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난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수 있으면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가까이 있으면 불편했다.
혹시라도 다칠까봐 걱정스럽고
혹시라도 소리지를까봐 눈치를 봤고
또 혹시라도 내 목걸이를 잡아 당길까봐 노심초사했다.
20대 후반이 되어서는 모임에 가면 아이들 한 둘은 늘 대동되었는데,
나는 최대한 아이들과 먼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끔 환하게 웃으며 "이모" 하는 친구 애들을 보면
그래, 예뻤다. 그렇지만 예쁜거랑 좋은 거랑은 다른 문제였다.
아이그 이쁘다! 하면서 손바닥을 까딱까딱 흔들며 안녕 정도는 무난했지만,
아이를 안아준다거나 대 다리 위에 앉혀놓고 데리고 노는 일은
나에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 만큼이나 아이들과 친하지 못한 남편을 만났다.
결혼 후 2세 계획은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웠는데,
아뿔싸! 과연 우리가 "우리 애들"과 친해질수 있을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자기 새끼는 다른거라고, 태어나자마자 내 핏줄같은 뭉클한 무언가가 느껴진다는
선배부모들의 말에 기대감을 키우며
그렇게 ... 남의 아이 한번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한 채
우리의 첫아이를 만났다.
아이를 낳고 첫 두달동안 (산후조리원이 없는 곳이라) 친정엄마가 오셔서 아이를 키워주셨다.
시간 맞춰 수유를 하고 가끔 기저귀를 갈 뿐이지
다른건 다 엄마가 알아서 착착 해주셨다.
애 낳고 그렇게들 힘들다던데 내 손으로 하는게 없으니 생각했던것보다 살만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아이에 대한 모성애와 뭉클한 그 무언가는 우리 친정엄마에만 생기는것 같았고,
엄마가 자꾸 아기가 너무 예쁘지 않냐고 묻는데,
난 이 아이가 내 아이인지 내 동생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모성애라는건 두 손놓고 그냥 얼굴만 본다고 해서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엄마가 가시고 나서야, 이 아이가 내가 낳은 “내 새끼”라는게 분명해졌다.
하루 24시간을 아이와 함께 씨름하고 울고 웃고,
머리카락은 흐트러지고 옷매무새를 바로잡을 틈이 없이 아이를 키워내면서,
그제서야 모성애는 "후천적"으로 "학습"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학습되기 시작한 모성애는 무시무시한 속도를 내며 성장했다.
이제 내새끼라면 죽고 못사는 엄마 아빠가 되어버렸다.
그뿐이 아니다. 자기 자식에게로 향하던 1차적 모성애는 발전의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 남의 집 아이들을 봐도 달리 보인다.
아이들이 어릴때 부터 친구였던 남의집 아이들을 봐도
너무 기특하고 예쁘고 사랑스럽다.
큰애와 세살때부터 친구로 지내던 아이를 만나면
아이들보다 내가 더 수선을 피운다.
"이모가 너무너무 보고싶었어. 키도 많이 크고 더 씩씩해졌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진짜 반갑고 만나서 좋았다.
함께 자라고 있는 내 아이의 친구들이
대견하고 예쁘고 안아주고 싶은건
10년 전의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이를 둘 낳고 키우면서도,
우리가 제대로 엄마가 혹은 아빠가 되어가는게 맞는지 하루에도 몇번 씩 의문이 들지만,
우리 부부는 확실히 조금 달라진게 맞다.
커버이지미 by Dakota Corbi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