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유지했어야 했다
나딘은 언제나 즐거운 명랑소녀이다. 첫 수업을 할 때 자기소개를 시켰는데, 이렇게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나딘입니다. 나 엄마 러시아 사람, 나 아빠 아랍, 나 러시아, 아랍, 잉글리시, 코리안 4개." 손가락 네 개를 펴서 나를 바라본다. 아마도 본인이 4개 국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인 것 같았다. 나는 소개를 잘해주었다는 뜻으로 엄지를 세워 칭찬해주었다. 사실 4개 국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능력보다 나딘에게는 더 훌륭한 능력이 있다. 무엇이든 한국어로 말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4개 국어나 하는데, 그중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려고 하는 의지는 참으로 칭찬받을만하다. 한국어 교실에서는 한국어를 써요, 라는 나름의 규칙이 있긴 했지만.
나딘이 즐겨하는 표현은 "~싶다구" 이다.
"선생님, 화장실 싶다구.", "색칠 싶다구."
"나딘, 이렇게 말해요. 싶.어.요. 화장실 가고 싶어요. 색칠하고 싶어요."
이렇게 가르쳐 주기를 몇 차례, 나딘이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선생님, 화장실 가고 싶어요."라고 정확히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꼭 껴안아 주고 싶은 마음을 겨우 숨기고 "나딘, 정말 잘했어요! 네, 다녀와요."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화장실을 다녀오고서는 다시,
"선생님, 물 싶다구."
하하하핫.
사실 아이들은 동작을 나타내는 말을 배우지 않았다. 물을 마시다, 색종이를 오리다, 그림을 그리다 등등.
"나딘, 이렇게 말해요. 물, 마시고, 싶어요." 아마도 앞으로 몇 차례 이렇게 더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나딘이 물을 마실 동안, 나도 잠시 고개를 돌리고 마스크를 내리고 물을 마셨다. 갑자기 나랑 마주친 나딘의 눈이 반짝 빛난다.
푸하하하하하. 아이들 모두가 육성으로 빵 터졌다. 그런 말은 또 어쩜 그리 잘 알아듣는지. 마스크 속 신비주의를 더 유지했어야 했나.
그 후로도 내가 쉬는 쉬간에 마스크를 잠시 내리고 물을 마실 때마다 나딘은 눈을 가늘게 뜨고 씩 웃으며
"선생님, 안 예뻐요."라고 놀리곤 했다.
나딘, 너는 마스크 벗은 모습이 더 예뻐. 다들 마스크 없는 예쁜 얼굴을 보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