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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하는사람 Aug 01. 2024

요가 강사가 된 이유 4

사회 부적응자의 사회 적응기

다른 회사 면접을 하나 봤다. 선릉역 근처에 위치한 스타트업이었는데, 여러 회사가 사무실을 같이 사용하는 공유 오피스에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건물 통창으로 선정릉이 바로 보이고 높은 층고 아래 칸막이도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시골 쥐가 된 기분으로 공용 미팅룸에 들어갔다.

자신을 콘텐츠 팀 소속이라고 밝힌 두 분(아직까지도 친구로 지내고 있다)과 면접을 봤는데, 인생을 통틀어 지금까지의 어떠한 면접보다 편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눴다. 두 분은 자신들도 면접이라는 걸 처음 해보는 거라면서 편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덜덜 떨면서, 나의 부족함에 숨어들어 가면서, 무슨 질문을 해도 위축되어 있던 기존의 내 모습과 다르게, 소모임에라도 나간 것처럼 면접과 상관없는 잡다한 얘기도 나누며 편하게 오랜 시간을 떠들었다. 그들의 편안한 태도와 진솔한 말투가 나의 긴장을 앗아갔다. 간단한 편집·스크립트 작성 테스트를 끝내고서 점심시간이라며 회사 앞 카레 집에서 함께 밥까지 먹고 갔다. 카레는 맛없었다. 그래도 기분이 고양된 상태로 집까지 돌아갔고, 꼭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합격 연락을 받았고, 나는 그제야 사람답게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조롱과 멸시를 담고 있는 느낌이 들지만, 그때만 해도 그 단어에 신선하고 세련된 무언가가 있었다. 합격 연락을 받자마자 트레킹을 위해 일주일간의 야쿠시마 여행을 떠났다. 당시에는 내 인생의 마지막 긴 휴가라고 생각했다. 이 여행, 이 걸음을 마지막으로 부적응자의 삶에서 벗어나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거듭나보겠다는 이상한 각오도 있었다. 야쿠시마의 자연 속에서 걸으며, 지금 이렇게 요가 강사를 하고 있을 미래는 전혀 생각치 못했다.


그렇게 제대로 된 첫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 콘텐츠 팀 두 분에게 느꼈던 그대로 회사는 내가 바라마지 않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수평적이고, 자율적이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일에 내 인생을 바쳐야 하지 않았다. 사업 모델도 확정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새롭게 공부하고 도전하고 시험할 것들이 넘쳐났다.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일은 내가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는 분야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따박따박 통장에 월급이 쌓였다. 그렇게 한참을 안정 속에 근무하다 보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불안 위에 나를 올려두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보수 볼에 올라간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흔들리곤 했다. 경력 한 줄도 못 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썼던 지난날들도 모두 그 불안을 무마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회사원들을 바보라고 생각했다. 남을 위해 매일매일을 기계처럼 반복하는 삶이라고, 꿈도 없는 그 인생이 비참하다고도 생각했다. 내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조소했다. 그 단조로운 삶에는 아무런 희망도 즐거움도 충만함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혹은 무엇인가에 종속된 상태에서, 억압 아래에서 사람은 절대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안정된 삶을 포기하는 대신에 얻을 수 있는 숨겨진 퀘스트 보상처럼, 행복은 꿈을 좇는 자의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회사원이 되고 보니 행복은 게임처럼 무엇을 포기했다고, 무엇을 선택했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의 노동 속에서도 충만함은 충분히 발견되었고, 내 시간이 내 것만이 아닌 것은 오히려 자유롭게 느껴졌다. 모든 시간을 자신에게만 쏟는 건 때때로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해가 아직 지지 않은 때에 퇴근을 하던 어느 날에, 아, 이래서 다들 가정을 꾸리는구나, 라고 생각해 버리기도 했다. 그제야 거울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코로나가 창궐했다. 처음에는 마스크를 안 썼다. 쓰라고~~ 쓰라고~~ 엄마가 잔소리를 해도 듣지 않았다. 사스와 메르스, 에볼라 등등처럼 그러다가 말겠지 싶었다. 그러나 점점 상황은 심각해지고, 내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해 왔다. 점심시간에 다니던 헬스장이 폐쇄된 것이다. 뭐, 크게 상관은 없었다. 하루에 단백질 몇십 그램을 정확히 챙겨 먹고, 운동을 못 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고, 사람 손보다 덤벨을 더 많이 잡는 그런 삶은 아니었다. 그냥 헬스장이 닫혔듯이 다른 운동 센터들도 모두 장기적으로, 일시적으로 닫힐 텐데 어느 곳에서도 운동을 못 하게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아쉬울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에 “Down dog”이라는 앱에서 메일이 하나 왔다. 코로나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3개월 (6개월이었을 수도 있다) 동안 유료 기능을 무료로 오픈한다는 내용이었다. 메일링 리스트에 왜 내 계정이 들어가 있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어쨌든 앱을 받아서 방구석에서 혼자 요가라는 것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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