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처럼 굽이굽이 전해지는 마음
꽤 오랜 시간 진심은 말로 표현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아무리 가득해도 말하지 않으면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말하지 않아도 분명하게 느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 전에 엄마는 머리를 하며 미용실 원장님과 오은영 박사님이 출연하는 방송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했다. 두 분 다 과거에 아이들을 잘못 키우지는 않았나 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이 프로그램을 본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엄마는 원장님께 “애들이 어렸을 때 사랑한다는 표현을 많이 못해줘서 지금도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엄마에게 아니라고 말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따로 해주지 않았어도 엄마의 모든 행동에서 그 사랑을 느꼈으니까, 엄마의 모든 행동이 사랑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물론 훌쩍 커버린 지금도 느낀다. 아침에 운동하고 땀이 밴 옷을 내가 빨아 널 수 있게 건조대에 미리 마련해두신 옷걸이, 에어컨이 꺼진 후 덥지 말라고 열어주신 문, 힘내라고 책상 위에 올려두신 에너지 음료…. 엄마는 몰랐겠지만 엄마는 늘 사랑의 단서를 잔뜩 흘리고 있었다.
엄마는 우리 반려견들이 말을 하면 참 좋겠다고 하셨다. 비가 와서 실외배변을 하지 못했는데 참느라 힘들지는 않았는지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잠시 아이들과 내가 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상상해보았다. 웃겼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주어, 동사, 목적어가 섞인 구체적인 말을 나누진 못해도 우리는 더 중요한 말을 서로에게 건네고 있었다.
나를 보는 눈빛이, 세차게 흔드는 꼬리가, 내게 내어주는 다정한 품이 한결같이 힘차게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더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충분할 만큼.
컵을 씻다가 싱크대 위에 놓인 엄마의 달력을 보았다. 매달 17일에 ‘소라약’이라는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 아이들에게 한 달에 한 번 내외부 구충제를 먹이는데 그 날짜를 잊지 않으려고 엄마는 매번 달력에 표시해오고 계신 거였다. 아이들을 향한 엄마의 진한 사랑이 느껴졌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랑은 먼지처럼 어디서든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