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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Jul 09. 2016

내게 절실했던 것들  

이제는 비워지고 있는 걸까 

처음 한국을 떠나 이곳에 살면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될것들이 있었다.


한국음식이 그랬고, 한국 소설책이 그랬고, 한국 티비가 영화가 그랬다. 

한 두달에 한번씩 엄마로 부터, 친구로 부터 보내온 소포에는, 내가 징징거렸던 밑반찬, 젓갈, 볶음 고추장에, 신간 소설, 베스트셀러가, 그리고 시디에 구운 영화 (나이를 들켜버리는 군요, 여기서) 까지 가득했다. 

그렇게 원하는 것을 멀리서도 다 취하면서도, 그래도 늘 뭔가 부족한 기분이었다. 

채워도 채워도 뭔가 모자란 기분이었다. 

한국에 있는 것을 몽땅 다 가져와서 내가 혼자 지내는 작은 방에 들여놓았어도, 

그 모자란 기분은 채울수 없었을 듯 하다. 


세상이 좋아져서 많은 것을 이곳에서 구할수 있게 되기도 했거니와, 

이렇게 이 곳에서 십여 년 살다보니 이젠 절실한것이 별로 없다.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이다. 있으면 조금 더 좋겠지만, 없다고 그렇게 불편하지도 않다. 

엄마가 전화로 뭐 필요한거 있으면 보내주겠다 해도, 

친구가 들어올때 필요한거 챙겨서 들어오겠다 해도,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한다. 

사실 뭐가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이젠 필요한것들이 없는채로 사는법을 터득했는지도 모른다. 

모든 걸 다 쥐고 가득 차 있는것이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다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고, 다 원했던것도 아니었다. 

그냥 열 개중에 다섯 개 정도만 있으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물질적인 것 뿐 아니라, 내 감정도 이와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는것 같다.


나는 늘 가득 차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들이 빈틈을 주지 않고 들어차 있어서, 

나는 조금이라도 기우뚱하면 그 감정들이 넘치기 일쑤였다. 

감정에 솔직했던거라고 변명하지만, 

이제와 다시 생각해보면 그 감정에 사로잡혀 살았던것 같기도 하다. 


웃음도 과했고 또 눈물도 과했다. 

감정을 가득 부여안고서도 나는 늘 갈증냈다. 

이 만큼의 감정이 소용돌이 치면서도 난 또 다른 것이 절실했다. 




지금의 나는 많이 성글어졌다. 


올이 굵은 브러쉬로 머리를 설렁 설렁 빗어내리는 것 처럼 내 감정은 틈이 많이 생겼다. 

비좁게 자리잡고 있던 여러가지 자잔한 감정들은 흩어지고, 

이제 한 두개의 명료한 감정들에게 조금 더 넒은 자리를 내어줄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인지 예전만큼 예민하지 않다. 

아니 다시 말하면 예전만큼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 

가득 찬 감정보다 오히려 조금 빈곳이 생긴 내 가슴이 이젠 더 편안해졌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도, 인연도, 사랑도, 우정도, 모든것이 이젠 제법 조용해졌다. 

사람과 이야기로 가득 차있던 내 몸과 머리는, 

조금 외로워졌지만 조금 홀가분해졌음을 고백한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자주 꽤 큰 숨을 내쉰다. 


큰 숨을 내쉬고 나면, 그나마 번잡했던, 조금씩이나마 흔들리던 내 감정의 파편마저도 가라앉는 기분이다. 

무심해 지진 않았다. 

다만 내가 보듬어야할 감정의 저변이 줄어들었고, 대신 더 깊어졌다. 

깊어졌다지만 날카롭진 않게. 

그렇게 은은하지만 진하게. 


이제 비워지고 있는 걸까. 



Photo by Victoria Strukovskaya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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