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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Sep 06. 2015

옛친구  

오랜 친구가 남긴 큰 선물 

어느새 이십년지기가 된 친구의 가족이 미국에 일년간 머물게 되었다. 

신시내티라고 하니, 우리 동네에서 운전을 해서 열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다. 

한번도 가본적은 없으나,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의 서너배는 되는 그곳이 지척으로 느껴졌다. 

한국에 살때 딱 우리의 거리만큼인, 신촌에서 방배동정도의 거리로 말이다. 


미국 한국에 떨어져 살게 되면서는, 

친구와 나는 자주 전화를 한다거나 살뜰히 챙겨 메시지를 보내진 않았었다. 

둘 다 성격이 무덤덤하기도 하거니와, 사느라 바쁘기도 했고, 

생각해보면 그녀와 나는 둘다 그다지 전화통화를 좋아하지 않는 여자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가 방배동(?)에 있다하니, 마음에 안달이 나서 매일매일 전화통화를 했다. 

14시간 나던 시차가 한시간 밖에 나지 않으니 너무 신났다. 

적어도 내가 일어나고 그녀가 잠잘때 엇갈리는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점심시간에 점심먹었냐고 물어보고, 저녁시간에 오늘저녁 뭐해먹을거냐고 물어보는 것만으로 좋았다.


그리고, 몇달 후에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우리 동네에 방문했다.  


함께 마주 앉아서 커피와 케익을 앞에 두고 끝이 없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이야기의 소재는 다소 예전과 달라졌다. 

우리는 옷이나 신발, 혹은 중간고사나 회사 동료들 얘기 대신에, 남편과 아이들 얘기를 나누었다. 

말투나 표정은 변함이 없지만, 이야기 하는 종종 서로의 아이들을 챙기고 살피느라 분주했다. 

애들이 옆에서 방해를 할 지언정, 

이렇게 시간 구애 받지 않고 여유롭게 대낮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뭐 얼마전에 한국에 갔을때에도, 잠시 만나 한시간 반정도 식사를 하긴 했지만, 

그렇게 하는 만남은 마음이 급해서 인지 무슨 얘길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글쎄, 언제쯤이 마지막일까. 우리가 편안하게 서로 얘기를 하고 들어줬던 때가. 

아마도 내가 유학을 나오기 전 그러니까 십여년쯤 전 이려나. 

아이지, 그때에는 서로 직장과 학교를 다니느라 역시 분주해서 자주 만나지 못했으니, 

정말이지 여행을 하거나 카페에 오랫동안 앉아 오래 이야기를 나누어도 부담스럽지 않았던 시간은 

기억에도 희미한 훨씬 더 옛날인것 같다. 

아마도, 우리가 모두 대학생일때, 

신촌 어딘가에서 아니면 아현동 어딘가 케익집에서 만나 

넘쳐나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하나 빈둥거릴 그때가 아니었을까. 


그 오랜시간동안 우린 참 바빴다. 

내가 바쁘지 않으면 그녀가 바빴고, 그녀가 시간이 날땐 내가 또 정신이 없었다. 

그애가 참 바쁜 직장에 다닐때, 난 유학을 떠나왔고, 그 다음해에 그애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다. 

지방에 몇년간 살아서, 유학시절 한국에 다니러 갔을때엔 기꺼해야 얼굴 한번 보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유학 나올때, 나한테 한번 오겠다고 얘기하곤 했는데, 

결국 이제야 그 약속을 지킨 셈이었다. 


올해따라 더디게 오던 봄도, 그 친구가 머물던 나흘동안은 눈부셨다. 

서로의 애들때문에 많은것을 할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오랜만에 미술관도 가고, 산책도 하고, 맛있는 커피도 마시러 다녔다. 

그리고 아침먹고 난 식탁에 오래도록 앉아서 햇살을 받으면서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얘길 했고, 

애들 재우고 난 밤에는 거실에서 맥주한잔 마시며 또 다시 못다한 이야길 나눴다.


여기 살면서 오랫동안 덤덤해져 왔던 감정들이, 

오랜 옛 친구를 만나 얘길 하다보니 몽글몽글 해지는 기분이었다. 

조금 외로운 건 어쩔수 없다고 가슴을 쓸어 내리며 지냈던 많은 날들에 큰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사람들로부터 때로는 씁쓸한 기분도 느꼈던 나에게, 옛 친구는 더 할나위 없는 선물이었다.


이제 우리 언제 다시 또 이런 시간을 보낼수 있을까.



Photo by Luke Chesser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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