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여덟살인 큰 아이는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다. 요즘은 다들 그렇듯이 원격으로 수업을 하는데, 바로 옆에서 손 모양 잡아주고 예민하게 틀린 소리를 잡아내는 선생님이었지만 원격수업에는 아쉬운 점이 아무래도 많다. 그렇다해도 악기라는 것이 또 한번 쉬게 되면 그간 배웠던 것이 아깝게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지라 큰 기대는 없이 레슨을 계속 시켜왔다. 물론 아이의 열정이 한몫했다. 바이올린을 많이 좋아했다.
어느날 수업시작하기전에, 선생님이 묻는 평소와 다를바 없이 안부를 물었다. 예컨데 “잘지냈니? 연습은 많이 했니? 어떤 곡 연습했니? 새로운 곡 연습한건 없니?”와 같은 얘기들. 그냥 웃으며 “네” 혹은 “아니요” 라고 대답하고 지나갈 안부에, 아이는 고개를 떨구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워낙에 일관성이 있으신 분이라, 매 레슨마다 깜짝질문을 하시지도 않고, 지난주에 연습을 했다고 하든 하지 않았다고 하든 단 한번도 얼굴빛을 붉히시는걸 본적이 없다. 그러니까, 엄마와는 차원이 다른 인자한 선생님이다.
대답을 못하고 시간을 끄는 아이가 슬슬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워낙에 말이 많은 아이는 아니지만, 저렇게 아무말도 없이 시간을 끌고 있으니, 안부 묻다가 정해진 레슨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속이 부글부글끓으며 속물인 엄마는 이제서야 돈도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눈빛으로 말좀 하라고 싸인을 주려다가, 안그래도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엄마까지 나섰다간 더 불편해할것 같아서 참았다.
그러다가 문득, 아이가 왜 저러고 있는건지 궁금해졌다.
왜 아무말도 못하는 걸까,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 중인걸까. 내가 혹시 둘 사이 대화에 놓친게 있었나.
그렇게 시작한 레슨은 그날 엉망이었다. 선생님이 지시하는대로 적극적으로 따라하지도 않았고, 긴장을 하는듯 연주는 매끄럽지 못했다. 레슨시간 내내 속이 뒤집어졌던 나는 오히려 레슨이 끝나자 정신이 말짱해졌다.
- 연습을 많이 한건 아니었지만, 해야할 만큼은 했다.
- 새로운 곡을 연습하지는 않았지만, 그건 의무사항이 아니었다.
- 저 선생님과 2년 가까이 레슨을 하고 있는데, 말하는게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궁금한건 정말 많았지만 한꺼번에 내 입에서 그 질문들을 다 쏟아부었다가는 안그래도 정신이 없는 아이가 멍한 표정을 지을게 분명했다. 찬찬히 달래며 하나씩 묻는게 좋을것 같았다.
레슨을 마치고 따뜻한 레몬차한잔을 만들어주며 얘길 시작했다.
왜 대답을 제대로 안했냐고 물어보니,
머뭇거리던 아이가 오늘 연주를 잘 할 자신이 없었다고 아주 작게 대답했다.
응? 선생님의 질문은 잘할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연습은 좀 했니 였는데?
그리고 리싸이틀도 아니고 그냥 매주하는 레슨인데?
레슨을 시작 하지도 않았는데 잘할수 있을지 못할지 어떻게 알고?
연주를 잘 못하는게 당연하지, 어떤 곡이든 잘 연주한다면 레슨을 왜 받겠어.
아이의 변은 그렇다.
선생님은 자주 아이의 연주가 좋다며 칭찬해주셨다. 3개월 가까이 반짝반짝작은별만 연주하는게 뭐 그리 칭찬받을 일인가 싶다가도, 칭찬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그게 뭐든 아이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나도 적극적으로 칭찬에 가담했다. 너 진짜 잘한다. 엄마보다 잘한다. 선생님이 너 잘한다고 칭찬하시더라. 엄마도 네가 진짜 잘하는거 같애. 난 네가 연주하는 소리 들으면 너무 좋더라.
그러는 와중에 스스로도 '나는 연주를 잘해, 소리를 잘 내, 늘 칭찬받잖아, 항상 잘해야돼, 오늘도 선생님을 놀라게 해줘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것 같다. 칭찬을 통한 자신감이 오히려 아이에게는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지난주에는 연습을 하는데 어려웠고 연주가 잘 되지 않아서, 오늘 레슨시간에 잘 못할게 분명했다고. 그래서 연습을 했다고 말하기가 싫었다고. 연습을 했으면 연주를 잘 해야 하는데, 연주를 잘 못했던 스스로가 못마땅하고, 그 연주를 선생님에게 들려주기도 싫었다는 것이다. 아마 아이는 늘 자기가 잘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모습을 마주했을때 부끄럽다는 감정을 느끼고, 그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며,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5분정도의 시간동안 머릿속으로 이렇게 몇 단계의 생각을 오가고 있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니, 아니 레슨 시작하기 얼마전부터 혹은 지난주 연습을 하는 내내 이런 감정으로 복잡해 했었다니, 생각보다 논리적으로 행동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아이를 보고 난 마음이 좋지 않았다. 행여나 내 칭찬이 선생님의 너그러움이 아이에게 부담이 되었던것 같아 미안했다.
늘 잘하던 애. 주변사람들에게 칭찬받던 사람. 완벽해보이고 싶던 사람. 사람들의 기대를 져버리기 싫었던 사람. 행여라도 내 완벽함에 금이 갈까봐 안절부절하는 사람. 나의 약한 부분을 들키면 숨어버리는 사람. 나는 항상 내가 꿈꾸던 모습이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바로 내 모습이었다.
그런 마음때문에 난 늘 긴장한 상태였고, 실수 하나도 인정할수 없었다. 그 긴장감과 부담감이 원인이 되어 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적도 있었고, 내가 잘할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에서 생각외로 고전하여 마음고생을 한적도 있다. 그럴때 조차도 내가 잘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엇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고 비겁하게 변명했다.
몇달이지만 심리치료를 받은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패배감이 짙었던 일이 있었고 그 일로 인해서 꽤 오랫동안 무기력했었다. 뭐든지 잘 하고 싶었는데 잘해낼수 없다는걸 알고 자꾸만 집안으로 숨어들었다. 사람들의 아무렇지도 않은 안부도 부담스러웠다. “어떻게 지내”라는 친절한 말 한마디에 온몸이 잔뜩 움츠러져 뻣뻣해졌다. 그 일을 다시 되돌리지 않는한 헤어나올수 있는 길은 없어보였다. 불완전한 나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 나에게 그것은 넉넉함이나 여유가 아니라, 고통이었다. 성공하지 못했던 일은 다시 바라보지도 않았다. 내 인생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항상 잘 하지 않아도 괜찮아. 잘 못하는 모습도 너고, 잘 하는 모습도 너야. 네가 연주를 잘해도 또 잘 하지 못해도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 모든걸 다 잘해야된다고 생각해서 힘들어하지 마. 잘 못하는걸 아는건 중요한 거야. 그걸 다시 잘 하고 싶은지 그렇지 않은지 잘 생각해보고, 그게 뭐든 방법을 찾으면 돼. 엄마랑 같이 그 방법을 찾아보자.”
내 머릿속도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이었다.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아직도 내 두 팔안에 쏙 들어올만큼 작은 아이인데 그 아이의 마음이 그렇게 무거웠다니, 그동안 몰라줬던게 미안했다. 아이를 안고 있는 내몸의 온기가 아이의 긴장감을 조금이라도 풀어줄수 있길 바랬다. 못내 속상했던지 아이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는데, 내 어깨위로 떨어진 아이의 눈물은 뜨거웠다.
아이보다 서른 해 정도 더 산 나도 여전히 쉽지 않다. 그렇지만, 완벽하지 못한 나를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 여정 중에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후련함과 안정감을 느껴간다.
나 스스로를 어떠어떠한 사람으로 규정해놓고 그 기대치에 못미치는 나를 부인해왔던일. 내가 만들어놓은 내 모습과 달라진 나를 못마땅해하고 미워했던일, 그러다 결국 부인해버렸던일. 불완전한 내가 조금이라도 드러날것 같으면 손을 털고 꽁꽁 숨어버렸던일. 스스로에게 끝도 없이 변명했던일.
이런 일들로부터 마음을 굳게 먹고 걸어나갔다. 내가 완벽하다는 환상부터 깨버렸다. 그건 정말 커다란 착각이었다.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명제를 받아들이니 자유로워졌다. 실수도 실패도 너그러워졌다. 그래서 무작정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아가 아니라,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방법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문제해결의 순서를 바꾸어 나갔다. 그런 와중에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일을 다시 바라볼수 있었다. 다시는 떠올리지 않겠다던 아픈 순간에서 배울것을 찾아낼수도 있었다.
쉽지 않지만 뚜벅뚜벅 그 길을 걸어나갔다. 그 중간중간 내 엄마가 건넨 따뜻함이 있었다. 나를 꼭 안고
"다 잘하지 않았도 돼. 잘해도 잘하지 않아도 너는 너야. 네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그걸 알면 되는거야." 라고 토닥여줬던 엄마의 진심을 딛고 걸어가는 중이다.
내 아이도 그 길을 스스로 걸어 나가고 있다. 내가 나서서 해결해줄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옆에서 조용히 안아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내 엄마가 나를 지켜봐줬듯이, 내가 할일도 그아이를 지켜봐주는 일이다. 세상이 나를 버린것 같은 기분이 들때에도 나를 귀하게 여겨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든든함을 아이가 딛고 걸어가주길 바란다. 우린 모두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라는걸 받아들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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