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내가 아침밥을 챙겨놓으면 아이들과 함께 등교, 출근하는 남편이 준비시키고, 챙겨 먹이고 정리하는 구조다. 평일 아침 식사 시간 서버(남편)와 셰프(나)가 이원화되어있는 우리 집 구조 때문에 남편의 주문이 디테일 해 질 때가 많다. 내가 만들어 내가 먹이면 밥투정하는 아이들 윽박질러 먹이든 포기하고 시리얼이나 먹이든 할 텐데 성실한 서버인 남편은 제공된 음식을 고객들이 먹지 않으면 기어이 셰프를 닦달해 고객들의 니즈를 수용하게 만드신다. 2학기 개학 이후 샌드위치 비비고 주먹밥 위주로 아침 먹는 게 짠했나 보다. (이렇게 나의 아침밥 보이콧 선언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
빈정이 살짝 상하려 하는 게 단지 나의 컨디션 탓이라 다스리며 오랜만에 우리 애들 좋아하는 미역국 한~ 냄비 끓여볼까~ 하고 있는데 아빠랑 찰떡궁합 자랑하시는 우리 따님께서 한 술 더 떠 주신다.
엄마! 어남선생 미역국으로 끓여줘!
어남선생 미역국의 감칠맛의 비밀은 먹다 남은 사과 반쪽
쉽고 간단한 어남선생님의 미역국 육수 감칠맛이 궁금하신 조 씨들께서는 류수영이 만드는 내내 간단하다! 20분 이내 완성! 뭐 이런 멘트들을 나한테 강조하신다.
나는 일단 국 한 냄비를 끓이는데 곰솥 두 개가 필요하다는 사실부터 마음이 답답해져 온다. 육수 내는 게 쉬운 일이란 어남선생이 자꾸 미워질라고 한다.
나는 육수를 큰 곰솥에 팔팔 끓여 소분해 얼려놓듯 그때그때 우려서 쓰든 여하튼 육수 내는 수고로움을 삶에서 자체적으로 생략한 지 꽤 되었다. 어느 해 집 앞 재래시장 잔치국수 맛집에 파는 멸치 육수 농축액을 발견해 그걸로국, 찌개를 만든다. 그 소중한 국숫집 농축 육수를 영접한 이후부터 우리 집은 국, 찌개, 전골, 샤부샤부 등등 각종 국물요리 유명 맛집이 되었다. 내 요리의 팔 할은 그 국숫집 육수가 책임진다. 아마 그 육수 때문에 나는 이사도 못 갈지 모른다. 나뿐 아니라 내 사랑하는 친구들에게도 국숫집 육수는 삶의 효율성을 돕는 꿀팁이 되어가고 있다.
내 비법 감칠맛은 내 삶을 고단하게 만들지 않는 선에서 가족의 인정을 받고 있다. 어남선생보다 바쁜 내가 어남선생만큼의 노하우는 갖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일들을 알 리 없는 나의 아기새들이 지지배배 나에게 어남선생의 육수를 배워보라 강요하고 있다.
미역반 고기반 그리고 사과대신 매실액 한 숟갈
뭣도 모르는 딸내미에게 한수 가르쳐주고픈 맘 간절하나, 어찌 보면 나라는 딸년도 내 딸과 같은 짓을 엄마에게 하고 살았다는생각이 입을 다물게 된다. 사과 들어간 어남 선생 미역국의 감칠맛을 궁금해하는 딸을 위해 매실 한 숟갈 넣었으니 사과 넣고 끓인 척해야겠다. 울엄마가 하는 말 중 가장 싫어했던 말이긴 한데...
그게 그거지 뭐...
나대지 않고 팬트리 저 안쪽에서 엄마의 식탁을 지켜준 MSG
어떻게 애들 먹는 음식에 인공 조미료를 쓸 수 있어?
세상 암이란 암은 다 '다시다'때문에 걸리는 냥 유난을 쳐 떨며 인공조미료 쓰는 엄마 비난하던 딸들 덕에 울 엄마들의 주방에 눈에 띄는 명당을 차지하고 있던 미원, 다시다가 사라지진 못하고 찬장 저 깊은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나는 알고 있다. 인공 조미료 든 음식은 절대 안 드시는 울 시어머니도 주방 찬장 어디에 다시다 하나쯤은 숨겨두신다.도대체 뭐하러 다시다 같을걸 쓰냐며 유난을 떠는 남편과 아가씨를 배려한 조용한 후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어머님은 나에게만 조용히 말씀하신다.
그래도 다시다가 조금 들어가야 하는 음식이 있어.
지금은 자신의 워라밸을 위해 비법 조미료 하나쯤은 쓰고 살고 있는 가사독립군 하지만안티 미원 군단들!
내가 사랑하는 한 주부 카페에는 요즘 동전 육수의 인기가 한창이다. 천연조미료의 농축이라 우기는 이 간편한 감칠맛이 진짜 다시다, 미원 보다 많이 건강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삶의 편의를 위해 동전 조미료를 개시했다면 미원을 폄훼하며 엄마의 워라밸을 외면했던 무지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