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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Oct 24. 2020

엄마가 나에게, 내가 너에게

내 옆에 배를 땅에 대고 누워 책을 넘기는 큰 아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올 한해 훌쩍 자랐다는걸 한눈에 알수 있었다. 애기 같이 동글동글하던 모습대신 이목구비 윤곽은 진해지고 꼭 다문 입은 야무졌다. 맨날 만지고 간지럽히던 짧고 통통했던 팔다리는 어느새 길쭉해졌다. 손을 뻗어 등을 한번 쓰다듬는데 탄탄해진 골격이 이내 낯설기도 언제 이렇게 자라버렸는지 아쉽기도했다. 윤기가 흐르는 반짝거리는 머리카락은 손에 한가득 잡히고 내 다리위에 슬쩍 얹고 있는 발은 또 얼마나 컸는지. 얼마전에 내 신발을 신어도 커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내 발크기와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다. "아유 … 발이 언제 이렇게 컸어." 괜한 아쉬움에 고작 중얼거린다는 말이 이런거였다.


딸! 너무 빨리 크지 말고 계속 엄마 애기해라


책장을 넘기던 아이가 소리내지 않고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짓길래 나도 대꾸하지 않았지만, 진심이었다.



작년에 엄마가 다녀가셨다. 엄마와 살던때나 지금이나 내 몸무게는 늘상 같은데 엄마는 자꾸만 잘 먹고 살좀 붙으라고 말했다. 어느새 흰머리카락이 가득한 엄마는 이마 위에 삐죽이 올라온 내 흰머리가 신경쓰이는지 자꾸 만지작 거리신다. 그렇게 한두번 손가락으로 만지면 다시 검은색 머리로 돌아올것 처럼. 양쪽 눈 가에 고운 주름이 있는 엄마는 내 미간을, 입가를 양 손으로 만져주며, "주름 많이 생기지 않게 팩좀 자주하지" .. 라며 말끝을 흐린다. 그러다가 오래 참았다는 듯이 얘기한다.


딸! 너무 빨리 늙지 마.
내가 늙는건 괜찮은데, 엄마가 너 나이먹는거 보니까 별로다 야


나는 소리내지 않고 입꼬리만 올리며 미소를 지었지만, 엄마의 말이 진심이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아이를 둘이나 낳고 마흔 중반이 되어가는 딸인데도 엄마는 가끔 내 이마에 코를 대면서, 넌 아직도 어릴때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엄마가 내 냄새를 맡는 모습이 신기한지 아이들이 옆에 서서 “할머니 진짜 엄마한테 애기 냄새가 나요?” 물으면 엄마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뭔가 미심쩍은 아이들은 내 이마에 조그만 코를 킁킁 거리고 나서, “애기 냄새 안나는데, 엄마는 엄마 냄새 나는데” 한다. 그래, 그게 할머니한테는 “애기 엄마” 냄새고, 너네들한테는 “너희 엄마” 냄새겠지 아마.



난 딸아이에게 빨리 크지 말라고 얘기하고,

내 엄마는 나에게 빨리 늙지 말라고 얘기한다.

엄마들은 그저 마음으로나마 내 아이가 세월에 비껴서길 바라는것 같다.


아홉살 딸 아이를 둔 나의 마음이나 마흔세살 딸을 둔 엄마의 마음이나, 엄마의 마음은 매 한가지다.  






커버이미지 Photo by Eldar Nazaro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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