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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Oct 22. 2020

오롯한 나만의 공간, 얼마면 되겠습니까?

어머~ 이 차는 꼭 사야 해! #2편

오롯한 나의 공간을 가지고 싶은 적이 없다면 아마 거짓말일 것이다.
만약 원할 때마다 원하는 곳으로 이동이 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면,
그 공간을 소유하는 비용으로 얼마를 지불할 수 있겠는가?


살면서 오롯이 나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방해도 받지 않고 감정을 풀어놓을 수 있는 장소를 소유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가족이라 할 지라도 공유할 수 없는 감정이 있고, 숨기고 싶은 감정이 있기 마련.


어쩌면 인간군상에 사이에 치여사는 우리에게 차는 감정을 풀어놓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공간일 수도 있다. 대중교통으로 잘 다니는데 차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던 후배가 차를 구입 후 나에게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차를 사니,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땐 노래방이 되고, 잠시 쉬고 싶을 때 휴게소도 되고, 여름에는 눈치 안보고 에어컨을 마음껏 쐴 수 있고, 겨울엔 창문 열고 찬바람 맞으면서 히터를 마음껏 쐴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성능에만 집착하던 나에게 이 말이 던져주는 울림은 컸다. 그에겐 이동수단으로써의 가치보다 공간으로서의 가치가 더 크게 와 닿았던 모양이다. 돌이켜보니 클래식 음악을 취미로 시작할 때 자동차는 나의 개인 리스닝 룸이나 다름이 없었다. 3년 내내 클래식 FM을 켜고 다녔다. 운전하는 동안에는 지루한 음악이라고 쉬이 넘길 수도 없어 참고 끝까지 들을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덕분에 음치이자 박치인 나의 귀를 3년 만에 뚫을 수 있었다.


어느 날 고속도로에서 들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은 처음으로 나에게 소름 돋는 클래식의 전율을 안겨주었고, 와인딩을 마치고 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고갯길에서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는 나를 쇼스타코비치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좋은 시스템보다 좋은 분위기가 리스닝에 더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한 때를 만들어 주는 대부분의 장소가 나에게는 자동차 안의 공간이었다.


다른 공간과 다르게 자동차의 공간은 작고 이동이 가능하다는 특성을 가진다. 작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향으로 채우는 것도 가능하고 내가 원하는 분위기로 꾸미기도 쉽다. 작아서 청소하기 쉽다는 것도 하나의 장점이다.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바다를 보고 싶을 때는 바다 조망을 가지는 공간으로, 산을 보고 싶을 때는 산 조망을 가지는 공간으로, 비 오는 날 센티멘탈해지고 싶다면 빗소리 들을 수 있는 카페로 변하기도 한다.


비 오는 날, 차 안은 더욱 포근하다. ©pixabay




이동수단으로써의 차의 효용을 논하면서 처음으로 꼽은 것이 정적인 공간이라는 것이 조금은 아이러니지만, 자동차를 소유함으로써 가장 와 닿는 것은 오롯한 나만의 공간을 가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누군가에겐 일터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침실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리스닝 룸이 될 수 있는 그 공간이 가지는 효용이야 말로 자동차를 가지면서 가질 수 있는 첫 번째 효용이라 말하고 싶다.


차의 본질이라 말할 수 있는 '달리는 재미'는 차를 소유함으로써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중 가장 큰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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