈련한다고 했다.

그 말에 백번이고 천 번이고 동의한다. 오글거린다는 말 뒤에 감성과 감정을 숨기고, 여러 가지 표현들을 헐, 대박 같은 짧은 단어에 묶어두는 일이 많아져서 실제로 내가 좋다고 했을 때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어떻게 어떤 이유가 내 기분을 이렇게 만드는지 설명을 할 수 없게 된 경우가 많았다. 그냥 좋을 때가 물론 없는 건 아니지만 말 그대로 늘 그냥 좋을 수만은 없는 일인데.



나의 애인은 나보다 훨씬 감정표현에 섬세한 사람이라 우리가 어떤 영화를 봤을 때나 어떤 감정을 느꼈을 때 늘 그것에 대한 근거를 이야기해주기를 바라는데 나는 그가 그렇게 물어올 때마다 곤혹스러웠다. 단순히 "재밌었는데? 여기가 재밌었어. 이래서 재밌었어."라는 아주 쉬운 방법으로만 표현을 하는 내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기도 하고. 사실 그럴 때마다 나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다. 이런 것까지 왜 물어보지? 라며...... (반성합니다.)



글쓰기에는 오감이 필요하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느낀 바를 제대로 얘기를 해주는 게 필요하다. 연애를 할 때는 더욱. 친구들끼리야 진지한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연인과 함께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운한 감정이든 좋은 감정이든 그냥 그 감정에 대해서만 표현을 해왔지 그 감정을 받아내야 하는 그는 납득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내 감정을 들키는 게 어렵고, 무서워서. 나 같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는 무엇인가에 대해 확실하게 설명을 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두루뭉술 표현해왔다. 이는 우리의 앞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안다. 좋은 것과 싫은 것,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을 자세히 표현해주는 노력을 해야겠다.




아마 내가 연기를 결국 못하게 된 건 이런 서투른 표현 방법에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이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두려웠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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