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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여행자 Jul 17. 2021

일요일에 반지 갖다 놔주라.

범인은 누구일까? 02


 H의 반지는 어디로 간 걸까? 우리 중 누군가는 H에게 반

어젯밤까지 집에 있었던 게 확실하냐고 물었다.


 " 그거 비싼 반지야. 고모가 나 생각해서 특별히 주문제작

한 반지였는데 내가 제대로 안 챙겼을 리 없지. 분명히 어제

밤까지 내 방 서랍에 뒀었어. "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지

만 팩트는, H는 분명히 집으로 금반지를 가져왔다고 주장

했다)




 정말로 못 봤냐며 재차 묻는 H에게 나는 못 봤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난 반지 빼기도 못 봤는데....

  J도 반지의 행방을 모르기는 마찬 가지였 특유의 차분

한 목소리로 말했다.

 "H야 시 한번 잘 찾아봐. 네가 다른 데다 두고 착각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새 나왔는지, H의 방 너머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H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며

우리에게 말했다.

 " 내가 보니까 너희 둘 중에 하나야. 우리 때도 친구 물건

   가져가기도 하고 그랬어. 누군지는 몰라도

네 둘밖에 그런 장난칠 사람 없어. 얼른 갖다 놔. "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씀하시던 H의 어머니였다. 가슴에

가시가 박히는 듯한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 올렸던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졌다. 실망스러웠다.




 우리 둘 중에 하나가 범인이라고? 딸인 H의 말이 100퍼

센트 확실하다고 믿어서? 아니면 우리 둘이 의심된다는

이유 때문에? 그래서 마치 우릴 지켜본 듯이 단정을 짓는 것일까? 이건 아니었다. 세상에 누가 친구의 아끼는

물건을 장난으로 훔친단 말인가. 그것도 비싼 귀금속을 가

져간 행위를 단순히 장난으로 넘길 수 있나?


 나는 어릴 때 엄마로부터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이

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단다. 다시는 훔치

지 못하게 벽돌로 손을 내려쳐야 한다고 말하던 엄마 때문

인지 나는 남의 물건을 부러워 한적은 많았어도 감히 훔칠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물건을 도둑맞은 친구가 슬퍼할 거

라는 이유보다는 엄마의 협박에 가까운 이야기가 무서웠기 때문이었을까.


 무엇보다 앞선 글에 적었듯이 내가 고등학교를 마칠 때 

음에는 우리 집의 경제 사정에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

다. 그래서 이전처럼 참고서 하나 산다고 욕을 먹는 일은 다. H의 반지 같은 보석류를 살 수 있다고 해도 차라리 책 수십 권을 구입할 나였.

 금반지를 팔아서 돈을 벌 생각에 친구의 물건에 손을 댈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H의 물건들에 슬쩍슬쩍 손을 댔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금반지가 중요하겠지만 세상에는 금반지 

다 책을 더 귀중히 여 나 같은 사람도 있다.




 H 어머니의 언을 듣고 나는 멍한 기분이 들었었다.

기분이 불쾌해서 '나는 반지를 가져가지 않았어. J야 너도

그렇지?' 하고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 H가 읊어댄 뒷 이야기가 가관이었다.


 " 나는 사실 엄마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하진 않아. 난 실수

  생각해. 근데 너희 둘 중에 하나가 가져갔다는 생각이 들어. 일요일에 우리 집 비거든? 그날은 할머니랑 엄마랑  같이 성당 가는 날이야. 며칠 남았으니까 그 때까

지 잘 생각해보고 문 앞에다가 갖다 놔주라. "

 

  기분이 이상하고 불쾌했지만 H의 집에 기분 좋게 놀러 가

싸우기는 싫었다.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모를 반지의 도둑질 용의자가 된

기분. 하.... 만져보기라도 했다면 덜 억울했을까?


 "그러고 나면? 만약에 반지를 갖다 놓으면 우리들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건데?

 실망스러운 감정을 애써 누르고 물어본 내게 H는 쿨하게

대답했다.

"다시 전처럼 친구로 지내는 거지"

"우리가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누가 진짜

범인인지도 모르는 채로?"


 나는 당황스러움을 누르고 H에게 질문을 했지만 어떤 이

유에서인지 J는 별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더니 내게

말했다.

 "그런데 여행아, 우리가 H마음도 이해를 해줘야 해. 반지

가 없어졌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어."

 

 차분한 어조로 말하는 J가 낯설었다. 분명 지금 상황은

우리 둘 중 하나가 반지를 가져갔다고 의심받는 상황인데. 그것도 아무 증거 없이 밤에 같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반지를 가져간 게 확실시되다니... 그런데도 화가 전혀 안

난 다고?

 J는 어쩐지 평소보다도 너그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는 반지 도둑 오해를 받는 상황보다 H의 가치관에 당혹

감을 느꼈고 불쑥 올라오는 내 가치관이 혼란스러울 지경

이었다. 리고 도대체 훔친 반지를 가져다 놓으면 그걸

처리한 돈을 나눠갖자는 생각은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건지.

 자신의 소중한 물건을 훔친 사람과 예전처럼 똑같이 잘

지낼 수 있다고 말하는 H의 사고방식이 멋진 건지, 그릇된

건지 판단할 수 없었다.

 내 수중에 돈이 있다면 반지를 사서라도 H에게 쥐어주고

싶었다. 이제와 말이지만 한편으론 같은 반지를 네며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자 네가 그토록 원하던 반지야. 이제 만족하니?

난 훔치지 않았으니까 완벽하게 똑같은 반지를 주지는 못

해. 없어진 거랑 똑같은 반지니까 네가 잃어버린 반지였던 아니던 상관없겠지. 그럼 우리 다시 친구로 잘 지낼 수 있

 거니, 예전하고 똑같이?'




 H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어서 말다.

 "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할게. 만약 반지를 갔다 놓으면

둘 중에 누가 반지를 가져갔었는지 밝히지 않을게. 그리고

그 반지 팔아서 우리 셋이서 공평하게 나눠 자.

그거 지금 팔면 100만 원은 받을 거야. 각자 30만 원씩 갖

 거지. 야, 30이면 우리한테 큰돈이잖아. 누가 가져다 놓

던 지 평생 밝혀내지 않고 묻을 거야, 약속할게. "


 이건 또 무슨 스컹크한테 방귀 폭탄 맞는 소리인가. 반지

를 훔쳐간 도둑으로 오해받는 것만 해도 억울한데 가져다

놓으면 평생 누가 범인인지 덮어 주겠다고 하는 거다.




 돈 30만 원에 훔치지도 않은 반지를 만들어서 갖다 놓기

도 하라는 건가? 그것보다, 내가 왜 하지도 않은 도둑질

명을 쓰고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며 H를 계속 만나야 하는

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친구인지 란스러웠다.

 게다가 앞으로 H의 엄마, 할머니까지 나와 J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볼 것 아닌가....


 소중한 반지를 찾고 싶은 H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건

니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억울한 마음이 훨씬 더 컸다.

 솔직히 때는, 내 앞에 벌어진 상황 어이가 없었다.

  

 나와 J를 반지 도둑으로 확신하는 H와 그녀의 엄마에게

제대로 반박할 지혜가 없는 내가 답답했다. 속에서 뭔가가 울컥하며 올라왔다. 자꾸만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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