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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밍 Aug 14. 2021

여기는 뭐하는 곳이에요?

-한국어교실의 '교실'에 대한 단상


"거기에서 수업하시면 될 거예요, 거의 아무도 쓰지 않거든요. "

도서관 구석의 큰 방, 이라고 담당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2층 교무실에 들러 도서관 열쇠를 찾아들고 5층까지 헥헥 거리며 올라간다. 매번 뻑뻑해서 애를 먹는 도서관 열쇠로 겨우 문을 열고 책이 가득한 도서관 중앙을 지나 저 구석의 시청각실 큰 문을 연다. 더위에 숨이 턱! 막힌다. 한낮의 더위가 갇혀 아마도 빠져나가지 못한 탓일 것이다. 창문을 먼저 열고 에어컨을 켠다. 더운 열기가 조금씩 빠져나가면서 차가운 기운이 이 큰 교실에 채워지고 있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교실을 시원하게 해 놓고 싶어 30분 일찍 와서 수업 준비를 한다. 땀도 좀 닦고 단어카드 정리도 하고 오늘 수업을 생각하다 보면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오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가까워진다.  


도서관 안에 있는 시청각실. 이곳이 아이들과 내가 공부하는 교실이다. 책을 읽으러 도서관에 온 아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곳이었다. 심지어 굳게 닫힌 문 앞에는 '출입금지' 푯말까지 걸려있으니, 이 경고를 무시하고 들어가는 쟤네는 뭐지?라는 주변 눈빛은 너무나 강렬하다. 책을 읽던 한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묻는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이에요?"

물으면서도 고개를 미어캣처럼 내밀고 안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응, 한국어가 부족한 친구들이 한국어를 공부하는 곳이야."

"아~, 젼! 공부 잘해!"

젼과 같은 반 친구인지 젼을 발견하고는 공부 잘하라는 덕담까지 남기고 다시 쪼르르 제자리로 간다. 


첫 수업 하는 날은 과학실로 안내받았다. 과학실은 정말이지 너무 커서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모두 1학년이라 큰 교실에 앉아있으니 더욱 작아 보였고, 각 책상마다 설치된 개인 칸막이는 서로 서먹한 아이들을 더욱 어색하게 만들었다. 과학실에 진열된 여러 기구들이나 세면대까지 아이들이 칠판에 집중하기에는 칠판 주변이 너무 어지러웠다. 몇 번 더 수업을 하고 어떤 이유인지 담당 선생님은 다른 교실을 찾아보겠다고 하셨고(아마도 방과 후 과학 수업과 시간이 겹친 것 같다), 그 교실이 바로 도서관의 구석진 방, 여기였다. 

 

"저... 실례지만 여기는 무슨 수업을 하는 곳이에요?"

이번엔 아이가 아니다. 도서관에서 봉사하고 계신 이 학교 학부모님이다. 

"아, 네 어머님. 한국어가 부족한 친구들에게 한국어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월, 화, 금 방과 후에 수업합니다."

"아~, 여기에서 한 번도 뭘 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요."

앞으로도 이런 질문을 꽤 받을 것 같아 문 앞에 <한국어 교실> 임을 알리는 표지를 붙여두었다. 


  과학실보다는 나았지만, 이곳도 아이들이 집중하기에는 역시 크다! 하지만, 개인 칸막이 없이 모둠으로 활동할 수 있는 큰 테이블이 있었고, 칠판이 없다고 요청드리자 담당 선생님께서 바로 가져다주셨다. 시청각실답게 모둠 테이블 뒤쪽으로는 네다섯 칸 정도의 계단식 스탠드가 있었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이 스탠드에 올라가 놀기를 좋아했다. 


"여기는 원래 뭐 하는 곳이에요?" 

이번엔 한국어 수업을 받으러 온 학생이다. 첫 수업에 오던 날, 자리에 앉기 전에 교실을 둘러보며 이렇게 물었다. 생각해보니 이 질문을 받은 것이 올해 처음이 아니었구나. 매번 학교에서 수업할 때마다 이 질문을 받고 있음을 이제야 인지했다. 

작년에 강의를 했던 ㅇ초등학교에서는 '역사실'로 안내받았다. 이 학교는 역사가 100년이 넘었기 때문에 역사실을 만들어 그동안의 자랑거리들을 전시해 놓은 것 같았다. 1920년 즈음의 초기 학교 모습, 그 후의 연혁들을 정리해 놓은 벽면, 운동부가 생기고 그 운동부가 수상했던 빛바랜 트로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쪽에는 옛날 물건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도자기, 짚신, 키(세상에! 이걸 여기서 다시 볼 줄이야!), 짚으로 만든 여치집 까지! 있었다. 관리가 안되어 약간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이런 건 왜 여기에...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던 것 같다. 이 옛날 물건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올 거라고 예상치 못했었다. 

아이들이 'ㅈ'을 배울 때, '지게'라는 낱말이 나왔다. '지게'가 무엇인지 아는 아이들이 없었고, 뭐라고 설명하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옛날 물건들 한쪽에 놓여있던 지게 모형에 생각이 미쳤다. "얘들아~, 모두 일어나 봐! 저기에 진짜 '지게'가 있어!" 아이들은 눈이 커져서 요리조리 구경하며 저쪽에 한 팔을 넣고, 이렇게 지고 가는 거구나~하면서 자기들끼리 재잘거렸다. 역시, 아이들에겐 시각적인 효과만큼 큰 것이 없다.  


  도서관의 구석진 시청각실 스탠드는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에게 놀이터가 되었다. 아이들이 '나비야' 노래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몇 번을 같이 부르며 스탠드 한 계단씩 나비처럼 훨훨 날아(걸어) 다녔다. 단어를 익힐 때는 단어카드를 한 명씩 맞추고 뒤로 가서 앉아 다시 차례를 기다리는 게임을 자주 했는데, 그냥 테이블 자리에 앉아서 할 때보다 이 스탠드에 오종종 모여 앉아서 활동하면 아이들은 집중도 더 잘하고 더 좋아했다. 아이들은 아마도 구석진 곳, 높은 곳, 올라갈 수 있는 곳 이런 곳들을 좋아하기 때문일까. 


  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교실에 대해 불만을 갖지는 않는다. 안내되는 교실이 가장 최선임을 알기 때문이다. 신도시의 초등학교들은 대부분 과밀이라 방과 후 수업을 할 수 있는 교실을 따로 마련하기 어려운 듯하다. 우리 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도 처음에는 방과 후 교실이 있었지만, 학생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증축을 해도 방과 후 수업 교실을 따로 마련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각 학교마다 달라지는 개성이 있는 한국어 교실.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의 쓸모를 찾아. 가끔은 아이들이 가르쳐주기도 한다. "선생님~, 우리 이거 이렇게 해봐요." 하면서.  


  길면 1년, 짧으면 3개월 나와 함께 한국어를 배우며 자라나는 아이들. 아이들과 함께하는 기간 동안, 어디가 되었든 아이들이 한국어 교실에 오는 것을 좋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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