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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Nov 10. 2020

아빠도 달리고 싶었다.

밥벌이에 잊고 살았던 그 느낌을 받았던 것이리라.

빨간색으로 BRIDE라고 새겨진, 불편하게 생긴 의자와 눈 앞의 스티어링 휠.

멈춰서 있는 자동차 앞에 모여든 불혹을 바라보는 아저씨들의 심장은 주책맞게 쿵쾅거리고 있었다.


그깟 100만원 조금 넘는 버킷 시트 하나 산다고 밥 굶을 사람 하나 없을 만큼 열심히 살았건만, 살 수가 없었다. 왜냐는 물음엔 아빠라서 그렇다는 말 밖엔 할 수 없다. 학원비 100만원과 버켓 시트 100만원의 무게 차이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매일 상기하며 살아가는 아빠들이기 때문이다.


철없는 아빠 한 명이 덜컥 사고를 저질렀다. 10년도 넘은 포르테쿱(XK) 6단 수동을 어디선가 데려왔다. 내친김에 시트도 뜯어내고 중고로 어렵사리 구한 BRIDE 버킷시트도 달았다. 4점식 벨트까지.


2009년 출시된 포르테쿱은 어마어마한 사고율과 양카의 이미지로 악명을 떨쳤다. 덕분에 저렴한 중고가가 형성되어 있다.


라떼시절 달려보았던 아빠들이 조용했던 초록 간판의 커피집 주차장 모였다. 추억이 소환된 아빠들의 입에서 테인, 아이박, 가야바 등등 십수 년간 잊고 있었던 단어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무겁고 둔해진 엉덩이를 차례로 버켓 시트에 구겨 넣으며 탄성을 내뱉는 동안, 커피를 마시던 이들은 창밖의 이유모를 부산함을 신기한 듯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티뷰론에서 투스카니를 거쳐 제네시스 쿠페에 이르는 시간을 공유하며 달렸던 이들은 어느새 주름살과 흰머리가 생기기 시작하는 아저씨가 되어버렸다. 베타엔진부터 감마, 세타엔진의 압축비가 어떻고, 터빈업이 어떻고를 이야기하던 그들의 몸매와 자동차는 세월의 흐름을 타고 모두 비대하고 헐렁해졌다. 날렵했던 차는 모두 뚱뚱한 SUV나 미니밴으로 바뀌었고, 단단하게 조여졌던 서스펜션은 모두 물렁해졌다. 노면을 움켜잡고 달렸던 썸머 스포츠 타이어는 모두 올시즌 컴포트 타이어가 되었다. 코너를 향해 과감히 던져 넣는 대신 얌전히 롤링 없이 커브를 돌아야 했고, 풀 브레이킹은 언제 해봤는지 기억하지도 못했다. 변치 않은 건 마음뿐이었다.


300마력이 국민 마력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세상에서 10여 년 전의 포르테 쿱은 아무것도 아니어야 했다. 소형차에도 DCT가 달려 나오는 세상에 수동변속기는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한 때 Y영역의 속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아저씨 4명이 포르테쿱에 몸을 구겨 넣고 볼썽사나운 야간 드라이브를 나섰다. 예전처럼 코너에 머리를 던지지도 못했고, 로터가 벌겋게 달아오를 만큼 달리지 못했지만 그것으로 족했다. 클러치를 밟고 다운 쉬프트 할 때의 체결감 그리고 곧이어 터져 나오는 RPM이 레드존까지 치솟으며 토해내는 소리. 타이어의 비명소리와 몸으로 느껴지는 횡G의 느낌까지. 오래전 가슴속에 묻어두고 삶의 이불로 덮어두었던 그때 그 느낌을 되살리기엔 충분했다. 십수 년 전만큼 빠르지 않았지만 십수 년 전보다 황홀했다.


늦은 밤 뜨거운 커피를 앞에 두고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오롯이 차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아이의 학교 걱정, 집값 걱정, 장사 걱정 다 접어두고 오롯이 자동차만으로 대화가 채워져 갔다. 한 친구가 새삼 독백처럼 내뱉었다.

"나 사실 달리고 싶었나봐.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꺼내면 설레일까봐 묻어두고 있었나 봐."

설레일 여유를 가지는 것조차 죄책감을 느끼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 한 대 사서 재미있게 타고 다닌다고 세상 무너지지 않는다고 호기롭게 말을 하지만 아침의 냉정함이 현실의 무게감을 몰고 오는 내일이 오면 설렘을 묻어두고 다시 삶의 현장으로 나갈 것이다. 그래야만 하는 아빠들이니까. 오늘의 설렘은 다시 현실의 이불 밑에 숨겨두고 어쩌다 찾아오는 오늘 같은 날이 되면 한 번씩 꺼내서 찰나의 설렘을 느낀 후 다시 집어넣을 것이다. 언젠가 그 설렘을 일상으로 데려오겠다는 기약 없는 다짐을 하면서.


돌아오는 길 가슴이 뛰는 것은 단지 늦은 밤 들이킨 커피 때문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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