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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여행자 Jul 15. 2021

나는 절대로 반지를 훔치지 않았다.

범인은 누구일까?


 내가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나는 그때 조용하고 말수도 

학생이었다. 겉으로 말을 할라치면 속에 담고 있는 얘

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올 것 같아서 대개 필요한 얘기만

하는, 그런 아이였다.


 재미도 없고 잘 웃지도 않는 내게 신기하게도  친구들

먼저 다가와주곤 했다. 주로 얘기를 들어주는 내가 해 서였을까?




 그들 중에 나에게 적극적으로 호기심을 표현하며 다가온 친구 H 있었다.

 '안녕 내 이름은 H야. 나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환하게 웃으며 호감을 표시하는 그녀가 멋있어 보였다.

그녀는 키가 무려 176이나 되고 서구적인 마스크와 체형을 가진 친구였다. 시원시원한 눈매와 당당한 자신감으로 빛나는 예쁜 아이였다. 그 아이는 나와 달리 유복했다.

 아빠가 사업을 하셔서 미국에 머물다가 두어 달에 한 번씩 한국으로 들어온다고 했고 그때마다 엄청난 용돈을 주곤 

셨단다.


 외동딸인 H는 귀한 공주처럼 아빠, 엄마, 외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나는 누가 봐도 사랑받은 티가 흐르그녀가 내심 부러웠고 내 처지를 돌아보 위축되는 것이었다.


 H에게는 미국에 사는 부자 고모가 있었는데 해마다 넘치

는 용돈과 선물, 귀금속 등을 보내주곤 하셨고 들었다.

 내가 집에 놀러 갈 때면 H는 가끔 자신이 받은 선물이나 보석을 자랑하듯 보여주었지만 나는 관심이 없었다. 내 영 혼은 가정환경의 어두움에 잠식당했고 언제나 그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했었기 때문에.




 나는 H가 나를 좋아하는 것이 이상했지만 그녀가 날 좋아

해준다는 사실이 기뻤으므로 진심을 다하려고 했었다.

 H의 집에 가면 H와 붕어빵같이 닮은 그녀의 엄마가 내게 간식을 챙겨주곤 하셨다. 아주머니는 H가 외동딸로 오냐오냐 떠받들어 키워져서 친구가 없다며 앞으로도 사이좋은 친구로 지내 달라고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처음으로 정을 가장 이 주었던 친구와 그녀의 엄마였다.


 어느 날 J라는 친구가 전학을 왔다. J는 얌전했지만 순진해 보이는 미소와 따뜻한 말투를 사용하는 아이였다. 밝고 부

러우며 잘 웃는 J도 내 마음에 들어왔다. 어느새 우리는 세상 둘도 없는 삼총사가 되어 우리만의 우정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들만 있으면 더 이상 다른 친구가 필요치 않았 다.




그날 아마 연말이었던 것으로 기억다.

 "우리 연말에 셋이 만나서 놀고 우리 집에서 다 같이 자는

 어때?"

 H의 제안에 우리 신이 났고 드디어 약속한 날이 되었다.


그날 만나기로 한 레스토랑에서 셋이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했다. 잠시 앉아있자, 주문한 파스타가 나왔는데 H의 표정

이 떨떠름했다.


 " 봐라. 잘 익히지도 않은걸 내왔네. 허어. 참나. "

 H는 뭔가 결심한 듯 손을 들어 사장님을 불렀다.

그러고는 그녀의 요청에 등장한 사장님을 향해 손가락으로 면 가락을 늘려 보여주며 당당하게 말했다.


 " 이거 보이시죠? 면이 잘 익지도 않은 데다가 군데군데

말라 붙기까지 했어요. 이거 어떻게 해주실래요?"

 예의에 어긋나지는 않지만 거침없이 말하는 자신감 넘치

는 그녀가 대단해 보였다.


 우리 셋은 다시 나온 피스타를 만족스럽게 먹으며 수다 삼 매경으로 빠져들었다. H는 미국의 부자 고모에게 받은

반지와 목걸이 등 자신의 비싼 액세서리를 자랑했고 종종 있는 일이었기에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사실은 아직도 그날

H가 자랑했다던 반지를 본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그때는 그 정도로 액세서리나 귀금속류에 관심이 없었고 어느 정도의 값어치가 있는지도 몰랐연히 그런 걸 

따질 처지도 아니었다.



 스파게티를 다 먹은 우리는 H의 집으로 향했고 같이 살던

H의 외할머니는 교회를 가신 후여서 H의 엄마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우리 셋은 H의 아담하면서도 잘 꾸며진 예쁜

방을 구경했다. 교한 문양이 달린 하얀 침대와 책상, H가

아끼는 인형과 장식품들....  오래된 책이 보물인 나와는 차

원이 다른 물건들로 채워진 H의 멋진 방....

 부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느 것 하나도 탐낸 적은 없었다.

좋아하는 친구였지만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온 H는 나와

색깔이 다른 아이였다. 그뿐이었다.


 " 여행아, A야 과일이랑 과자 먹으며 놀아. 셋이 사이좋게

지내니까 아줌마 기분이 좋다. 자주들 놀러 와. 우리 H가

외동이라 외로움을 많이 타. "

 

H의 엄마는 우리 간식을 챙겨주시고는 편하게 놀라며

다른 방으로 피해 주셨다. 정말 즐거운 한때였다.


 우리는 연신 키득거리기도 하고 도란도란 재미있는 이야기

를 나누었다. 밤 12시나 되어 잠들었을까. 언제까지나

우리 셋의 우정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기분 좋게 일어나 아침을 먹고 다시 연말을

즐기려는데 H의 표정이 조금 심각해 보였다.

 " J야, 여행아 너네 혹시 내 방에 있던 금반지 못 봤어?"


" 무슨 금반지?"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되물었다.


" 내가 어제 파스타 가게에서 보여준 반지 말이야. 고모가

국에서 보내줬다고 목걸이랑 같이 보여줬었잖아. 기억

나?"

 H가 차근히 설명했지만 나는 반지를 봤다는 사실조차 기억에 없었다. 그때 나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던 였을

까. 이상했다.


 분명히 아침까지는 평온한 기분에 젖어있었는데 H의 귀한 반지가 사라졌다니, 반지가 어디로 어떻게 사라졌다는 거

지? 가만있다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친구

#반지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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