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살며 쓰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이제이 Feb 21. 2016

돌아온 편지

당신은 예전에도 지금도 참 괜찮은 사람이에요, 고마워요. 


아이들 방을 옮겨주려고 마음먹고 정리하기 시작한 책장 한구석에 있는 편지함에서, 

십여 년전 유학을 시작할즈음 받았던 편지들을 찾아내었다. 


외롭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했던 내 스물아홉은 철저히 혼자였다고 생각했는데, 

편지들을 보니 나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위로받고 있었다. 

새삼 십년전 그때를 떠올리며 다시느낀 고마움에 차근차근 편지들을 읽어보았다. 

힘내라고, 잘할거라고 꼭꼭 눌러쓴 손편지에서 사람들의 표정이 보이고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아직 가끔이라도 연락을 하는 사람들에게 받은 편지가 있는가 하면, 

절반 정도는 지금은 연락도 잘 안되는 사람들이었다. 


오랜만에 한국 방문을 계획하고 있던 터라, 

한국에 가면 얼굴을 볼 사람들에게 받았던 편지를 몇 통 챙겨서 여행가방에 넣었다. 

지난 세월동안 나에게 위로가 되고 사랑이 되고 따뜻함이 되어줬던 그들의 마음을, 

이제 주인에게 돌려줘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지난 시간동안 나에게 머물면서 그 몫을 다한 편지들을, 

이제 그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는건 웬지 중요한 일일것 같았다. 


사람은 내 스스로의 기억속에서 나를 발견하곤 하지만, 

다른 이의 추억속에 살아 있는 나는 찾기가 쉽지 않다. 

나에게 돌려받은 이 편지로, 어쩌면 그들은 새로운 자신을 추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보낸 편지함에 저장되어 있던, 다른 이에게 쓴 이메일을 오랜만에 다시 읽어봤을때의 생경한 느낌과 비슷할까. 그들은 오래전 자신을 만나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리고 한국에서 그들을 만났다. 

그들이 십여년전에, 불안하고 걱정 가득한 모습으로 낯선 곳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친구를 위해, 동생을 위해, 후배를 위해, 동료를 위해 써내려갔던, 그 값진 글을 돌려줬다. 

나혼자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거기까지 와서였을까. 

편지를 내미는 내 손이 더 떨렸고, 영문을 몰라 휘둥그레진 그들의 눈빛을 살피느라 바빴다. 


그들이 내게 보냈던 편지와, 그 편지를 돌려주면서 쓴 감사의 글귀도 함께 돌려줬다. 

십여년전, 기억도 희미한 본인이 쓴 글을 받아 읽어 내리며, 

어색함에 못내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이도 있었고, 

부끄러워서 끝까지 못읽겠다며 헤어지고 나서 혼자 귀가하는 버스에서 마저 읽은 이도 있었다. 

지금 제법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티던 친구는, 

필체와 문장에서 조차 엿보이는 씩씩하고 당찬 십여년전 그녀 자신의 글을 읽어내리다가 눈물을 왈칵 쏟았고, 잔잔한 미소로 대신하며 마른침을 여러번 삼키던 다른 이는, 

곧 답장을 보내겠다 담담히 말해왔다. 


다른 이에게 쓴 십여년 전의 나의 글을 다시 마주하는 이들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그것도 꼭꼭 눌러쓴 손글씨 편지를. 

그 글씨 속에서 그 문장 속에서, 

그들은 십여년전의 자신과 조우했을까. 




그저 나의 의도는 이러했다. 


그 글 속에서 지난 날의 당신이 얼마나 든든한 선배였는지, 얼마나 좋은 친구였으며, 얼마나 큰 위로와 위안을 주는 이었는지 추억하길 바랬다. 

우린 때때로 지금의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때가 있다. 

그렇지만, 당신은 알아야 한다. 

당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으며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말이다. 

적어도 한사람에게는 말이다. 


인생의 절반을 돌아서 향해가는 당신들과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나 하는 강박관념을 갖기 보다는,

지금까지도 참 괜찮은 사람이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예전의 내가, 그리고 현재의 내가,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우린 서로에게 말해주고 감사해 주길 바랬다. 


참 고마웠습니다. 

이렇게 ...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내게 절실했던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