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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여행자 Jul 20. 2021

용의자는 두 명이 아닌기라.

범인은 누구일까? 03

 

& 기억에 오류가 있었네요. H와의 첫 만남은 고등학교 때였지만 반지 사건이 일어난 때는 그로부터 2-3년 뒤인

20살 이후입니다.




 내가 '난 반지를 가져가지 않았다. 친구의 귀중품장난으로 훔치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아무리

항변해도 이미 반지 도둑 용의자로 의심받는다는 사실은 변

하지 않는다. 오해는 의심을, 의심은 진실을 외면한 채 확신 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사람들은 진실을 원한다면서 진실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다. 자신들이 원하는 걸 보고 싶어 하는 게 나를 포함한 인 들의 속성일 테니까.




 H의 집에 다녀온 뒤로 몸에 열이 나고 쑤셔서 일어날 수

없었다. 감기도 아니었는데 몸이 쳐지고 아팠다. 그런 내게

엄마는 속병이 난 거라고 했다. 나는 억울해서 울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독하기로 소문난 나였는데 반지를 가져

도둑이 된 억울함에 계속 눈물이 흘렀다.

 

 "엄마, 난 정말 아니야. 초등학교 때 엄마가 남의 물건 훔치

는 사람은 벽돌로 손을 내리쳐서 그런 짓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었잖아. 난 H 반지를 본 적도 없어. 그깟 반지 같은 거에

난 관심 없다고.... "

 나는 울다가 지쳐 방에서 까무룩 잠들었던 것 같다.


 엄마는 그런 딸의 모습에 속상했는지 H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큰 소리를 내기에 깨어나 그대로 누워있었고

대화 내용을 귀 기울여 들었다.

H엄마, 스무 살이 넘어 미성년자 딱지만 뗏을 뿐이지 아직 미숙한 애들이에요.
(중략)
우리 딸은 액세서리도 관심 없고 남의 걸 훔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애예요. 아니, 애들을 의심하는 말씀을 하셨다는데 여행이가 억울해서 병이 났어요. 애가 얼마 나 속상했으면 저러겠어요? 그렇게 의심하시는 말씀을
하신 건 H엄마가 잘못하신 것 같아요......

 엄마는 감정에 호소하듯 H의 엄마에게 '내 딸 여행이는 반

지를 본 적도 없다고 한다. 애가 억울해서 병이 나 드러누웠

다. 계속 울기만 한다'며 H엄마가 했던 언사를 질책하 다.

 전화를 끊고 방으로 들어온 엄마가 했던 말의 일부가 아직

생생하다.




 " H 엄마는 둘 중에 한 명이 가져간 거 같으니 갖다 놓으라

 그 말 딱 한마디밖에 안 했대. . 그걸 변명이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다. 미성년딱지만 뗏을 뿐이지 아직

어른이 아닌 애들한테 억울한 누명 씌우면 되느냐고. 엄마

는 네가 도둑질할 가 아니라고 믿어.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얼른 밥이나 먹어."


 며칠 지나서 알아낸 사실이 있었다. 반지가 없어진 시간을

기점으로 그 집에는 우리 셋만 있었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가 놀던 날, 늦은 밤 H의 할머니가 주무시고 아침 일찍

나가셨고 H의 남자 친구도 우리가 자는 사이에 잠시 들렀다 가 갔다고 한다. 나와 H와 J는 넓은 안방에서 잤고 반지가

없어진 방은 H의 방이었기에 저녁에 우리가 수다 삼매경에 빠진 사이, H의 방에 잠시 어가거나 새벽에서 아침 사이를

노려야 반지를 훔칠 수 있었다. 나와 J는 늦잠을 잤고 일 나보니 H가 이미 반지의 행방을 찾고 있는 상황이었다.




 H로부터 반지를 찾았다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 당시 

외할아버지 내외가 우리 집 바로 옆에 사셨기에 말동무나

해 드리려고 들렀다.

 할아버지는 평소와 다름없이 신문을 보고 계셨는데 내가

들어서자 앉으라고 하시고 말씀을 꺼내셨다.

 "니 에미한테 들었는데 반지를 훔친 범인으로 의심을 받는

다꼬?"

 "네, 할아버지. 저는 정말 억울해요. 제가 왜 친한 친구의 반

지를 몰래 훔치겠어요?"

 "네가 아닐걸 이 할아부지는 믿는다. 이런 경우에는 고마 경

찰에 신고하는 게 빠른기라. 그러면 마 누가 그랬는지 밝혀 질게. "

 그 뒤로 내가 또 무슨 말씀을 드렸는지 기억이 흐릿하지만

할아버지는 엄마와는 다른 말씀을 해주셨다.

형사가 사람 눈을 보면 말이다, 딱 이놈이 범인이구나
하는 직감이 오는기라. 용의자 선상에 니랑 그 J라는 친구만 오르는 게 아니란 말이대이. 그 머시기(H)도 용의자 선상에 오르고 그 집에 있었던 그아의 엄마나 할머니, 그 아의 남자 친구란 놈도 범인이 될 있는 것이제. 옛말에 도둑은 앞에서 잡는 거지 뒤에서 잡는 거 아니라켔다.
형사한테 딱 맡겨 노믄 범인 잡는 거는 시간문제 인기라.
혹시 갸(H)가 돈이 필요해가 반지를 팔아묵어 놓고
쇼하는지도 모른대이.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할아버지는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며 H가 평소에

세서리를 좋아했다면 그 값어치도 잘 알았을 것이라고 말

씀 하셨다. 그러니 귀금속 가게에도 자주 들락거리며 그쪽

생리를 파악했고 돈이 필요하니 반지를 팔았을지도 모른 다고. 선물로 준 반지를 팔았으니 쇼가 필요해서 자작극을

벌였을지도 모른다는 할아버지의 주장이 그럴싸하긴 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쇼를 하는 아이를

친구로 두고 믿었다니. 정말 무서운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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