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개미의 세상살이
"일 하기 싫다."
만국공통으로 모든 월급쟁이들이 내뱉는 푸념이다.
일하고 싶은 일부, 그리고 잠시간의 시간이 없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 일을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주기적으로 일하기 싫을 때가 찾아온다는 사람도 있고, 번아웃이 된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찌되었건 주어진 일이 하기 싫은 때가 봉급생활자라면 언젠가 한 번은 찾아온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듯 하다.
조직에서는 직원들이 계속해서 열정적으로 일을 해 주길 바란다.
그것이 결국 조직의 성과로 이어지고, 나아가 조직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는 조직의 우두머리도 상당수가 있긴하다.)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열정적으로 헌신하게 하기 위해 금전적인 보상, 다양한 복지혜택, 직책이라 불리는 나름의 계급을 주기적으로 달아준다.
서로를 선망하게 만들고, 서로를 계급화 시켜 상대적인 우월감을 느끼게 해 주기도 한다.
이러한 조직의 동기부여를 나쁘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거대한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어 일을 통해 자신의 전문성을 기를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신을 더 능력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동기부여를 얻기도 한다.
또는 조직으로부터 던져진 일을 처리하면서 잘 훈련된 조직들의 지원을 받아가며 훈련받을 수도 있다.
물론 크던 작던 정기적으로 주어지는 급여라는 금전적인 보상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 위해 가용한 에너지 중 최소한의 에너지만 소모한다면, 나머지 에너지는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고 그렇다고 해서 (단기적으로) 나의 급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은 큰 장점 중 하나이다.
어찌되었건 성과를 원하는 조직과 각자 바라는 바를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개인들간에 치열한 눈치싸움과 줄다리기가 지속되며 조직은 계속해서 굴러간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부정적인 면도 있고, 긍정적인 면도 있는데 왜 모든 이들은 일 하기 싫다는 마음을 가질까?
전문가들의 수많은 연구와 의견이 있겠지만 나의 경험에 비춰볼 때 일의 성과가 나의 성과가 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2000년 초 나는 잠시 아는 형님들의 일을 돕기 위해 캐나다에 머문 적이 있었다.
여러군데의 컨비니언스 스토어와 호텔 내 비즈니스 센터(지금의 PC방과 유사)를 운영하는 한국인 사장님이 있었고, 그 사장님 아래에 두세명의 매니저급 인원이 사장님이 운영하는 사업체를 나눠서 운영, 관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 중 한 매니저 형님과 친분이 있었고, 호텔 내 비즈니스 센터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지, 관리를 위한 인원이 필요하던 찰나에 마침 나와 이야기가 되어 생각치도 못한 캐나다에서의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비즈니스 센터 내에 네트워크나 PC 유지 보수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손님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업무 강도라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고, 그냥 시간을 보낸다는 느낌이 강했다. 입구가 도시 중심부를 향하고 있어 유동인구가 상당했지만 항상 한산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매달 겨우 임대료 보다 조금 더 버는 수준이었던 때라 사장님이 통 큰 결정을 내렸다.
임대료 + 일정 금액을 매달 사장님이 가져갈테니 나머지는 매니저와 일을 하는 우리가 알아서 나눠가지는 대신 매출이 나오지 않더라도 정해진 금액은 매니저가 맞춰줘야 한다는 제안을 던진 것이다. 매니저 형님이 긴급하게 회의를 소집했고, 회의는 싱겁게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흔쾌히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날부터 비즈니스센터는 완전히 달라졌다.
노트북 수리, MP3 파일을 CD에 담아주는 것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해 주었다.
매번 귀찮다고 토너가 없다며 거절했던 출력도 더 이상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MP3파일을 CD에 담아주는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빌보드 차트 순위대로 매주 곡을 업데이트하여 준비를 하는 등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았고, 아이디어가 나오면 바로 실천에 옮겨졌다.
프린터 옆에는 예비 토너가, 냉장고에는 종류별 음료수가 꽉꽉 채워져 있었고, 화장실은 늘 깨끗해졌다.
단 한 달만에 매출이 거의 10배가 뛰었다. (당시 노트북 수리 공임이 상당히 높아 가능한 수치였다.)
우리도 놀랐다.
사장님이 요구했던 금액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였다.
그렇게 첫 달, 나는 당시 다니던 ESL(영어학원) 3개월치 학비를 벌 수 있었다. (나는 이 때 일주일에 100시간을 일했다.)
두번째 달, 나는 내가 사진 촬영을 위해 가보고 싶었던 쿠바 여행을 위한 비용을 한 번에 마련할 수 있었다.
세번째 달, 나는 일주일간 퀘벡, 몬트리올 등 주요 도시를 열차로 여유롭게 여행하고도 남을 정도의 돈을 벌 수 있었다.
네번째 달은 오지 않았다.
어마어마하게 높아진 매출과 석달 연속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를 본 사장님은 예전처럼 우리에겐 시급을 매니저형님에겐 월급을 주고 나머지는 본인이 가져가는 시스템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렇게 찾아 온 네번째 달은 처참했다.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객들의 불만은 고스란히 매출로 이어졌고, 무서운 속도로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
서너달이 지나자 결국 다시 예전처럼 겨우 임대료를 맞추는 지경으로 돌아갔고, 함께 일하던 인원 중 두명이 그만 두었다.
나는 이 경험을 잊지 못한다.
성과를 공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동기부여가 되는 것인지를 나는 몸으로 경험했다.
그 중에서도 금전적인 성과는 가장 큰 동기부여 중 하나인 것은 틀림없다는 사실을 느꼈다.
일을 하기 싫은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일한 것과는 관계없이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처절하게 느꼈다.
이것은 어쩌면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일하는 것보다 많이 받고 있는다고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고, 어떤 이는 일하는 것보다 적게 받고 있는 다고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일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경우엔 장기적으로 일한 것보다 많이 받고 있다고 느끼는 저성과자들만이 남는다는 것이다.
일이 힘들고 빡세지만 보상은 확실하다라는 평이 발전을 원하는 조직이 추구해야 하는 평가인 것이다.
월급쟁이들이 일하기 싫다는 것은 일을 해도 그에 따른 보상이 따르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일이 사람을 갉아먹고 있으나 그것을 보상해 줄 무언가가 없다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일을 멀리하게 된다.
덧.
아.. 일도 하지도 않으면서 원하는 것만 많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 맞다. 그런 사람도 있다.
남의 일을 죽어라 하면서 쥐꼬리 만한 보상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런 사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