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山)ㅅ새처럼 날아갔구나!
-유리창1, 정지용
어느 순간인가부터 글이 삶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글을 쓰기 위해 필연적으로 삶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삶을 갉아먹다 보면, 나의 삶이 피폐해지는 순간과 마주칠 때가 있다.
타인의 삶을 갉아 나의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는 안된다.
어스름한 골방에 틀어박혀 글을 썼다. 길게도 썼다.
문득 글의 한 중간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가까운 이의 절망을 담을까 고민했었다.
망설였다는 그 마음에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당연히 해서는 안 될 일을 망설였다는 것에 글이 내 삶을 갉아먹는 것을 넘어서,
타인의 삶까지 갉아먹으려 한다는 것을 느꼈다.
죄책감에 글 쓰는 것을 멀리했다.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는 것. 그것도 자식을 잃는다는 것.
경험해서도 안되고, 차마 생각이 스친 것만으로도 가슴이 옥죄어오는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다.
슬픔에 빠져 밥 한 숟가락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한 채 꺽꺽거리던 그 처절하고 처연한 목메임을 생각할 일이다.
며칠 동안 써 내려온 글을 모두 지웠다.
시궁쥐 같은 내 모습을 글과 함께 지우고 싶었다.
글을 싸지르기 위해 그 어떤 부정한 행위조차 허겁지겁 해치우는 부끄러운 모습을 지우고 싶었다.
...
좀 쩝쩝거릴 것만 떨어지지 않으면 되겠지
아무리 더러운 똥오줌 진창바닥이라도
제대로 숨도 못 쉬는 쥐구멍 속에서도 모가지만
모가지만 붙어 있으면 되겠지 시궁쥐들은
배가 고프면 서로 잡아먹어도 되겠지
-대설주의보 중 , 최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